우리 시대의 영향력 있는 지성인이자 법, 정치, 철학, 문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와 센과 함께 20년 넘게 개진해온 ‘역량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사상적 정수를 과감 없이 펼친다. 누스바움과 센은 1990년대부터 개발 경제학의 주류 이론들을 비판하고 대항이론으로 ‘역량 접근법’을 제시했다. 역량 접근법은 경제성장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론이다. 단순히 이론에 머물지 않고 당면한 현실 과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에 개입했으며, 그것이 일정 부분 인정받아 현재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누스바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역량 이론의 핵심어인 ‘역량’, ‘역량 접근법’, ‘인간존엄성’, ‘정의’, ‘기회’ 등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령 국내에 번역 출간된 『시적 정의』에서는 문학이 개개인의 역량을 육성하게 해준다는 믿음이 책 전반에 깔려 있고, 『감정의 격동』에서는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누스바움이 짧지 않은 시간동안 몰두하며 발전시켜왔던 역량 이론이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못했었다. 누스바움의 ‘역량’은 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인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역량을 능력이나 재능과 구분 없이 쓰며 개인의 내적인 영역으로 한정하는 데 비해 누스바움은 역량을 개인과 사회 제반 환경들이 접합된 상태를 뜻하는 개념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량을 개개인의 삶의 질을 비교하는 틀로 삼아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며 인간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은 사회정의를 모색하는 일환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역량 이론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근거를 비롯해 핵심 요소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따라서 국가의 발전정도를 분석하고 인간발달과 관련된 정책을 개발하려는 정책가들이나 연구자들에게는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동시에 누스바움의 정의론을 포함한 사상 전반을 깊게 이해해보려는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춰 사회정의를 모색한 대항이론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주의 대도시 아흐메다바드에는 바산티라는 30대 여성이 살고 있다. 그녀의 전 남편은 도박꾼에다 주정뱅이였다. 주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며 산아제한 장려를 위해 지급하는 돈을 노리고 정관수술을 받는 바람에 바산티가 자식을 낳을 기회도 빼앗았다.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바산티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이혼에 성공해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생활환경과 경제력이 변변치 않아 홀로서기가 쉽지 않았다. 결혼 이후 친구들과의 관계도 모두 끊긴데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바산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역량의 창조』는 인도에서 살아가는 바산티라는 여성에 대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스바움은 바산티의 신체조건, 영양상태, 친정의 경제력 및 가족관계, 교육 수준, 정치인식, 감정의 변화,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 등을 비롯해 바산티가 사는 도시의 법적 제도, 시행되는 정책 및 경제 현황을 낱낱이 살핀다. 책 곳곳에서 바산티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눈에 띄는지 재차 물으며 현재 모습이 어떤 연유와 환경에서 비롯됐고 인도의 다른 여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NGO 여성자영업자조합(SEWA)의 도움으로 어떻게 삶의 기반을 만들어갔는지 그 연원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해 깊게 집중하고 관찰하는 데는 역량 접근법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들이 자리한다. ‘사람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인간존엄성을 보장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이를 세밀하게 분석해보자는 게 바로 역량 접근법의 핵심인 것이다. 여기에 누스바움은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이라는 열 가지 핵심역량을 제시한다(48~50쪽). 만약 열 가지 역량 중 한두 가지라도 최저수준 이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고 각 역량들이 모두 최저수준 이상으로 보장될 때 사회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이 역량보다 복수형인 역량‘들’이 더 바른 표현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량 접근법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GDP 접근법, 공리주의 접근법 등과 같은 기존의 지배적인 접근법의 결함을 바로잡는다.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한 국가의 발전 정도를 평가할 경우, 개개인이 겪는 소외와 고통은 무시되기 쉽다. 불평등이나 박탈감도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역량 접근법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며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 정의를 실현하려는 새로운 대항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며 기회와 평등을 보장하라
역량은 어떻게 정치적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역량은 한 국가의 발전정도를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방식을 비판하며 새로운 잣대를 제시한다. 우선 ‘결합역량’과 ‘내적역량’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합역량이 “구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기회의 총합”이라면 내적역량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역동적인 사람의 상태”를 말한다. 가령 많은 사회가 정치 문제에 관해서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언론을 억압해 자유로운 의견 표출을 막는다. 이 경우 국가가 교육을 통해 내적역량은 키워줬지만 자유와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에 결합역량을 뒷받침해주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분석 틀은 한 사회의 성취 정도와 결함을 직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역량 접근법은 무엇보다 선택과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이 어떤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 이때 선택과 자유는 오롯이 개개인의 몫이다. 누구나 기회와 실질적인 자유를 누릴 수도, 누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의 이러한 원리를 국가의 정치적 목표와 연결해 설명한다.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보람 있는 일을 한다면 정부는 제몫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국가는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보다 건강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역량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즉 한두 개의 건강 관련 정책을 개발해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방식이 아닌, 개개인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과정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량 이론의 이러한 논리는 국가의 역할을 되물으며 어떤 정책을 선택해 실행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마티아 센까지, 누스바움의 사상적 뿌리가 담긴 대표작
이 책에는 누스바움이 영향을 받은 여러 사상가들과 저서들이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서 시작해 현대의 스미스, 칸트, 밀, 마르크스 등 누스바움의 사상적 근원을 이루는 다수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센의 연구물들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역량 이론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이 이론들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시도한다. 앞서 말했듯 누스바움은 센과 협업하며 역량 접근법을 연구해왔다. 그렇지만 역량 이론에 관해서 두 사람의 견해는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센이 역량 개념으로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더 비중을 두었다면 누스바움은 핵심역량 목록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사회정의가 달성되었는지까지 평가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또한 센이 인간의 역량에만 관심을 두었다면 누스바움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역량까지 비중 있게 다룬다.
누스바움은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이론을 체계화하면서도 아직 역량 접근법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역량 이론은 앞으로 줄기를 뻗으며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개발도상국에 산다
우리 시대의 영향력 있는 지성인이자 법, 정치, 철학, 문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와 센과 함께 20년 넘게 개진해온 ‘역량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사상적 정수를 과감 없이 펼친다. 누스바움과 센은 1990년대부터 개발 경제학의 주류 이론들을 비판하고 대항이론으로 ‘역량 접근법’을 제시했다. 역량 접근법은 경제성장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론이다. 단순히 이론에 머물지 않고 당면한 현실 과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에 개입했으며, 그것이 일정 부분 인정받아 현재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누스바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역량 이론의 핵심어인 ‘역량’, ‘역량 접근법’, ‘인간존엄성’, ‘정의’, ‘기회’ 등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령 국내에 번역 출간된 『시적 정의』에서는 문학이 개개인의 역량을 육성하게 해준다는 믿음이 책 전반에 깔려 있고, 『감정의 격동』에서는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누스바움이 짧지 않은 시간동안 몰두하며 발전시켜왔던 역량 이론이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못했었다. 누스바움의 ‘역량’은 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인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역량을 능력이나 재능과 구분 없이 쓰며 개인의 내적인 영역으로 한정하는 데 비해 누스바움은 역량을 개인과 사회 제반 환경들이 접합된 상태를 뜻하는 개념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량을 개개인의 삶의 질을 비교하는 틀로 삼아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며 인간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은 사회정의를 모색하는 일환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역량 이론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근거를 비롯해 핵심 요소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따라서 국가의 발전정도를 분석하고 인간발달과 관련된 정책을 개발하려는 정책가들이나 연구자들에게는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동시에 누스바움의 정의론을 포함한 사상 전반을 깊게 이해해보려는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춰 사회정의를 모색한 대항이론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주의 대도시 아흐메다바드에는 바산티라는 30대 여성이 살고 있다. 그녀의 전 남편은 도박꾼에다 주정뱅이였다. 주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며 산아제한 장려를 위해 지급하는 돈을 노리고 정관수술을 받는 바람에 바산티가 자식을 낳을 기회도 빼앗았다.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바산티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이혼에 성공해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생활환경과 경제력이 변변치 않아 홀로서기가 쉽지 않았다. 결혼 이후 친구들과의 관계도 모두 끊긴데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바산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역량의 창조』는 인도에서 살아가는 바산티라는 여성에 대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스바움은 바산티의 신체조건, 영양상태, 친정의 경제력 및 가족관계, 교육 수준, 정치인식, 감정의 변화,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 등을 비롯해 바산티가 사는 도시의 법적 제도, 시행되는 정책 및 경제 현황을 낱낱이 살핀다. 책 곳곳에서 바산티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눈에 띄는지 재차 물으며 현재 모습이 어떤 연유와 환경에서 비롯됐고 인도의 다른 여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NGO 여성자영업자조합(SEWA)의 도움으로 어떻게 삶의 기반을 만들어갔는지 그 연원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해 깊게 집중하고 관찰하는 데는 역량 접근법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들이 자리한다. ‘사람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인간존엄성을 보장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이를 세밀하게 분석해보자는 게 바로 역량 접근법의 핵심인 것이다. 여기에 누스바움은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이라는 열 가지 핵심역량을 제시한다(48~50쪽). 만약 열 가지 역량 중 한두 가지라도 최저수준 이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고 각 역량들이 모두 최저수준 이상으로 보장될 때 사회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이 역량보다 복수형인 역량‘들’이 더 바른 표현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량 접근법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GDP 접근법, 공리주의 접근법 등과 같은 기존의 지배적인 접근법의 결함을 바로잡는다.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한 국가의 발전 정도를 평가할 경우, 개개인이 겪는 소외와 고통은 무시되기 쉽다. 불평등이나 박탈감도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역량 접근법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며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 정의를 실현하려는 새로운 대항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며 기회와 평등을 보장하라
역량은 어떻게 정치적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역량은 한 국가의 발전정도를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방식을 비판하며 새로운 잣대를 제시한다. 우선 ‘결합역량’과 ‘내적역량’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합역량이 “구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기회의 총합”이라면 내적역량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역동적인 사람의 상태”를 말한다. 가령 많은 사회가 정치 문제에 관해서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언론을 억압해 자유로운 의견 표출을 막는다. 이 경우 국가가 교육을 통해 내적역량은 키워줬지만 자유와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에 결합역량을 뒷받침해주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분석 틀은 한 사회의 성취 정도와 결함을 직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역량 접근법은 무엇보다 선택과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이 어떤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 이때 선택과 자유는 오롯이 개개인의 몫이다. 누구나 기회와 실질적인 자유를 누릴 수도, 누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의 이러한 원리를 국가의 정치적 목표와 연결해 설명한다.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보람 있는 일을 한다면 정부는 제몫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국가는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보다 건강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역량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즉 한두 개의 건강 관련 정책을 개발해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방식이 아닌, 개개인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과정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량 이론의 이러한 논리는 국가의 역할을 되물으며 어떤 정책을 선택해 실행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마티아 센까지, 누스바움의 사상적 뿌리가 담긴 대표작
이 책에는 누스바움이 영향을 받은 여러 사상가들과 저서들이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서 시작해 현대의 스미스, 칸트, 밀, 마르크스 등 누스바움의 사상적 근원을 이루는 다수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센의 연구물들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역량 이론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이 이론들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시도한다. 앞서 말했듯 누스바움은 센과 협업하며 역량 접근법을 연구해왔다. 그렇지만 역량 이론에 관해서 두 사람의 견해는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센이 역량 개념으로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더 비중을 두었다면 누스바움은 핵심역량 목록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사회정의가 달성되었는지까지 평가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또한 센이 인간의 역량에만 관심을 두었다면 누스바움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역량까지 비중 있게 다룬다.
누스바움은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이론을 체계화하면서도 아직 역량 접근법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역량 이론은 앞으로 줄기를 뻗으며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개발도상국에 산다
공적 논의부터 법 제정까지,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가난한 국가의 사례들을 연구 토대로 삼고 있지만, 이를 확장해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어느 국가의 어느 국민이나 인간존엄성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정의와 평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량 이론은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나 부유한 국가나 모두 인간개발의 과제가 있고, 적정한 삶의 질과 최소한의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기에 모두 개발도상국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역량 접근법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복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여러 국제기구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데 활용된다. 1990년부터 유엔개발계획 사무국이 매년 발행하는 『인간개발보고서』의 영향을 받아서 자국 내의 다양한 지역과 집단을 역량 접근법으로 연구한 보고서가 발행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역량 접근법의 영향 속에서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측정 문제를 다룬 『사르코지위원회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누스바움은 이 책의 마지막 8장에서 현대사회의 주요 과제인 젠더, 장애인, 노인 복지,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관한 문제를 하나씩 소환해 역량 접근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밝힌다. 이론의 효용성과 적용 가능성을 논하는 동시에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을 사례로 삼아 역량에 대한 유의미한 공적 논의와 법 제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시도가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개개인의 인간존엄성을 보장하며 사회정의의 실현을 모색하는 역량 접근법의 방법론은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는 만큼 국내외에서 더욱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가난한 국가의 사례들을 연구 토대로 삼고 있지만, 이를 확장해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어느 국가의 어느 국민이나 인간존엄성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정의와 평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량 이론은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나 부유한 국가나 모두 인간개발의 과제가 있고, 적정한 삶의 질과 최소한의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기에 모두 개발도상국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역량 접근법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복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여러 국제기구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데 활용된다. 1990년부터 유엔개발계획 사무국이 매년 발행하는 『인간개발보고서』의 영향을 받아서 자국 내의 다양한 지역과 집단을 역량 접근법으로 연구한 보고서가 발행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역량 접근법의 영향 속에서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측정 문제를 다룬 『사르코지위원회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누스바움은 이 책의 마지막 8장에서 현대사회의 주요 과제인 젠더, 장애인, 노인 복지,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관한 문제를 하나씩 소환해 역량 접근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밝힌다. 이론의 효용성과 적용 가능성을 논하는 동시에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을 사례로 삼아 역량에 대한 유의미한 공적 논의와 법 제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시도가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개개인의 인간존엄성을 보장하며 사회정의의 실현을 모색하는 역량 접근법의 방법론은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는 만큼 국내외에서 더욱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