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전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p11
잠시 침묵한다.
관옥할아버지는 색바란 파란 뜨개모자를 쓰고 한손으로 잔을 잡고 앉아 있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분홍시흔이, 보라선민이, 검정지안이, 진회색석영이, 회색털후드경원이, 곤색민재, 분홍선린이, 밝은 회색줄줄이 이든맘, 빨강재민이가 책상과 의자를 모두 갖추고 앉아 있다.
그 다음줄로 오른쪽부터 돌며 보면 일평, 동그라미, 언연, 향원, 서영, 하진, 지영, 민들레, 어진, 자허, 현빈, 승희, 머루 중정, 바닥에 앉은 시우.
맨 마지막 줄로 띄엄 띄엄 라떼, 다정, 후마가 앉아 있다.
바깥 복도에서는 유천이 유화를 데리고 민들레를 찾고 다니는 게 창문그림자로 보인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마음공부에 온 가족이 다 모여 앉아 윤동주의 서시를 듣는다.
관옥할아버지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천천히 그리고 더 천천히 말씀을 이으신다.
“내가 음 이 자리에서 더 얘기하지 못한 마지막 얘기하는 것인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조금 전에 했어요.
이건 사실이야.
이건 생각이 아니라 사실이야.
다음 다음주에는 내가 재민이를 또 볼 수 있을지 몰라.
그렇지?
그래서 그렇다면 조금 전에 자 여기 내가 여기 천지인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근데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윤동주라고 하는 시인이야
잘알지?
윤동주의 시중에 제일 유명한 시가 서시라고 있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도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살고싶어. 자랑스럽다는 것과 반대되는 거지 그렇지? 자기 양심에 가책되는 것 그럼 안되지 하는 것들, 남이 보면 남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것. 그런데 하늘을 우러러야. 재민이에게 부끄러운 게 없기를 그러면 내가 재민이 없는 데서 하면 돼. 하늘을 향해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 한점도 부끄럼이 없기를 그렇게 자기가 살고 싶다는 거야. 산다는 말이 아냐. 그렇게 살고 싶다. 뭘 해도 좋아. 이걸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단 말이야. 하늘을 피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렇지? 깜깜한 밤에도 하늘은 있잖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 어떻게 그런 희망을 갖고 사니 사람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런 희망을 품을 수 있잖아. 그런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 이게 첫마디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자기를 이야기 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자기나라를 어떤 나라가 침략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말도 못 쓰게 하고 억지로 하게 하고 뭘 해도 잡아때리고 그러니 어떤 걸 봐도 괴로운 이런 얘기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마치지 않겠다. 괴롭긴 괴로워, 아파. 그래 여기는 내가 머물곳이 아니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이 언제 뜨냐. 별이 환한 대낮에도 있지만 보이지 않아. 깜깜한 밤에 홀로 빛나. 나는 그걸 노래하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 깊은 마음속엔 별처럼 되고 싶다.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젠가부터 가끔 할아버지가 꿈속에서 시를 한 번씩 읽는다.
어떤 한사람이 죽었대요. 그 죽은 사람에 대해 어떤 사람이 쓴 시야. 그걸 내가 읽었어. 죽은 사람이 누군지 몰라. 그 한 사람이 잘살다 죽었어.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풀을 노래하고 있었지.
두 번째 보았을 때 풀처럼 살고 있었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 사람 한포기 풀이었네.”
윤동주는 풀을 별로 본 것이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을 그리워하고 별처럼 되고 싶고 별이고 싶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이게 각오야 각오. 나 이렇게 살겠다. 이건 구체적으로 내가 하겠다는 거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우리 가슴엔 살아있단 말이지. 죽어가는 것들이 뭐야? 살아 있는 것들이지. 지금 살아 있는 것들, 내 눈앞에 살아 있는 것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라고 한 게 이런데 시인의 감수성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사랑이야.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가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길은 내가 개척한 길이 아니다. 이건 조금 다르다. 내가 길을 개척해 가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 나에게 주어진 길은 안 가면 그만이야.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감옥으로 붙잡혀 가는 길이라면 가겠다는 거야.젊은 날에 그렇게 해서 겨우 시집 세권 남기고 그것이 주어진 길이라면 걸어가겠다는 것, 가야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어차피 살아가야 할 인생 부끄럽지 않게, 창피하지 않게, 남한테 가리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감추고 싶은 게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 그런 맘을 가졌다.
고맙습니다.
한님.
고맙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어, 받아 적고 녹음한 걸 풀어 적어봅니다.
23년 3월 20일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옴...
첫댓글 댕댕이 써주신글 잘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우리가 그 순간을 함께 나누었다는 게 새삼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올려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괴로워하고 아파워 할 것들이 많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을 그리워하고 별을 노래하고 별처럼 살아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렇게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