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시받는 자의 기도(시123:1-4)
이 시는 애수시(哀愁詩)라고 할 수 있는데 대 적자들의 조소(嘲笑)적인 목면과 멸시적인 위협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신앙의 동요를 받지 않는 선민들의 신께 대한 신앙과 소망에 관한 엄정한 고백이다. 본 편 기자는 1절에서는 백성의 지도자 또는 대표자로 되어 있어 "내 가"라고 단수(單數)로 말하고 제2절에는 기자가 수난하는 집단(集團)을 신앙과 기도로 자기에게 연결시키는 동시에 "우리"라는 복수(複數)를 사용하였다.
이 시편은 바벨론 포로생활 말기(末期)에 이르러 탄식한 것으로 보이거나 혹은 벌써 고국에 돌아와서 그들의 방해군들(사마리아인들) 때문에 가진 탄원이었을 것이다라고 본다(느2:19).
1. 하나님의 인자를 구함(1-2)
121편에는 산을 향하여 눈을 들고 친지의 창조주를 발견하였는데 여기에는 처음부터 직접으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눈을 들고 간구하였다.
땅 위에는 어디서나 고난과 역경을 당하므로 오직 천래(天來)의 은조(恩助)를 고대하였다고 보겠다.
"하늘에 계신 주여"라고 부름은 하나님을 하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름이며, 대우주의 만상으로, 그리고 통치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노예가 그 주인을 의뢰함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여종이 그 주모(主母)의 손을 바람같이 여호와를 바란다고 하였는데 특히 여기에 "손"(手)은 온 집을 다스리는 권력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은 모든 선한 권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손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예의 생사 문제가 전혀 그 상전의 수중에 있음같이 저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앙망하는데 그 원조가 지체되거나 허락되지 않은 경우에라도 그는 불평하지 못한다. 다만 그 미천한 자리에서, 그 멸시받는 입장에서 오래 참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바라서 간구함이니 이것이 하나님을 무조건 믿는 믿음이다.
2. 멸시자에게서 구원을 구함(3-4)
시인은 교만한 이웃 족속들의 가하는 조소(嘲笑)와 멸시(蔑視)에 대하여 하나님께 호소함이다.
특히 2절 끝에서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하였고 본문 중에서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거듭 호소하였으니 얼마나 다급한 심정인가를 살펴볼 수 있다.
심한 멸시가 넘치고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넘친다는 말은 물이 그릇에 담기어 더 담을 수 없이 그릇 밖으로 쏟아져 나옴과 같고, 식물을 만족하게 먹어 더 먹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특히 "평안한 자"라고 함은 하나님의 경고에 대하여 아무런 깨달음도 업이 태연 무사하게 지내는 자들을 가리킴이니 이런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모든 경성(警醒)하는 행위를 냉소(冷笑)하는 모습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죄를 슬퍼하지도 않는 거짓 평안자들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으니(시34:15-16, 벧전3:12) 성도들이 하나님께 눈을 들어 주목(注目)하면 비로소 시선(視線)이 서로 합하고 생각은 통하며 마음은 일치하게 된다. 그를 바라며 호소하는 기도는 다 응답 될 것이다.
●결심 기도 / 어려운 상황에서 응답하실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게 하소서!
https://youtu.be/mOySH6X0Z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