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천강문학상 대상
멍석
황진숙
가을로 온 작물들이 멍석에 부려졌다. 알싸한 태양초로 거듭나기 위해 고추가 제 속으로 햇살을 굴린다. 상수리는 한 자밤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부피를 줄인다. 짓찧어져 가루가 될지언정 쌉싸래한 맛을 남기고자 껍질을 떠나보낼 준비 중이다. 거둬들인 낱알들은 밀고 당기는 고무래질에 엎치락뒤치락 말라간다. 네모반듯한 두부로 세상을 물컹하게 읽고 아삭한 콩나물로 식탁을 장악하려는 콩들이 뒤섞여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여물고 나서도 물기를 내놓으며 단단해져야 된바람에도 성할 터이다. 저들이 짓무르지 않도록 멍석이 볕살을 당기고 바람을 불러들인다. 엎어지고 뒹굴며 맘껏 널브러지도록 바닥에 묵묵히 깔려있다. 더러는 곳간으로 들이지 못한 곡식을 덮는 이불자락으로 밤새 한뎃잠을 잔다. 헛간 귀퉁이에 세워지는 날엔 쥐들이 드나들며 쏠아놓기도 한다. 땅에 쓸려 헤지고 나달거리는 행색으로 기꺼이 맨땅에 깔리는 멍석이 늡늡하다.
처마 밑에 매달린 멍석을 만났다. 숱하게 알갱이를 들이느라 몸뚱이 삭는 줄 몰랐을까. 거무튀튀한 몸피 사이로 둘둘 말린 사연이 흘러나온다. 마당에 펼쳐져 곤궁하면 곤궁한 대로 그득하면 그득한 대로 그러안는 품새가 넉넉하다. 젖은 속내를 내보이면 금세 부숭부숭하게 말려 줄 것만 같다. 한여름 폭우에 시달린 나락의 거친 숨결이, 긴 가뭄으로 약이 오른 고추의 옹고집이 멍석의 품에서 잦아든다. 제각각 뱉어내는 푸념과 한숨들이 햇살에 버무려지고 바람에 내걸려 가벼워졌을 터이다. 열매들이 제 몸 추슬러 말간 낯빛으로 정돈되길, 그저 보듬고 기다려주는 멍석이 살갑다.
가까이 다가가자 묵은 세월 탓인지 쿰쿰한 냄새가 끼쳐온다. 더러는 똬리처럼 머리 위에 올라앉아 논으로 밭으로 세상 구경 나서고 싶지 않았을까. 감자며 고구마며 곡물을 내어주는 둥구미로 거들먹거리고 싶었겠지. 유유자적을 일삼다 추수철이 되면 배를 불리는 가마니의 한량 노릇이 부러웠을 테다. 속내를 짐작하느라 한참을 바라본다.
가만히 손으로 쓸어본다. 까끌하다. 보드랍지는 않지만 묻어나는 촌스러움이 질박하다. 아라베스크의 카펫처럼 무언가 묻힐까 조심할 필요가 없다. 흙이나 검불을 들여도 개의치 않는다. 퍼질러 앉거나 드러누워도 좋을 편안함이 있다.
한 겹 한 겹 밀려드는 어둠 속에서 등을 눕힐 멍석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멍석에 누우면 신산했던 하루가 저만치 밀려난다. 개밥바라기가 고달픈 하루에 접질려 비틀거리는 마음을 마중하고 풀어음이 맥을 못 춰 부대끼는 숨을 가라앉힌다.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가 몸 안의 지친 기운을 쓸어낼 무렵, 고운 달빛에 취해 설핏 잠이 들어도 좋으리.
내게도 온몸을 내어주는 멍석이 있다. 종종거리며 복닥거리는 일상을 마무리하는 저물녘이면 나른해진다. 나를 잊고 일에 빠져 있느라 늘어지기 일쑤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처진 어깨를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 숨을 고른다. 머릿속을 누르는 걱정거리를 풀어헤치고 고된 노동으로 채운 일과를 들추며 버겁다고 주절거린다. 빗장을 내건 아이들에 대한 푸념 섞인 원망도 꺼내놓는다. 이런저런 일로 성토하는 나를, 그는 언제나처럼 별말 없이 감싸준다. 토닥이는 몸짓에 엉킨 속내가 풀어지고 전해져 오는 체온으로 잠시 한잠에 빠지기도 한다.
그의 품에서는 등을 대고 뒤척이면 그만이다. 포기와 체념이 흐르는 바닥의 시간도, 엎어지고 뒤집히는 감정의 너울도, 이런저런 잡사에 요동치는 생의 굴곡도 잔잔해진다. 독백처럼 쏟아내는 상처들이 무르지 않도록, 한 닢 두 닢 쉼 없이 펼쳐지는 그의 자리가 넓디넓다.
아버지를 병원에 모신 이즈음,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오랜 기간 알코올로 병증이 깊어져 치료가 시급하건만 아버지 동기간들이 수시로 들쑤셔댔다. 멀쩡한 사람을 가뒀다면서 모진 말로 속을 헤집어 놨다. 병원에서는 형제들의 항의로 업무를 볼 수 없다며 보호자인 내게 연락을 자제시켜 달라 요청했다. 툭하면 다른 환자들과 시비가 붙는 아버지와 다달이 결제해야 하는 병원비에 따지고 훈계하는 친척들로 내 속은 말이 아니었다.
연일 야근으로 날밤을 새우는 남편에겐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한참 학업 중인 아이들 뒷바라지로 해쓱해졌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 후 자취방을 구해달라는 아이와 입씨름을 벌이던 날이었다. 저녁상을 차려놓고 남편을 부르니 대답이 없어 안방 문을 열었다.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식인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더는 개입하지 말아 주십시오.” 남편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아버지 형제와 통화 중이었다. 몇 날 며칠 속앓이하는 나를 눈치챘나 보다. 그가 나서서 쐐기를 박는다. 단호한 목소리로 들썩이는 소란통을 잠재운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남편이 방에서 나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든다. 모르는 척 말없이 헤아려주는 마음 씀씀이가 내심 고마웠다. 파이고 생채기 난 가슴으로 스며드는 그의 침묵이 아늑했다.
그는 늘 맨 밑바닥에 깔려 냉기를 막아준다. 뙤약볕에 달궈진 마당이 지열로 성을 부리건, 땅 밑에서 올라온 습기로 땅거죽이 축축해졌건 멍석은 군말 없이 맨땅으로 출정한다. 제 몸 위에 얹어진 이들 안온하도록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물리친다. 한데서 이슬이라도 맞을라치면, 온몸으로 엄호한다. 물기를 끌어안은 채 도포 자락 두르듯 뒤덮는다.
먹빛 어둠에 잠긴 그림자를 밀어낼 적에도, 드리워진 음습한 그늘을 몰아낼 적에도 그는 제 몸뚱이를 축내며 비릿한 시간을 건넌다. 배어드는 습기로 후줄근해지고 곰삭아 퇴색할지언정 온갖 비곤한 일상이 잦아들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명이 묵중하다. 척박한 나날을 잇기 위해 수없이 말리고 풀리는 멍석. 썩어 문드러지도록 물기 마를 새 없이 펼쳐지며 헌신하는 그가 애잔하다.
그간 그에게 기대 온 날들이 스쳐 간다. 연로한 부모님의 병치레, 세상에 나갈 포부로 마음만 들뜬 아이들의 외고집, 살림에 태무심한 갱년기 주부의 무기력까지. 마음대로 내맡겨도 죄다 받아주는 멍석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난장질하듯 널려도 허물마저 덮어주니 세상 두려울 게 없다. 주린 가슴을 덥혀주고 다독여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건 행복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맘속에 멍석 하나쯤은 지니고 있으리라. 오래된 기억을 지닌 흑백사진처럼 멍석은 무탈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든 비손이다. 무수한 사연이 머무르며 쉬어가는 안식처로, 해감하듯 물기를 털어놓는 자리로, 음지를 걷어내는 멍석의 은유가 환하다. 무게를 덜어내어 저마다 생의 운율을 완성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멍석이 참하다.
멍석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 고즈넉한 오후, 시나브로 고요가 덧칠한다. 계절 따라 무르익어 가는 풍경이 한없이 하뭇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멍석의 내음을 실어 온다. 그의 체취가 살포시 감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