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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김유진) (2)
4. 제작과정
감독과 배급사 양쪽에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일단 스필버그 감독 본인이 촬영 기간 내내 심각한 멘붕을 겪었다.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 문서상으로만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던 스필버그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사건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작중에서 그려지는 온갖 충격적인 광경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게다가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냈기 때문에 오히려 충격이 더 배가 된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시달려온 유대인으로서의 위치와 정체성 문제가 겹치면서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당시에 엑스트라 중 누군가 밤 10시 30분에 칼퇴근해야겠다고 투덜거리자 뛰쳐나와 누가 그랬냐고 불같이 화를 냈을 정도로 히스테릭해지고, 절친한 친구인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해서 날마다 나를 좀 즐겁게 해주게! 제발…….이라는 식으로 하소연했다고 한다.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낀 배급사 유니버설 픽처스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 조건으로 딱 한 가지를 내걸었다.
쉰들러 리스트 찍기 전에 쥬라기 공원 사장은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면 쥬라기 공원은 못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1992년 8월 쥬라기 공원의 촬영을 시작해 11월에 촬영을 끝냈고, 임시편집본은 촬영이 끝난 지 1주만에 나왔다. 이게 다 끝나고 나서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은 다음 해 3월에 시작되었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상당히 바뀐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예지력 상승.
배급사에 문제가 된 또 하나는 바로 흑백 촬영.
컬러 영화가 당연해진 시기에 흑백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희한한 요청이었다. 일단 흑백으로 극장 개봉까지는 받아준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을 더 벌어볼 생각으로 '영화를 컬러로 찍어서 나중에 VHS 발매할 때 컬러 버전도 내보자.'는 식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거절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게 현장에서 아무도 흑백 영화 촬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컬러 영화를 찍던 식으로 세트를 만들면 면과 면의 명암차가 크지 않아서 화면이 뭉개진다든지 하는 문제들을 사전에 발견한 제작진은 인위적으로 페인트를 칠해 세트의 명암을 조절하는 등의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 영화에서는 총 다섯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나오는 유대교 예배, 후반부에 나오는 쉰들러 묘소 참배 장면, 그리고 쉰들러가 안식일(토요일)유대교 예배를 허용할 때 나오는 촛불, 그리고 가장 유명한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 아이(Girl in the Red Coat).
또한 첫 장면이 컬러로 진행되다가 흑백으로 바뀌며 본 내용이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시점이 현재로 바뀌며 다시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기법도 고전적인 기법으로 이미 오래전인 1939년 오즈의 마법사가 썼던 기법을 반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건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다.
이런 갖가지 고생을 하면서 희한한 흑백 영상을 함께 만들어낸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Janusz Kamiński)(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계 미국인)는 이후 나온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당시 뉴스위크 지 보도에 따르면 전부 폴란드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촬영 당시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필버그를 알아본 폴란드 노인이 촬영현장에 다가오더니만 스필버그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나는 히틀러 새끼가 싫지만, 유대인[9] 이 말에 스필버그는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5. 흥행 및 비평
스필버그는 이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대단한 호평 속에서 예산의 10배를 거둬들이며 스필버그에게 마침내 아카데미 시상식를 안겨준 영화가 되었다. 그전까지 스필버그를 상업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낮춰보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시작으로 스필버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6. 유대인의 피해의식?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고, 스필버그가 유대인이라서 그런지 유대버그라면서 까거나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 반응하기도 하는데, 유대인들의 피해를 다뤘다기보다는 휴머니즘과 나치의 폭력이 주제로 다뤘다는 반론이 있다.
실제로 비평가에 따라서는 이 영화는 유대인보다는 나치의 폭력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도 말한다. 영화 안에서 쉰들러는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느꼈다기보다는, 나치에게 사악함을 느꼈을 뿐이라는 것.
실제로 쉰들러는 후반까지 공장나치가 저지르는 온갖 만행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쉰들러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비정하기까지 한 사업가였다. 특별히 나치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을 죽게 둘 수 없다"라는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고자 했던 것.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것만 해도 넘치도록 대단한 것이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면서까지 1,100여 명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미국 영화들이 유대인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고 너무 유대인의 피해만 많이 영화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홀로코스트를 다뤘다고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똑같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라도 나치의 악행을 이 영화만큼 그대로 다룬 작품도 그리 흔하지 않다.
7. 논란거리
영화사에 남을만한 작품이지만 당시 일부 영화계층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바로 수용소 가스 장면 때문인데 이 장면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쉰들러 유대인들이 행정착오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던 사실 자체는 실제로 있었고, 이들은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쉰들러가 협상을 통해 구해냈다. 단, 이들은 처음부터 노동자로 분류되어 아우슈비츠로 갔기에 가스실에 들어간 게 아니라 진짜로 소독 처리를 받고 막사에 수용됐으며,
영화에서처럼 가스실로 끌려 가는 사람들과 교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화에서는 끌려갔던 쉰들러 유대인들만 구해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들 외에도 노동 수용소에 있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유대인 150명 정도를 노동자 파견 명목으로 더 구해냈다.
그러나 이렇게 추가로 구한 유대인들은 쉰들러 유대인들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나빴던 탓에, 아우슈비츠에서 쉰들러의 공장으로 오는 동안 열차 안에서 7명이 사망했다.
8. 기타
•영화 중 밤이 되자 독일군이 유대인들이 은신하고 있던 건물에 다시 들어가 청진기로 천장 벽을 짚어보는 등 수색하여 숨어 있던 유대인들을 모조리 사살해버리는 학살이 벌어지는데, 이때 건물에서 한 독일군 장교가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바흐MP40모차르트의 곡이라고 말해준다. 살육의 현장에서도 장교가 치고 있는 곡이 마치 열심히 일하다 쉬는 것처럼 바흐냐, 모차르트냐만 신경쓰고 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바흐의 곡임에도 모차르트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교양있는 체 하지만 실상은 무지한 상태임을 꼬집는 장면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검사가 끝난 직후 노동 가능으로 분류되어 좋아하던 유대인들이 아이들이 실려가는 트럭을 보고 그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눈이 뒤집혀 일제히 달려들고 경비병들이 통제에 실패하는 모습도 굉장한 명장면.
•아이들은 어디 좋은 데라도 가는 줄 알고 어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가슴 아픈 모습이 나온다. 서슬퍼렇던 SS들도 이 상황에선 감히 군중에게 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서만 쏘고 단순히 시위를 말리듯 붙잡기만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오스카 쉰들러의 노력으로 생존한 유대인들과 그 후손, 당시 생존했던 에밀리 쉰들러 여사 등이 이스라엘의 쉰들러 묘지에 참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즉 당시 실제로 생존한 본인들이 참배하는 것을 찍은 것이다.
•특히 쉰들러의 묘에 장미꽃을 헌화하는 이는 바로 극중에서 쉰들러 역을 맡은 배우 리암 니슨. 카메라가 멀리서 촬영하는 시점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는 있는 수준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R등급 영화이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뮌헨(영화)이 R등급을 받았다.
•2018년 재개봉시 스필버그는 집단적 증오가 조직화되고 산업화되면 학살이 일어난다고 지금이 (개봉 당시보다) 더욱 위험한 시대라는 발언을 하였다.
•한국판 아몬 괴트 성우의 경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지명했다.
•한국판 성우 강구한은 호연을 함으로서 보답하였다.
첫댓글 영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