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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숙제를 냅니다.
A4 5장을 채우라는 교수님의 엄명을 지키기 위해, 데카르트 공부를 하며 시시로 떠오른 생각을 거칠게 정리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용감한 무식함의 표현이라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 계속 공부해 가며 생각을 수정 보완해 가고 싶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지만, 그래도 늘 가르켜 주심에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강퇴시키지 않고 동학으로 끼워주시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1. 방법서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1) 나는 모든 학문을 의심하여, 명석 판명한 진리를 바탕으로 학문을 재구성 해보고 싶었다. 그 재구성작업은 한사람에 의해서 하는 것이 더 일관성이 있을 수 있고, 그 역할을 내가 자임한다.
2)내가 발견한 명석 판명한 제 1 원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 자체는 의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3) 신은 존재한다. 불완전한 내가 신이 아니면 어떻게 완전한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4)그런 나의 이성은 실은 신에 의해 나에게 부여된 것이다. 이성은 인간의 고유한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
5) 인간, 동물, 자연의 모든 것과 현상에는 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심장과 동맥운동과 같은 것은 신이 이성적 영혼을 만들고, 그후 신체와 결합해서 작동하는 것이다.
2. 데카르트의 위대함
1) 의심의 극한까지 간 후에, 의심할 수 없는 철학의 제 1원리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를 설정한 그의 치열함은 존경스럽다. 사유하는 실체... 마치, 이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한 인간존재가, 그래도 눈을 껌벅이며 자기앞에 펼쳐진 우주전체를 상대하며, 또 그것을 자기 안에 펼쳐져 있는 또하나의 우주로 소통하고 받아들이는.. 1:1 로 맞짱뜨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2) 그리고, 이런 사유하는 실체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양식 bon sens, good sense', 이성 에 의해 모든 이들이 경험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여줌으로써, 중세의 신의 종속물이나, 고대의 사회적 개인을 넘어선, 독립주체로서의 개인을 열어제쳤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가 원자적 개인이 먼저 주체로서 존재하고, 그 개인의 계약에 의해 사회와 국가가 존재한다는 근대철학, 근대성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들을 만 해 보인다.
3) 데카르트는 자신시대 지식의 한계를 명확히 보고..., 그것을 허물고 더 확실한 진리의 기반위에 지식체계를 올려놓고 싶어 했고.., 그런 작업은 여러 사람이 하는 것보다 한사람에 의해 되는 것이 일관적일 수 있다 생각하며,... 그 일을 자임했다....는 측면에서 지성사의 혁명가이기도 할 것이다.
3. 데카르트의 머뭇거림
1) 데카르트 철학의 근본 한계는 신의 문제로 보인다. 그는 자기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참일지 아닐지의 판단을 신에게 맡겼다. 진리의 근거는 신이다. 그런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데, ‘불완전한 자신이 완전함을 의식할 수 있는데, 그렇게 완전함을 의식할 수 있으려면, 어떤 완전한 존재가 그 관념을 자기안에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완전한 존재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는 증명방식은 아무리 봐도 해괴하다. 어떤 불완전한 컵의 모양을 보고 완전한 컵을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인식과정의 진행일텐데... 존재자체가 결핍인 인간이 늘 좀 더 완전한 상을 상상하면서 사는 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인간의 자연스러움일텐데, 어찌 그것이 신 존재의 근거가 된단 말인지...
또 그런 말을 중세 기독교 철학의 기반을 다졌다는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사람의 말이 었다면 좀 앞뒤가 맞는 듯 했을 텐데, 인간의 이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신으로부터 인간이 탈출하기 시작하는 근대를 열었다는 칭송을 받는 사람에게서는 앞뒤가 안맞는다. 머뭇거림으로 느껴진다.
2) 1부에서 그는 자전적 서술을 통해 어린시절부터 유럽 최고의 명문학교를 다니며 여러 학문들을 두루 섭렵해본 결과, 뛰어난 지성을 많이 배출한 자신의 시대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신이 볼 때 책이나 학교에서는 확신할게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2부에서 이후 자신의 지적 섭력과 의심의 과정을 통해 확실하고 명석판명한 진리를 찾기위해서 지켜야할 4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 우리나라 1980년대 아주 당차고 야심만만한 한 젊은이가 매우 강하고 비타협적으로 세상과 지식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상상된다.
하지만, 3부로 가자, 분위기가 확 바뀐다.
3부에서 그는 완전한 진리의 재구성하기전에라도 행복하게 살기위해선 잠정적으로 몇가지 도덕격률을 지키며 살기를 권하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고 종교를 확고하게 견지하며 가장 온건한 의견을 따를 것/아무리 의심스러운 것이라도 일단 취하기로 했으면 아주 확실한 것인 양 따를 것/ 세상을 바꾸려 하기 보다 내 욕망을 바꾸려 할 것/천직을 정하는 것
이 대목을 읽으면 시대에 순응하고 재벌회사에 다니며 그 안에 적응하려 영혼까지 팔면서 정년까지 버텨보려는 50대 회사원이 상상이 된다.
같은 책에서 전혀 상반된 두 개의 태도와 분위기가 있다.
데카르트의 머뭇거림이다.
4. 그런 데카르트의 머뭇거림은 어디서 왔을까? 크게 세가지 이유로 추측해 본다.
1) 서양문화전체
서양의 문화는 기원전 신화의 시대부터 중세의 유일신시대, 과학문명의 현재까지도 그 근저에는 신이 깔려져 있다. 서양의 그 누구도, 특히 철학자들의 사고는 신에 대한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양철학 전체가 신과의 씨름으로까지 보인다. 19세기 니체의 초인도, 헐리우드의 수퍼맨, 아이언맨 등도 나에겐 자신의 밖에서 구원자를 찾는 서양문화의 연장으로 보인다.
2) 시대자체
당시의 시대 자체가 신으로부터 막 탈출하기 시작하는 인간이성을 상상할 수는 있었으되, 신에 대한 기댐이 아닌 이성 스스로가 재구성한 사회구조와 역사적 경험은 일천했을 것이다. 또 그런 흐름을 처단하고 차단하려는 시대의 주류사상인 기독교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3) 데카르트 사고체계
현대 뇌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의식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존재하기 때문에 사유하는 것이냐,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냐..유물론인가 유심론인가, 이성과 감정의 구분...이런 모든 것의 대립구도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물질보다는 이성을 강조하고, 존재론 보다는 인식론을 강조하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동시에 그는 모든 원리가 명석 판명하기를 원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작업 전체의 전제가 흔들린다.
그러면 그 이성의 실체는 또 어떻게 명석판명해 지는가? ...어떻게?... 실은 그 명석 판명성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간이성을 통해 탈출하려는 신으로 되돌아 간다. 신에 의해 명석판명해 진다고...
5. 형이상학적 원리 vs 자연학
1) 왜 방법서설중 4장 형이상학에 대하여는 계속 얘기되지만, 5부 6부 자연학적 문제들 은 재론이 많이 안될까..두가지 이유일 듯 하다. 하나는 철학자들이 그 내용에 익숙치 않아서/ 또하나는 틀린 것이 명백한 것이기에..
2) 사실의 관찰과 증명에 해당하는 자연학에서는 옳고 틀린 것을 규명하는 것이 명쾌하다. 심장과 동맥순환에 대한 데카르트의 서술은 현미경의 발달과 여러 임상실험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고, 그래서 그의 서술과 용어(동맥성 정맥? 정맥성 동맥?) 는 그냥 역사적 의미 로만 존재하지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영혼 속에 영원한 진리(관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처럼, 자연 속에서도 신이 확립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바램은 진화론에 의해 극복되엇고, ’모든 동물은 기계‘ 라는 그의 태도역시 생리학 심리학 등에 의해 폐기된지 오래다.
3) 그에 반해 형이상학적 사유는 논쟁과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왜그럴까? 사유라는 것 자체가 관찰과 증명이 어려워서?..그럴 것이다. 동시에 또하나는, 신에 의한 창조가 허구라는 것이 과학과 진화론에 의해 ‘증명’ 단계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인간의 본성이 절대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훨씬 더 강력한 이유이지 않을까..달리말하면, 신의 창조라는 것만 포기하면, 형이상학에 대한 여러 논설역시, 자연학처럼 역사적 의미로만 위치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가볍게!
6. 데카르트의 인류사상사에서의 위치
1)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이 사건을 내가 학교다니던 1970-80년대에는 ‘신대륙의 발견’, ‘지리상의 발견’ 이라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 세계사 교과서에는 이 사건이 그다지 중요한 일로 서술되지 않는다.. 서유럽의 ‘대항해시대의 개막’ 정도..
1492년의 이 사건은 분명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신항로가 개척되고, 대륙간 교환과 영향이 그 전에 비해 훨씬 긴밀하게 되고, 대륙간 국가간 경쟁이 격화되는..말그대로 ‘세계’사 가 성립되는 기준점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그 전까지 지구 전체를 통합해서 설명하고 기술할만한 역사 꺼리는 몽골에서 유럽까지 정복해 갔던 징기스칸을 빼면 별로 없는 듯 하다.
2) 그런데, 이 사건을 우리 교과서에 유럽인들이 미지의 세계를 개척했다는 ‘신대륙의 발견’ 이라 올리는 것과, 서유럽의 항해시대의 개막이라 기술하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세계의 역사를 유럽이나 유럽의 근대적 대 발명품인 미국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들 만의 시선에서 벗어나 좀더 지구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해 볼것인가..의 차이일 것이다.
그간 우리 스스로의 주체적 입장을 내 새울 수 있었던 세계 주도권의 변동이 있었다. 둘다 유럽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는 미 소 대립과 미국 일방 주도의 세계가 중국의 부상과 미 유럽의 정체, 그리고 우리가 사는 나라인 대한민국의 세계적 경쟁력이 확인되면서, 과거 역사역시 바뀐 우리의 태도로 재구성해 볼 욕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3) 사유체계, 혹은 철학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어왔으리라 짐작되고, 또 필요하리라 느껴진다.유럽이 지리상의 발견으로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고 그 여세를 몰아 세계전체를 2-300여년간 지배해 왔듯이, 정신세계에서도 유럽의 철학은 세계전체의 일반화된 사고체계인 듯 했다. 최소한 나에겐 절대시화 되었던 사유체계였던 서양철학의 역사와 내용은, 이제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 서양철학은, 서유럽이라는 지구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유일신 체계라는 사유체계의 한 방식을 전제로 한, 그래서 동양이라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오히려 후진적일 수도 있는 체계의 내용과 역사였다는 지극히 상대적인 태도로 보아야 한다, 그러고 싶다는 것이 데카르트를 공부하며 계속 따라다니는 생각이었다.
4) 사상의 공간을 서양만이 아닌 동양의 불교, 유교, 도교를 포함하는 인류 사상사 전체로 확장한다면 데카르트의 위상은 조금 낮아지는 느낌이다.
인간역사는 서양철학에서 신화의 시대라고 일컬어 지는 시대를 모두 공통적으로 겪는 듯 하다.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대비할 수 없엇던 인간에게 유일한 대안은 자연 그 자체나 현상을 겁내하고 숭상하고 빌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다신교였을 것이고.. 그러다, 지구 서쪽은 예수, 무슬림, 유대교등의 유일신 체계로 가고, 그것이 중세까지 이어진 반면, 동양은 인간내부의 성찰, 예의, 지혜 등을 찾는 방향으로 갔다. 말하자면, 신을 전제한 사고체계는 인류 일반적이라기 보다는 특정지역 특정시대에 한정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특히나 서유럽의 중세때 극에 달한다.
그 상태를 데카르트는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달리 말하면 서양신의 존재가 상대화되면, 그 상대화된 신에 의지하여 참 진리를 찾고자하고, 순환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데카르트의 위상은 좀 낮아지는 느낌이다.
7. 근대 서양철학의 공헌과 한계
근대 서양철학은 이성, 주체 객체 몸, 의식, 무의식 감정 직관..등등을 개념화 한 듯 하다. 동양에서는 뭉뚱그려져서 사람 인간이라고 통칭되고, 서양에선 신의 종속물이있던 인간을 구체적으로 해부하고 개념화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대해 훨씬 뚜렷하게 알게 해 줬다.(신으로 부터의 탈출) 그리고 그런 해부 개념화하는 태도는 사물을 구분하고 쪼개서 보는 과학의 길을 열었고, 그것이 인류를 자연의 지배로부터 탈출하게 해주는 산업혁명의 길로 인도했다.
하지만, 21세기의 관점에서 볼 때, 그 한계 또한 존재한다.
1) 통합하지 못함- 세상만물, 모든 개념은 구분되되, 또한 통합된 일체. 우주만물, 자연물이다. 인간역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일체이다. 하지만, 서양철학은 그것의 해부와 구분과 개념화는 했되, 다시 통합하지 못함으로써, 대표적으로 의학은 각 과로 구분되데 전인의학이 못되고, 유심론과 유물론이라는 구도는 공산주의까지 실체화되어 20세기라는 한 시기를 피의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2) 신의 존재- 서양철학에서 신을 빼면 대들보가 흔들리는 느낌. 기원전 5세기의 소크라테스부터 신은 죽었다 고 외치는 19세기말의 니체, 20세기의 사르트르가지 모두 신과의 씨름을 하고 잇다. 하지만 신이 없다면? 모두 허공과 싸우는 돈키호테인 셈
3) 현대 과학으로부터의 도전- 다시 말하지만, 물질과 의식의 대립구도는 뇌과학의 입장에서는 성립불가능한 대립구도일 수 있다.더 근본적으로는 서양철학의 토대일 형이상학(신과 의식에 대한) 은 빅뱅 우주론 등 현대과학과 일치하느냐 하는 심대한 의문에 마딱뜨리고 있다.
8. 맺음말
인간 역사란 뭘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함을 확보해 가는 과정 이라 할 듯 하다. 자연재해로부터, 신으로 부터, 국가 제도의 폭력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존엄해 가는 과정..
인간이 만든 사상...철학.. 그 역사는, 그런 인간 존엄성을 포착할 힌트를 주고, 확장할 수 있는 근거를 주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역사일 것이다. 그를 위해, 인간은 자연재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신이 필요했고, 신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이성이 필요했다.
그러면 남아있는 것은 뭘까? 미래의 사상은 무엇일까?
그런 모든 것이, 실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임을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고..그것을 만든 주체인 인간 스스로의 내면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간이, 자신은 이 장대하고 장구한 우주의 역사에서 스쳐지나가는 티끌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또한 그 띠끌역시도 또하나의 우주고, 그 티끌과 우주가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남아있지 않을까... 이것이 곰을 믿는 부족과 호랑이를 믿는 부족의 싸움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지금의 종교간 갈등과 경제적인 탐욕을 극복하고, 사상면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하는 답없는 혼돈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정돈되어 가는 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데카르트는 인류역사와 사상의 역사에서 신으로 부터의 탈출을 도운 한 티끌로 기억될 만 하다.
첫댓글 '용감한 무식함', 역사의 진보! '티끌론', 지난 하안거 사색의 성과?
그 어떤 뿌리가 느켜집니다.
잘생긴 아우님이 박식하기까지............
신이 있다면 좀 불공평하다는 .............투덜투덜
간명하면서 명료한 주장, 해박한 지식은 역시! 하고 감탄하고 있다.
작은 티끌인 몇가지 오독에 대해서 교수님께 질의하시길.........
근자님..지적 감사하구요.. 몇가지 오독을 조금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면, 이번 주말 책걸이 준비할때 도움 될 듯 합니다. 데카르트 책이 실은 내용이 어렵진 않는데 집중이 잘 안되어 거칠게 읽은게 사실이라 그런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부탁드려요~형~^^
우선 동물에 깃든 신의 정신 ......, 서설 5부 '동물과 인간의 차이' 파트는 인간의 신체와 동물은 오토매틱한 기계로 보는듯
인간 정신만 신이 부여한 이성, 즉 신의 정신이 골골루 편재되어 있다고 보는듯.......
나도 실은 잘모릅니다. 그냥 그럴듯 하고 어디서 그렇게 들은듯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