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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4일 쇠날 (음 7.22)
오늘은 전체 어머니 밥상.
밥상 모임에서 '잔치국수'를 차리기로 했다.
엊그제 밥상 모임 때 국수를 얼마나 사야할 지 자문을 구했다.
아이들은 면(麵)이라면 한정없이 먹는다,
400g 한 봉지로 우리 네 식구는 모자란다,
국수를 어떻게 배불리 먹일 수 있냐... 등등.
결국 장을 보는 나의 선택이다.
한살림에 남아있는 우리밀 국수 12봉 싹쓸이하고,
쌀사랑 국수 5봉까지 총 17봉을 샀다.
(때마침 푸른솔이 장보러 오셔서 이거면 되겠다 도장 꽝!)
오늘 아침 왠지 불안해 집에 있던 한 봉지까지 챙겨갔다.
(포장지엔 4-5인분이라고 써 있다)
18봉 x 4인 = 72인분
18봉 x 5인 = 90인분
초등 39명 + 중등 20명 + 배움지기(두.민.보.신.봉.다.연) 7명 = 66명
저학년들이 적게 먹는만큼 고학년들이 곱절을 먹고,
기사샘들이 오실 지도 모르고, 엄마아빠들도 종종 오시니....
계산이 복잡하다. 아몰랑!
10시 정각 도착.
푸른솔이 일찍 오셔서 육수를 내고 계신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초등 애들은 11시 20분부터 밥 타러 온단 말야."
"아, 그래요? 기다리라고 해야죠."
"그려, 기다리라고 해야겠네. 허허."
댕댕이와 봉봉도 합류.
봉봉은 나 혼자 그놈(!)땜에 징징거리고 있을까봐
망 봐준다고 들르셨다가
푸른솔과 댕댕의 감언이설(?)에 딱 걸려
결국 계당 이장님댁에 맡겨둔
김장김치 세 통 배달해 주고 가셨다.
김장김치 세 포기 정도를
팔이 저리도록 쫑쫑 썰어 국물을 짰다.
내가 손으로 짜고 있으니 두 베테랑이 아서라 한다.
체에 받쳐 누르면 쉽단다. 댕댕이가 마저 짜주었다.
큰 후라이팬 두 개 분량에 꽉 찼다.
들기름 넣고 무치자고 했더니
댕댕이가 매실액도 좀 넣으란다.
단 걸 싫어하는 나는 상상도 못한 비법.
근데 진짜 감칠맛이 확 났다.
오, 괜히 십 수년 주부가 아닌데?
푸른솔이 달걀 지단을 부치시고,
호박을 채썰어 물에 살짝 데쳐 소금간.
(호박을 볶지않고도 가능)
오늘은 천지인 친구들이 인도 이야기 듣느라
11시가 훨씬 넘어 입장했다.
영광, 재민, 남현, 다훈, 금강.
오늘은 '남탕'이라나?
시간이 임박해 정신이 없다.
당번도 아닌데 시원이가 돕겠다며 앞치마를 두른다.
남현이와 시원이가 댕댕이가 끓여주는 국수를
정신없이 찬물에 빨고, 또아리를 튼다.
마늘 까던 재민이가 들어와 시원이와 선수 교체.
11시 30분.
아니나 다를까.
석영이를 앞세워 민들레가 들어와 아직 멀었냐 하신다.
뒤이어 우르르 신난다 가족 꼬맹이들이 들어온다.
댕댕이와 수제자 남현, 재민의 손이 바빠진다.
은하수가 때마침 들어와 양념장을 만들어 줬다.
다훈이와 금강이가 자청하여 동생들 가족방까지
무거운 육수통을 손수 배달해 주었다. 기특한지고.
쟁반에 세 가지 고명을 얹어 민들레.신난다 가족으로 나눴다.
민들레네 쟁반에 달걀 지단이 많길래
한 줌 덜어 신난다네로 옮기니 민들레가 무척 아쉬워하신다.
"우리 좀 더 줘잉~"
바로 옆에서 석영이가 눈을 꿈벅이고 있다.
"아이고, 석영아~ 못 본 걸로 해라.
주는 대로 감사히 먹자고 해 놓고 민들레가 실수했다. 호호호!"
한바탕 푸닥거리 끝에 초등 분을 먼저 보내고,
이제 좀 여유있게 천지인과 어른들 몫을 차리기 시작.
이젠 아이들도 익숙해 졌는지 보채지 않고 기다린다.
그때, 신난다가 바쁜 걸음으로 들어와 국수 더 없냐신다.
만약 모자라면 리필하러 오시라 했다.
민들레도 국수 양이 적은 것 같다고 하셨단다.
하여, 다훈이를 급파하여 초등 1차 리필을 하고 왔다.
슬기샘, 푸른샘, 무심, 함박꽃, 무지개, 바람빛, 고슴도치, 망태가 오신다.
이틀 연속 결석하신 두더지도 오시고....
남은 국수 양이 가늠이 안 된다.
얼른 밥솥을 열어보니 한 솥 가득 밥이 있다. 휴우~
이순신 장군에게 남은 '열 두 척의 배' 같았다.
꼼수를 부려 또아리를 작게 틀기로 했다.
재민이랑 남현이도 무슨 뜻인지 아는 것 같았다.
(근데 결과적으로 그게 더 패착. 작으니 두 개씩 달라고 했다)
두더지가 함박꽃 그릇을 힐끗 보시더니 바꾸자고 하신다.
함박꽃이 '저도 큰 거 먹고싶은데요?'하며 귀엽게 아웅다웅.
얼추 오실 분들 오시고 배식이 끝났다.
국수는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배불리 먹이긴 글렀다.
은하수, 푸른솔, 댕댕이와 나는
작은 그릇에 나눠 덜어 맛은 볼 수 있었다.
공양주는 이럴 때 맘이 타들어간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장보기를 하고싶다.
'누구나 밥모심'이 우리 철학인데,
오신 분들께 넉넉히 내어드리지 못하는 심정이란...
내 실수다. ㅠㅠ
총 78명이 점심을 약간 고프게 모셨다.
자, 그럼 400g 한 봉지는 4인분도 안 된다는 결론.
다음 번 잔치국수하시는 분 참고하세요~!
"(푸른솔) 오늘 잔치국수 누가 하자고 했어!"
"(댕댕이가 나를 가리키며) 얘요~"
"왜요? 힘드셨어요?"
"하이고, 나는 엄두도 못내겄네. 하여튼 제니스는 용감해."
"무식하면 용감하잖아요. 히히~"
다들 애 많이 쓰셨습니다요.
낮에 '남탕들'과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에
저녁 준비는 찬찬히 함께 해 보기로 했다.
5시에 모이라니 정각에 다 모였다.
들살이로 고단했을텐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우선 앞치마를 두르고 기념 촬영.
(푸른솔이 깨끗이 세탁한 앞치마를 갖고 오셨다)
아줌마 스타일인데 입으라니 다들 순순히 입는다.
속으로 너무 웃긴데 꾹 참았지.
일단 다 붙어서 마늘과 양파를 깠다.
까도까도 까야하는 요놈들...
# 밥
밥 못하는 사람 손 들라니 아무도 안 든다.
순례 때 해 봤다며 자신만만.
가장 자신있는 표정의 다훈이 낙점.
밥물을 잡는다.
'물을 얼마나 넣을래?'하니 손등 어디쯤 가리킨다.
"그건 안 불린 쌀이고, 이건 불렸잖어."
"앗! 그럼 모르겠는데요?"
"불린 쌀 위로 약 1cm정도 올라오면 돼."
"(쌀뜨물이 하얘서 안 보였다) 안 보여요."
하더니 대뜸 물을 부어버린다. 아이고야...
다시 쌀을 씻어 물을 투명(!)하게 한 후,
손가락을 넣어 밥물을 맞춘다.
내 생각엔 좀 많아보였다.
"안 많을까?"
"안 많아요."
"어떻게 알아?"
"느낌이 와요."
"ㅎㅎ 그럼 해!"
당연히 훌륭하게 되었다.
이젠 결과가 미리 궁금하지도 않다.
# 순두부 들깨탕
영광이와 금강이가 자청했다.
순두부 포장 벗기면서도 낄낄거리며 재밌어 한다.
(물총처럼 구멍만 내놓고 찍찍 짜면서)
육수용 멸치 넣으라니 영광이가 한참 못 찾는다.
비단 영광이 뿐이 아니다.
이 나이 때는 물건을 잘 못찾는 경향이 있단 걸 알았다.
바로 코 앞에 있어도 '어디요? 안 보여요.' 한다.
단번에 찾아 '여깄잖어' 하면 엄청 경이로워 한다.
이젠 답답하지도 않다.
금강이에게 순두부 사 온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반만 뜯으랬더니 한 눈 파는 사이 한 개 남기고 다 뜯어놨다.
그러면서 내가 다 뜯으랬다고 우긴다.
다행히 옆에서 다훈이가 증언을 해 줬다.
할 수 없지. 남는 건 낮에 남은 양념장 쳐서 내놓자.
다훈이가 바들바들 손 떨며 통깨까지 뿌려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더만!)
낮에 '순두부 들깨탕에 뭐 넣을까요?' 했더니
배추 모종 들고오셨던 작은별이 '묵은 김치지~'하신다.
반포기 쫑쫑 영광이가 썰었다.
영광이가 상당히 꼼꼼하단 걸 알았다.
수세미도 일렬로 정리하고,
빵끈으로 고리를 만들어 브러시를 걸어놨다.
영광이가 들깨가루 풀어넣고,
금강이랑 둘이 서서 계속 간을 본다.
나한테도 간을 보란다.
"어, 점점 맛있어지고 있어."
"제니스가 저 말 하면 아직은 맛없단 얘기야."
(어떻게 알았지? ㅋㅋ)
새우젓 힌트를 살짝 줬더니
둘이 알아서 새우젓 다지고,
조선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간다.
남현이가 열심히 썰어 놓은 양파랑
팽이버섯도 넣고. 마늘도 넉넉히.
(남현인 말없이 다 한다)
진짜로 맛있어지고 있었다.
둘의 표정도 '이만하면 됐어'다. 그럼 됐지.
# 가지 무침
텃밭에 먹을만큼 계속 열리고 있다.
넉넉히 따 왔다. 있을 때 열심히 먹자는 마음으로.
찬찬한 남현이와 재민이가 맡았다.
밥짓기를 완수한 다훈이도 합류.
"우리 몇 개나 무칠까?"
"가지 싫어하는 애들이 많아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큰 걸로 딱 네 개만 집어든다. 너무 적다.
하지만, 양만큼은 아이들을 믿자 했지.
그래. 그래라.
살짝 찌자고 했다.
남현이가 곁에서 살짝 쪄 질때까지 보초를 섰다.
정말 성실하게 지키고 서서 중간 보고까지 한다.
적당하게 쪄졌다.
"이제 양념 만들어 봐. 남현이가 할 수 있지?"
"네! 뭐 넣어요?"
"간장, 고춧가루, 마늘, 고추, 들기름. 뭐라고?"
"간장, 고춧가루, 음... (보조개 웃음) 마늘, 고추, 들기름요."
"옳지!"
그랬다가 낮에 양념장 남은 게 생각 나 리뉴얼 하기로.
가지를 손으로 찢어야 맛있다 했더니
얌전한 며느리들 같이 둘이 조용히 잘도 찢는다.
이제 한 번 맛나게 무쳐보랬다.
짜면 안 되니 조금씩 양념장 넣으랬더니
둘이 번갈아 '티스픈' 만큼씩 추가하고 맛보고를 반복.
(우씨, 안 그래도 양이 적을 것 같은디...)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여 드디어 완성.
둘 다 만족한 눈치다.
그때 세이레 모임차 오신 반닷불이가 불쑥 들어 와
가지무침을 하나 맛 본다.
"야아, 싱거워!"
"쉿! 어디서 귄없이... 맛만 있고만."
피식 웃는다.
"글을 보니 애들이 하도 맛있게 하는 것 같아서
먹어보려고 왔는데 시간이 없네."
그래도 맛은 보고 가라니 순두부 들깨탕 한 숟가락 후루룩.
"어, 맛있다!"
그때, 신난다가 바삐 들어와 밥모심을 하려 한다.
둘이 같은 모임 참석인데...
"시간 없어!"
"그래도 먹고 가요. 오 분이면 돼요."
"내 참..."
결국 둘이 마주앉아 후루룩 모시고 황황히 나간다.
(30분 전 민들레는 남은 미역국에 말아 드시고 가셨건만...)
암튼 반딧불이의 총평이 궁금하고만.
은근 까탈시러워 가지고...ㅋ
참, 영광이가 어제 남은 콩불 양념
자기가 비벼먹으려고 남겼다길래
급히 데워서 올려놨는데
신난다가 먹어보고는 맛이 살짝 갔단다.
이미 다훈이와 은혁이도 자기 그릇에 떴는데...
다훈이가 뿔났다. 왜 이런 걸 올려놨냐고.
쫓아다니며 미안하다고 빌었다. ㅠㅠ
나름 개코인 내가 왜 못 맡았지?
암튼 큰 일 날 뻔 했다.
신난다는 비벼서 먹었다는데... 미안미안요.
(오늘 실수가 잦다. ㅠㅠ)
내친 김에 하나 더 고백하자면,
순두부에서 물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지 몰랐다.
그래서 평소대로 육수를 내서 거기다 순두부를 넣으니
냄비가 폭발할 지경(이라고 금강이가 표현)이었다.
급히 육수를 덜어내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에혀...
역시 가지는 무쳐놓고 보니 적었다. 남현이도 동의.
(그러게 간을 쫌만 보지 그랬어. ㅎㅎ)
함박꽃 우엉조림과 작은별 매실 장아찌를 추가로 냈다.
배식은 밥 친구들이 했다.
"너는 가지가지 하니까 가지나물 먹어."
지들끼리 썰렁 농담으로 키득대며 반찬을 덜어준다.
순두부 들깨탕을 덜어주는 금강이 어깨에 뽕이 들어갔다.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한가 보다. 연신 웃는다.
자기가 해서 더 맛있단다.
재민인 친구들의 반찬이 부족할까봐
이리저리 종종 걸음으로 뛰어다닌다.
세심한 마음결이 느껴진다.
.
.
기도 전 아이들 앞에 섰다.
아이들과 공식적으로 하는 밥수업 최후의 만찬.
순간 울컥한다.
고맙다고, 정말 많이 배웠다고 했다.
서로 박수 쳐 주고 기도를 시작했다.
진심 훌륭한 만찬이다.
나흘 동안 스무 명 천지인과 오롯이 함께였다.
미지의 세계였던 사춘기 친구들 '뫔'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간 기분이다.
한 명 한 명 더없이 소중히 여겨진다.
어미아비 맘이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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