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 예찬(시122:1-9)
본 편을 기록한 저자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살았다. 그는 그 이웃과 더불어 그들의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순례단의 일원이 되어 그들과 동행하자는 말을 들을 때 크게 즐겁던 일을 회상하였다(1).
그는 예루살렘 성문에 도달하여 그 거룩한 성을 바라볼 때의 인상과 고도(古都)의 종교상, 정치상 영광을 회고하던 때의 감상을 그렸다. 그는 폭발하는 감정으로 사람에게 기도를 권하고 그 자신도 예루살렘의 장래 번영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1. 기쁨으로 예루살렘을 향함(1-2)
이 시인은 거룩한 성에 올라가자는 친구의 초청에 기쁨을 느낀다. 이 말씀은 현대 교인들이 예배당에 가자는 말을 좀 더 달갑게 여겨야 하겠다.
그가 기뻐한 이유는 전에 훼파되었던 거룩한 성이 이제 중수(重修)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새로운 출생(出生)보다 사람의 부활(復活)이 더욱 기쁘다.
중수된 예루살렘 성은 본래의 모습보다 훨씬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그 발걸음이 성문 안에 들어가면서 예루살렘 성을 예찬(禮讚)하였다.
2. 예루살렘 성의 장관을 예찬(禮讚)함(3-5)
이전 파괴되었던 성을 회상해 보고 현재의 중수된 성곽과 도심지를 살펴볼 때 본래의 그것보다 훨씬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중수된 성의 모습은 조밀(稠密)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다. 즉, 파괴되었던 성곽이 중수되고 공지에는 가옥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서로 조밀하게 지탱하고 섰으니 매우 견고하였다.
그리하여 겨우 완성된 도시 상태를 하고 있어 느헤미야가 처음 모든 예루살렘보다는 그 면목이 일신되었다(느2:17, 7:4)고 했다. 그래서 회복된 성의 모습은 곧 국가의 통일과 연합과의 표상(表象)이라는 관념을 가졌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시인은 포로전기(捕擄前期)를 회상한다. 그 당시 예루살렘은 국민의 종교상 중심지요, 또한 정치적 중심이었다.
예루살렘에 최고 법정(法廷)이 있는 사실을 언급하였다(신 17:8). 물론 예루살렘에는 다윗 왕가의 보좌(寶座)가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왕, 혹은 재판관이 거기 않아서 심판을 행하였다.
3. 예루살렘을 축복함(6-9)
이스라엘의 과거 영광의 회상은 시인으로 그 장래 안녕을 위하여 스스로 기도하며 또한 타인에게 이를 권장하게 만들었다. 소망의 새 시대가 이스라엘 앞에 전개되었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축복하는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한다.
곧 이 시인은 그 생활에서 형통하는 복을 얻는다. 이와 같이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도 이 같은 축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네 성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7)
예루살렘의 특징은 평안이다. 오늘의 교회도 언제나 소유해야 할 것이 곧 영적 평안이다. 그 이유는 고것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와 및 사람과 사람과의 평화를 세우는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정치적 중심지 인고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러나 예루살렘이 우리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 어디까지나 종교적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선민을 사랑하고 그 거룩한 성을 사랑하여 기도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과 하나님과 그 백성을 위하여 그곳에 평안과 복지(福祉)가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다.
●결심 기도 /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https://youtu.be/6v8dyoQg-0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