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지역구심주의와 고정인식의 틀 깨기
- 최금정 관장의 새로운 융복합과 그 변주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본지 편집 고문)
1. 공동체 인식과 새로운 문화의 구도
모름지기 무한 경쟁력이 요청되는 비정한 문화의 21세기, 최소한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삶의 처소에서 ‘느림의 미학’으로 분별력을 지니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생각의 속도’ 또한 조절할 일이다. 비록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문제로 갈등과 대립이 극한상황으로 치닫는 현상일지라도 공동체 의식을 지니되 ‘사유(思惟)하는 지성’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하여야 한다. 따라서 예술지상주의자를 자처하지 않더라도 지역 예술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끝내 조국애와 인류애로 승화시켜 비정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시대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여 삶의 일상에서도 기필코 신선한 감동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이같이 심적 외상을 창조적 에너지로 창출하는 골드브레인(Golden Brain)과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새로운 문화의 환경조성에도 일체감을 지닌 변화와 대국적 통찰도 온전히 수행하여야 한다. 까닭에 타자 간의 분별력을 지녀야 할 것임에 황금찬(黃錦燦) 시인의 다소 호흡이 짧은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아라. 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사람아(꽃의 말)”에서 사람을 호명(呼名)하며 인간존재의 불확실성을 “공동의 세계가 무너져 믿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독일의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의「현대의 특징」도 헤아릴 바다.
그렇다. 현재 필자가 주간(主幹)인 월간『모던포엠』12월호 지면에 ‘그 자신이 직접 플로리스트(florist)가 되어 꽃갤러리를 운영하는 조윤주 시인의 시편 해설’을 발표한 뒤끝이라, 특정한 경영인이기에 앞서 지역문화와 예술에 남다른 안목을 지닌 최금정 세계커피축제 운영위원장이 새로운 문화예술 인식의 변모를 위해 문예 종합지인『신문예』지를 통해 에세이스트로 그 폭을 다양하게 확장한 일면이다. 이제 따뜻한 감성의 수필가인 그 자신이 강릉지역에서 커피 생산을 검토한 일은 2000년 초엽이다. 한껏 여유로운 마음가짐에 에메랄드빛 해변을 거닐며 커피를 마시는 정취에 취하던 그 무렵은, 커피전문점으로 가득한 현재 강릉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정황이었다. 다소 무모한 결정이나 한국 최초로 강릉에서 원두를 재배하겠다는 일관된 집념으로 어렵게 제주도에서 커피 묘목을 들여와 심으며 온갖 시행착오 끝에 오늘의 성공적인 원두 재배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짐짓 그 당시 온실재배라는 까다로운 여건상 셈이 전혀 맞지 않는 사업이었기에 커피 재배의 시스템을 갖춘 것은 지역에 관한 지극한 애정의 결과물이다.
특히 사회지도층은 신선한 감동을 일깨워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로제토 효과(Roseto effect)의 가능성을 분별할 것임에 "한순간 분노가 치솟아 오를 때, 좋은 기억이나 아름다운 시편을 떠올리면 마음에 평정을 얻는다."라는 미국의 성직자 노먼 핀센트 빌(Norman Vincent Peale)의 일깨움도 식별할 정황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내적 충만에서 비롯되는 깊은 감동을 접할 때, 인체 내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변화가 주어져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로제토 효과나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의 가능성도 체득(體得)할 것임에 응당 ‘꽃은 비에 젖어도 꽃의 향기는 비에 젖지 아니하듯’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의 “희망은 어둠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밝히는 것이다.”라는 역설은 다시금 수긍할 바다.
2. 행복한 삶과 지역문화의 지형도
차제에 역사의 정체성이란 ‘생활 정서와 뿌리 의식(Roots Consciousness)’을 근간으로 한 실존적 가치, 이익, 미래를 확보하는 의지적 총체성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를 뜻하기에, 응당 정신작업의 종사자라면 자신이 처한 공간에 관심을 지니고 위대한 창조적 영혼으로 언어공해를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한편 민족의 혼인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를 신화가 아닌 교화(敎化)의 역사’로 이해하고 인류의 최고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지닌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檀君)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역사와 문화의 뿌리이고 혼의 상징임’은 항상 가늠할 바다.
모처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는 시간대일지라도 메세나(Mecenat) 운동의 보편화를 ‘문화의 바람개비 운동’을 통하여 더없이 확장해야 한다. 그나마 현재 다행스럽게도 지역마다 다채로운 문화환경의 조성이 현저함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일이다. 그 같은 일면에서 러시아의 농민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Mikhail Lermontov)가 진리탐구의 정신을 끝까지 선명하게 반영시켜 ‘러시아 문학을 가장 러시아 문학답게 만들었듯’ 우주적 현상을 객관화해야 할 이 시대의 문화예술인 또한 높은 분별력으로 직면하는 일상에서 역사적 소임을 엄숙히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 푸른 생명 기호인 소통의 도구에 의해서 정신작업의 종사자인 문인의 창작물을 놓고 우주의 신비성을 캐어내는 작업에 결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연유로, 경건한 삶의 일상을 격조(格調)를 지닌 미셀러니(miscellany)로 구도 처리한 최금정 수필가가 의식 세계를 분할·통합하는 차원에서 우연의 일치일 것이나「설송회(雪松會)」의 회원으로 함께한 지난 2019년 5월, 강릉지역에 커피 문화를 몸소 조성하고 가꾼 그 자신이 ‘커피의 발견과 발전, 역사 속에서 문화로 꽃피운 그 자신의 회고록’『커피커퍼』(스타리치북스, 2019)의 출간 뒤 언론 매체를 통해 삶의 행보(行步)가 클로즈업되었다. 이같이 ‘한잔의 커피가 제조되는 과정과 커피의 종류, 도구, 제조 방식 등 커피에 관한 전반적인 상식과 정보를 서술한 체험과 느낌’을 곁들인 감회를 품격있게 서술한 에세이의 격조와 감응은 못내 담백하다.
특히 그 자신의 오랜 체험에서 형사(形似)된 수필에서 “사계절 내내 영혼이 자유로운 청량한 바람이 불고 바다의 정취를 품은 ‘靑松, 淸水, 淸心인 三多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는 강릉(江陵)의 커피커퍼(Coffee Cupper) 박물관에서 커피를 제조한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다. 따라서 커피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현상에서 못내 청정(淸淨)한 바다와 고혹적인 정취가 묻어있는 고즈넉한 대관령(大關嶺) 푸른 숲길 한가운데서 나그네를 반기듯 아득한 물안개 속에 커피커퍼가 자리해 있음은 호흡을 가다듬고 묵언으로 응시할 일이다.(강릉에 커피나무를 심은 감회)”도 놀랍거니와 지역성에 지극한 애정의 소유자인 그 자신에 의해 “오늘도 날(刃) 푸른 파도의 생명감 충만한 강문(江門)해변에서 21세기 문화의 지역구심주의 시간대에서 개아적 차별성과 자긍심을 켜켜이 지켜내며 태(胎) 묻은 산자락의 나직한 향리(鄕里)를 ‘솔향과 바다향, 그리고 끝내 커피 향’으로 치환(置換)한 그 삶의 행보는 한층 더 감사한 신의 은총일 따름이다.(「커피커퍼」와 강문해변의 감응)”에서 확증되듯 지역문화에 관한 각별한 관심은 따뜻한 감성의 변주(變奏)다.
모름지기 무한의 경쟁력이 요청되는 21세기에 처해 있는 정신작업의 종사작업의 종사자들은 최소한 비열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각박한 삶의 처소에서 ‘미끄러짐의 미학’으로 보다 냉철하게 직면하는 현상 앞에서 여유로움과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특히 다산 정약용(丁若鏞)과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의 정신적 스승’인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가 “단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흰 구름뿐일지라도 살아있는 것에 행복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듯 살아 숨 쉬는 한순간은 기적이기에, 이 지상에서 유일한 하늘의 언어인 ‘감사(感謝)’는 항상 기억할 일이다.
3. 삶의 일상과「커피커퍼」의 매혹
어디까지나 타인과 세상이 만들어 놓은 ‘행복’의 프레임을 인식하고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과 삶에 관한 올바른 좌표를 설정해야 건강하고 밝은 미래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까닭에 일찍이 ‘강릉 믹스 커피’ 콘셉트로 사업을 확장하고 주도한 최금정 관장은 그 자신이 ‘소비자의 호응도에 따라 이 콘셉트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라는 확신 끝에 지난 2016년 중국의 최대 커피 생산지인 망시(芒市)에 커피 박물관을 개관한 실적으로 존재감을 지켜왔으며 ‘비워야 채워짐’을 분별한 경영 철학으로 성공에 곁들인 불변의 법칙을 지켜낸 그 집념은 놀라운 충격이다. 그렇다. ‘느림의 시학’으로 조금씩 그렇게 흐르면서 또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선한 심성(心性)은 상처받은 타자 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자랑스러운 행위다.
모처럼 커퍼(Cupper)는 ‘원두의 품질을 감정하는 테이스터(taster)’를 의미하는 단어로 커피의 맛과 개성을 알아보고 품질을 측정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커피커퍼는 그 자신이 10여 년 전 제주 여미지식물원에서 아라비카 커피나무 50여 그루를 들여오며 비로소 커피 재배를 시작하였다. 이 같은 정황에서 강릉의 왕산 고지대에 국내 최초의 상업용 커피농장이 어려움 끝에 조성되었고, 그 후 비로소 안목해변에 2001년 최초로 커피커퍼 1호점을 개점한 최금정 대표가 현재 커피커퍼 뮤지엄을 포함해 커피전문점 다섯 곳을 경영하고 있음에 그 자신의 수필에는 30여 년 남짓 자존감 빛나는 자긍심의 일체인 비장감마저 묻어있다.
또 한편 그 자신의 수필「커피커퍼와 강문해변의 감응(感應)」에서 회고하였듯, “가끔 돌이키면 2000년 초에는 고작 자판기 몇 대와 바다의 정취를 횟감이나 물놀이로 즐기려는 사람이 전부였던 해변에서 생뚱맞게 커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대다수의 생각이 지배적인 탓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그윽한 커피 한잔의 느낌을 그 자신이 확신한 끝에, 발 빠르게 움직인 생산적 결과 뒤에 ‘커피의 도시, 강릉의 상징’인 현재의 ‘커피커퍼’를 완성할 수 있었음은 솔직한 감회다.” 모처럼 “사업의 첫 출발은 프랜차이즈 브랜드였으며 현재 안목해변 커퍼커퍼 1호점이 있는 위치에 ‘네스카페(Nescafe)’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했을 따름이다.”라는 그 절박감도 자리하고 있다. 차제에 “커피커퍼라는 오늘의 브랜드가 ‘천년의 땅! 하슬라(何瑟羅)’에 빛나는 성좌로 그 정체성을 확장하였다. 까닭에 오늘도 날(刃) 푸른 파도의 생명감 충만한 강문해변에서 자긍심을 지켜내며 태(胎) 묻은 나직한 산자락의 향리(鄕里)를 ‘솔향과 바다향, 그리고 커피 향’으로 치환한 그 삶의 행보는 감사한 신의 축복이다.”라는 깊은 감회는 못내 처연(凄然)하다.
결론적으로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전쟁(Korea war) 당시 미국의 종군기자였던 마가렛 히긴스(Marguerite Higgins)의 물음에, 혹독한 추위와 기아로 “give me tomorrow!"라던 미 병사의 그 절규는 가슴 저리게 한다. 까닭에 “덧없이 흘려
보낸 오늘은 앞서간 어제의 그들이 그렇게 소망하던 내일이었다.”라던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생명 경외의 일깨움에 새삼 마음을 다잡을 바다. 모쪼록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진정한 리더로서 “예술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라는 문화 인식의 콘텐즈 확장을 모색하고 ‘뼈를 깎는 자성과 고뇌, 그리고 새로운 정책 수립을 위한 융·복합문화’를 올곧게 구축하되 막중한 역사적 역할도 끝내 담당할 일이다.
* 약력 : 강릉태생, 『華虹詩壇』(1966) 발행인, 한국시문학학회 회장, 관동대학교 대학원장(총장대행)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아태문인협회 고문,『모던포엠』주간, 사) k 정나눔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