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무엇을 기도할까』를 읽고,,, 2010.3.14, 민 철 홍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이다. 특히 한국 교회의 부흥은 기도와 함께 이루어져 왔다. 새벽기도에 사람들이 넘쳐 모이고, 금요철야기도회, 그리고 금식기도원에 올라서 작정기도를 드리는 것은 한국 교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의 함정에 종종 빠지게 된다. 즉 처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분들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해 막연한 어려움을 느끼며,,, 신앙의 년 수가 오래된 분들은 ‘기도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지 못하고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본 서 저자이신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고 먼저 배워야 함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이상적인 기도는 그 주체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기도의 생명은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무엇을 기도할까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친절하게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먼저 구해야 할 3가지가 전반부에 나오고 그 뒤를 이어서 나의 필요를 위해 구해야 할 4가지가 후반부에 나온다. “하나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러한 전반부의 3가지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근원적인 관계가 명확히 서있어야 진실되고 솔직한 기도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기도는 앵무새소리나 중언부언의 기도가 되어버리게 된다. 만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감격이 은혜가운데 충만하여져서,,, 전반부 3가지의 기도가 드려진다면 그 후반부 4가지의 기도는 이미 응답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라고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언젠가 사람관계로 인해 오해가 발생되고 이로 인해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평안과 위로가 절실하던 때에 교회에 나와 기도를 드렸다. 그 날은 성령께서 크신 감동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간절히 드리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누군가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단지 내 입술이 고백하는 형식의 기도였다. 오직 그 기도만 충만히 드렸을 뿐인데,,, 내 필요에 의해 빼곡히 적어간 나의 기도제목들은 이미 응답되어진 것처럼 그 문제가 가볍고 매우 쉬워보이게 되었다. 그 후, 문제의 현장에 가보니 그 문제는 이미 사라지거나 해결되었고 내게도 이미 하나님의 힘이 충분히 충전되어서 그 관계를 쉽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기도는 참으로 오묘한 능력을 가진다. 내 입술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때에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이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에 대해서 말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 다른 어떤 일에서 시간을 떼어내야만 한다. 다른 어떤 일도 중요하며 긴급하다. 그러나 기도만큼 중요하고 긴급하지는 않다. 말씀과 더불어 기도를 최우선순위를 놓는 내 생활이 될 때에 진정 성공적인 열매맺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