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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예 칼럼>
감성적 일탈(逸脫)과 치열한 삶의 양상
- 강시연 시인의『무거운 햇살』과 시적 관망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모던포엠 주간)
1. 변주(變奏)의 시학과 시적 교감
일단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극한 대립으로 심각한 갈등 구도와 맞물릴지라도 창조적 영혼은 응당 위대하고 생명감이다. 까닭에 ‘용서와 통섭(通涉)’을 자신의 삶에서 일관되게 지켜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인 남아연방의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처럼 ‘몸소 꿈을 실현하지 않으면 불가능을 가능한 현실로 결코 전환할 수 없다.’ 또 한편 힘겨운 삶의 시간대에서 시적 형상화는 끝없는 상상력과 연계성을 지니기에 특정한 시인의 시적 본질과 그 합리적 해법은 삶의 통찰력에 잇닿아 있다. 따라서 그 자신의 시적 언어로 독자 간의 긴장감을 자극하고 직물 대상을 변형시켜 ‘의사소통의 예술로서의 시’를 변주(變奏)함은 새삼 주의 깊게 검색할 일이다.
그 같은 일면에서 강시연 시인의 시집인『무거운 햇살』(모던포엠, 2025) 해설 모두(冒頭)에서 비록 우연의 일치일 것이나 현재 평자가 동명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정순영 시인과 고문으로 있는『한맥문학』에서 신인문학상(2016)과 또 한편 주간인 『모던포엠』의 추천작품(2021) 수상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까닭에 세속적인 틀을 헐고 부수며 암울한 세태를 의연하게 자신의 집념으로 헤쳐나가는 ‘창조적 영혼을 지닌 진정한 극소수의 실체’로 이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는 신선한 충동이다. 모처럼 ‘우리의 소중한 삶에 있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때로는 운명적이다.’라는 지적처럼 그의 첫 시집『사과가 있는 정물』(모던포엠, 2023)의 평설에서도「일탈의 매혹과 직물 대상의 표리(表裏)」에 접근하여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조국의 암담한 현상을 우려하는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민족의 역사요, 혼(魂)인 모국어의 속살에 대한 항변’을 일관된 의지로 표명한 평자의 해설도 가늠할 바다.
그렇다. ‘가파른 길 오르다 숨찬 모습이 보일 듯도 하지만, 다시 숨을 가다듬고 침묵 속에 관찰과 탐색으로 시인만의 시율(詩律)’을 보여준 그 자신이 제2 시집『무거운 햇살』의 서문격(序文格)인「시인의 말」에서 “나의 중심은 언제나 잡히지 않는 내 안에 있다. 위로도, 아래로도 닿지 않는 공허 속의 수렁···이순 지나 「무거운 햇살」에 그 중심을 옮겨놓는다.”라는 시적 의미는 의미심장하다. 또 한편 그 시집의 편집 구도는 살아온 세월의 연륜만큼 한결 짜임새가 치밀하다. 따라서 그 자신이 지상에 갈 앉은 낮은 음조로 절절한 외로움과 고독을 자위하며 인간의 형상을 진솔하게 그려낸 간결함은 독자의 감응을 자극하기에 매혹적이다.
각론하고 즉물적 물상의 심부를 해체 시켜주는 도식으로 동시대의 독자에게 ‘들어냄보다는 감춤’의 담론을 표출하며 소멸하는 것의 소중함을 실증하는 정신작업은 더없이 유의미하다. 일단 ‘끝없이 끊임없이’를 반복한 그 자신이 “기다림은 칼바람 속에서도/간절한 기도로 서는 것(새해 아침의 기도)”의 보기나 “이팝나무의 전설이/오묘한 비밀 그대로 고여 있다(위량 못)”라는 시적 정황도 헤아릴 점이다. 까닭에 ‘창백한 얼굴에 남천 빛 입술, 목덜미에 꽂히는 송곳니’에서 응축된 그 긴장감은 존재의 의미로 정체성을 확장하여 깨달음과 영혼의 정화로 결속된 맞물림이다.
또 한편 내재된 생명 외경심이 감성의 시학으로 해명되는 소박하고 진지한 그 자신의 시적 행보는 혼성모방(pastiche)이나 화려한 희언(戱言)을 생리적으로 거부하면서도 차별화된 육성으로 정체성 있는 독자적 시의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까닭에 ‘제우스의 창이 하늘을 찢었다’라는 전제 아래 “붉게 익어가던 사랑,/갓 핀 꽃, 시든 꽃 낙하되어/바닥에서 구른다(토르의 안장)”도 이채롭거니와 그 의미망의 층위는, ‘감동의 파상과 영혼의 정화, 즉 시인의 시적 서정과 내면 풍경’은 새삼 빛남이다.
2. 감성의 극대화와 모순(矛盾)의 동일성
모름지기 그 자신은 자존감이 빛나는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새삼 유추(類推)되듯 다소 압축미가 배제된 시편에서 생명의 씨앗을 파종(播種)하는 농부의 보폭은 새삼 현재성이 엄격한 탓일까? 언젠가 깊은 산중에서 길을 묻는 수행자에게 어느 선사가 “눈앞이 길이다.”라며 일깨움을 주었듯 그 자신의 시편은 ‘시어의 현학성과 눈부심, 그리고 기법의 뛰어남이 응축되기’에 타자에게 공감대를 불러줄 따름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시대를 앞서간 춈스키(N. Chomsky)가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라며 언어의 보편성을 비판적으로 제시하였듯 인간은 자기 흔적을 남기는 존재이다.
까닭에 대다수 그 자신의 시편에서 ‘연무가 스미면 삭제되어 가는 기억들’일지라도 “"누군교?/찾아주셔서 고맙심데이"//이젠 자식들에게도 가끔/안개가 끼는 날이 오고 있다(안개주의보)”도 그렇거니와 ‘돌 하나 던지면 깨질 듯 팽팽한 밤하늘’의 정경이 정신풍경화로 클로즈업(close-up)되는 현상에서 “조각들은 바람을 안고/시월의 마지막 밤을 구른다//더운 포도주 한 잔/마음 데워 줄 그리운 그대/생각 나는 밤이다.(시월의 마지막 밤)”에서 또 그렇게 ‘시월의 마지막 밤’은 적조((寂照)함에 이끌려 깊어간다. 한편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의연 중 몸가짐에 기품이 묻어있다 할까 식구들도 상스러운 말로 다투는 일은 없었다’라는 다감한 감회(感懷)에 “나의 노동요는 하드락 혹은 메탈 음악/늘 액션 영화를 좋아했다(중심을 고쳐 세우고)”에서 마음을 다잡는 정황이다.
혹여 ‘제대로 못하면 어김없이 찢기는 통증이 등으로 번졌다’라는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일관된 집념 곧추세워 “몇십 번의 강물이 얼었다 녹는 동안/물이 되지 못한 유빙이 강물 따라/흘러가며 벽을 찌르고 있다(잔혹 동화)”라는 일면에서 그 자신이 개아적 차별성을 지켜내며 소외된 타자 간에 진정 행복한 실체로 ‘푸른 생명의 언어를 끊임없이 조탁하는 정신작업’은 더없이 매혹적(魅惑的)이다. 비록 혼돈의 현대사회가 수시로 변형(變形)의 틀을 만들어갈지라도 저마다의 삶을 존재감에 빛나는 특정한 시적 상상력과 생명감에 기인(起因)한 정신작업은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짐짓 ‘변주(variation)’의 개념이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선율·리듬·화성 따위를 여러 가지로 변형한 연주이거나 그 연주임’은 가늠할 탓이기에, 한층 더 경이로운 현상은 ‘내구성이 견고한 잠자리 모시망으로 진화된 날개’일지라도 “너의 꿈 실현시키는 이상이 되지//햇살은 뻐근한 너의 몸에/윤활유가 되겠지(羽化)”라는 그 안도감 뒤 어설픈 넋두리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모름지기 사각의 빌딩 숲에 몸담은 일상이지만, 이 땅의 누구보다 공동체 인식을 소중하게 감응하고 그 자신의 삶에서 매몰차게 모남을 거부한 날(刃) 푸른 비평의식은 지극히 놀랍다. 따라서 단조로운 호흡의 ‘환한 달 속에 푸근한 미소 보내는 할머니 얼굴’은 물론 그 시적 형사(形似)는 켜켜이 지켜낸 자존감으로 한층 더 빛날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문예학자 시클로프스키(Victor Borisovich Shklovsky)가 역설한 예술창작 이론의 일상화로 참신하지 않은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여 ‘낯설게 하기’로의 경향은 새삼 헤아릴 바다. 까닭에 삶의 처소에서 ‘사월의 햇살이 무겁게 어깨를 눌러 발만 보고 걸었어’라고 해명할지라도 한껏 중량감이 실린 푸른 식물성 언어로 빚어낸 제2 시집의 대표 시격(詩格)인「무거운 햇살」에서 “저 끊임없이 내리는 햇살이/조금씩 어깨에서 벗어지고/있는 거야”의 시 심리가 대립 구도로 변형되어도 합리적이되 상호보완적 공존의 양상은, “공간은 사회적 산물이다.”라는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역설처럼 ‘눈앞에 전개되는 온갖 형상과 그리움’의 확증은 친화력을 작동해 빚어낸 결과물이다.
또 한편 철학적 사상시(思想詩) 계열에 실험주의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그 자신의 시적 차별화는 종교와는 무관할 것이나 우리 평단에서 ‘그 자신의 시적 혈맥에 고요한 정원 안에 다소곳이 움츠리고 앉아 시선을 응축하는 정감이 느꺼운 시인으로 평가’되는 삶의 동질성에 비춰 시편「비문碑文」과「화석이 되어」는 동일 선상에서 관심을 지니고 관망할 점이나 그 양상은 아름다운 창조적 영혼의 결속(結束)이다. 까닭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라고 자위(自慰)하며 “'달빛 아래 춤추던 여자'로/남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비문碑文)”의 일면에서 지극히 겸허한 삶의 자세로 생을 반추(反芻)하듯 ‘나는 화석입니다’ 담담히 자인(自認)하며 “이젠 느슨해지려는지/등골은 견고하게 밀착한다(화석이 되다)”라는 합리적 해법은 묵언으로 응시할 바다.
3. 사유의 깊이와 의미론적 순환
각론하고 절대 고독 앞에서『긍정적인 사고』의 창시자로 ‘만인의 성직자'인 노만 핀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의 지적처럼 마음의 평정심을 올곧게 지켜낸 그 자신은 병폐적인 내면의 갈등을 해소한 시적 치유의 소유자다. 까닭에 그 자신의 담백한 시격(詩格)은 불투명한 사회현상에서 대다수 독자가 겪는 존재의 가벼움도 생동감 있게 변주시키는「사유의 깊이와 의미론적 순환」의 잇닿음이다. 따라서 밝은 미래사회의 구축을 위해 푸른 식물성 기호로 빚어낸 올곧은 ‘감동의 시학’은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본질적 정신작업의 결과물이거니와 그 자신은 지극히 겸허(謙虛)한 삶의 실체로 시 짓기의 일상에서도 ‘난 강처럼 자연스럽게 가고 싶다(나는 초보 시인)’를 항상 자처하기에 고정인식의 틀 깨기는 또한 엄숙한 모티프의 동기부여다.
차제에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등장인물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줄거리를 담은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로, 지구촌에 K-문화의 관심도를 충격적으로 안겨준 게임의 이미지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은/다 술래로 잡혔는지 보이지 않는다(오징어 게임)”로 소재의 다양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 자신에게 이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 황홀한 일몰(日沒)의 시간대, 비록 그 자신이 지상에 갈 앉은 나직한 음조로 읊어낸 ‘파스텔톤 분홍 꽃빛 구름이 수평선에 걸렸을지라도’ 저토록 “고운 꽃물 가슴에 퍼담아낼 수 있다면/지는 꽃이 되어도 좋겠다(내 삶에 저녁이 오면)”라는 절박한 기대감과 설렘 뒤 ‘저 분홍 바다에 누워 일렁이는 꿈결 속에 잠길지라도’ 못내 비장감은 서러운 눈물로 묻어날 따름이다.
특히 그 자신의 다양한 시 의식에서 기존의 형태에 머물지 않아 영혼이 자유로운 바람처럼 시의 본말(本末)인 순수서정성이 한껏 자리함은 아래의 시편「달무리」에서 담백한 시격(詩格)으로 고조되기에, 마치 ‘빈자(貧者)의 성녀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의 별’ 또한 새로운 변주(變奏)로 ‘눈빛에 평온함 흐르는’ 개아(個我)의 차별성이 절대 별개일 수 없다. 또 한편 바람의 통로와 생명 기표의 교신이라는 관점에서 창조하는 영혼은 아름답고 위대하기에 가슴 따뜻한 정신작업의 종사자라면 응당 소외와 갈등으로 인한 마음의 깊은 상처(trauma)로 좌절한 삶의 처소에서도 꿈과 비전을 꽃피워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살랑살랑 춤추는 여인//기도하듯 곱게 모은 두 손/꽃으로 피었는가(달개비)”의 ‘포괄적인 개념을 동반자적 관계로 유지하며 완전성을 구현하는 연유로’ 꽃말이 ‘짧은 사랑, 외로운 추억’인 ‘달개비꽃’을 위한 시적 형사(形似)의 과정에서 시대적 소임을 충직하게 담당하며, 감성적 교감을 합일시켜 적확하게 통신하는 행위는 또 하루의 삶을 빛나게 한다. 그렇다. 모처럼 ‘버스 안 어느 여인 가슴 한복판 Happy box라는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를 치밀하게 묘파(描破)한 한 폭의 정신풍경도 이채로울 것이나 시적 기법(craft)으로 반복법을 활용하며 굳이 ‘낯설게 하기’를 가늠치 않더라도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마음을 갖게 될까/불행 같은 건 오지 않는 걸까(Happy box)”라는 그 낌새는 지극히 회화적(繪畵的)이다.
결론적으로 그 자신이 내면 인식을 다채로운 색조로 채색한 시적 수사(修辭)는 깊은 영혼의 상처로 고통받는 소외된 타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스스럼이 없다. 까닭에 차별성을 지닌 ‘마지막 못다 부른 정한(情恨)의 노래’는 순수한 영혼을 위한 결(結) 고운 언어의 그물망으로 건져 올린 눈부신 창조물이다. 그렇기에 강시연 시인의 자애로운 모성(母性)의 그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울림은 가일층 일체감으로 충직한 독자의 신선한 기대치다. 모쪼록 우리 현대 시문학사에 켜켜이 그 개아(個我)의 차별성이 빛나는 시적 영토를 구축하며 알맞은 정신기후의 조성과 정체성을 확장하는 생명의 역동성에 못내 감응할 따름이다.
*약력 :「華虹詩壇」(1966) 발행인, 한국시문학 학회 및 김동명학회 회장, 관동대 교수(대학원장 및 총장대행)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사)k 정나눔 이사장.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아태문인협회 고문, 월간『모던포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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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창섭 교수님 서평이 감돈 그 자체입니다 감사합니다
엄창섭, 아시아문예 칼럼, 강시연 시인의 감성적 일탈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