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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그리고 다윗과 우리아의 싸움을 그린 그림
아버지: 은성아, 무슨 그림을 그렇게 보고 있니?
은성: 아,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라는 그림인데요. 성경을 읽다가 다윗이 물매로 골리앗을 죽인 부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좀 찾아보았더니 이 그림이 있더라고요.
아버지: 그랬구나. 그런데 그 그림을 그렇게 오래 보고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니?
은성: 제일 처음에는 이 그림이 성경 내용과 얼마나 같은지 궁금했어요.
아버지: 그랬는데?
은성: 다음에는 제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 바빴어요.
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리 바쁘게 했니?
은성: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데 다윗이 너무 크게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컸던 이스라엘 최고의 용사 사울도 키가 약 2m(삼상 10:23)라고 했는데, 골리앗은 키가 2m 93cm, 몸을 두른 갑옷의 무게는 57kg, 놋 단창의 창날만 7kg이 되었다(삼상 17:4-7)고 했으니 그림에서 저렇게 작게 그려진 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 생각했어요.
아버지: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당시 다윗의 셋째 형까지 20세가 넘어서 군대에 갔고, 다윗은 여덟째 아들이었으니 넷째부터 계산을 해 보면 다윗은 10대 중반이나 되었을 소년이었으니까 골리앗보다는 훨씬 작게 그리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은성: 그리고 저는 이 그림보다는 제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 네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무엇인데?
은성: 저는 다윗을 전신갑주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보았어요.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왼손에 믿음의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 성령의 칼을 든 모습이어요. 그리고 그 그림 밑에 이런 성경 말씀을 써 넣고 싶었어요.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4-36)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아버지: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그런데 그림에 글씨가 너무 많으면 어떤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으니 그 점을 잘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은성: 요즘에는 글씨를 숨기게 하는 기능이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서 읽고 싶은 사람만 읽도록 하려고 해요.
아버지: 잘 알았다. 네가 머릿속으로 그린 다른 그림이 있니?
은성: 예. 그 그림 옆에 “우리아를 죽인 다윗”이란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아버지: 그것이 무슨 말이니?
은성: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골리앗을 죽일 때의 다윗과 우리아를 죽일 때의 다윗을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아버지: 그래? 참 흥미로운 생각을 했구나. 네 생각을 더 이야기해 보렴.
은성: 두 그림을 비교하는 것인데요. 처음 그림에는 다윗이 아주 크게 그려지고 골리앗은 작게 그려지는데 두 번째 그림에서는 다윗이 아주 작게 그려지고 우리아가 매우 크게 그려지는 것이어요.
아버지: 왜 그렇게 생각을 했니?
은성: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가던 다윗은 골리앗이 크게 여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4-37)고 말했잖아요.
아버지: 그렇지. 골리앗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다윗의 눈에 골리앗은 지극히 작은 존재였던 것이 분명하다.
은성: 그런데 우리아를 죽일 때를 생각해 보면 다윗은 지극히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이고, 우리아를 죽이려고 하다가 그의 충성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쉽게 죽이지 못하니 큰 상대로 대하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이때의 다윗에게는 우리아만큼 큰 자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 네 말을 들으니 참 좋은 것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에는 아무 힘이 없는 목동에 불과한 소년이었지만 당당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내세우며 큰 싸움을 이겼지만, 우리아를 죽일 때에는 왕위에 오른 권력자이었지만 비겁한 음모를 꾸며서 충신인 우리아를 전사하게 만들었지. 그것도 할례받지 못한 암몬 자손의 칼에 죽게 했으니(삼하 12:9) 자기가 골리앗에게 했던 말(삼상 17:26, 36)이 우습게 되었구나. 우리아의 충성을 보면서 다윗은 얼마나 마음이 쪼그라들었으며, 우리야의 믿음과 경건을 보면서는 또 얼마나 그의 마음이 부끄러움으로 가득했겠니? 한 사람 다윗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겸손하게 주님의 자비를 의지해야겠구나.
은성: 맞아요. 그 말씀을 들으니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라는 그림에 있는 다윗의 칼에는 라틴어 H-AS OS라는 약자가 있는데, ‘Humilitas Occidit Superbiam’ 즉 번역하면 ‘겸손은 교만을 이긴다’는 글이 있다고 하네요. 다윗이 겸손할 때에는 천하의 거인 골리앗을 이겼지만, 교만할 때에는 충신 우리야를 죽이는 죄를 범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또 낮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 골리앗을 죽이려고 나아갈 때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고, 또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믿음과 충성을 보여주었지만, 우리아를 죽이려 할 때에는 자기가 밧세바를 범한 간음죄를 감추려는 지극히 흉악한 동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구나.
은성: 그렇네요. 아버지의 말씀을 그림에 반영해 그려 넣어야 하겠네요.
아버지: 그 그림에서 또 생각한 것은 무엇이니?
은성: 저는 골리앗을 죽인 결과와 우리아를 죽인 결과를 생각해 보았어요.
아버지: 그래?
은성: 골리앗을 죽임으로써 이스라엘은 도망하는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엎드려뜨렸고,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지요.
아버지: 그렇지. 그러나 우리아를 죽인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지.
은성: 맞아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삼하 12:10-12)
아버지: 그때 다윗은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지. 그리고 그가 늙은 시기를 아들이 죽는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아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당하면서 쫓기기도 하는 등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젊은 시절에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항상 누리던 하나님과의 교제와 평화를 잃어버렸다고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은성: 맞는 말씀이네요.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 행 13:22)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 역시 죄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 그런데 다윗의 훌륭한 점은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 회개를 했다는 것이야. 그때 다윗은 왕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명을 할 수 있었고, 권력의 칼을 휘둘러서 나단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어.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침상이 젖도록 눈물을 흘리며 중심으로 회개하였고, 이런 다윗의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물론 죄의 결과에 따른 채찍은 피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용서와 사랑과 교제의 축복을 계속 누리게 되었던 것이요, 결국 그의 후손에서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다.
은성: 그렇군요. 저는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저는 골리앗과의 싸움과 비교하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어서 우리아를 죽인 잘못만 생각하였거든요. 역시 아버지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보시고 종합적으로 생각하시는 지혜를 가지셨어요.
아버지: 네가 나를 너무 높이 비행기 태우면 안 된다. 그냥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은성: 성경에 있어도 제대로 못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언젠가 성경은 광산과 같아서 때마다 깨닫는 부분이 다른 놀라운 책이라는 인터넷 댓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광산에 숨은 진리의 보석들을 특별히 잘 캐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네가 나를 또 비행기 태우는구나.
은성: 아니에요. 어쨌든 오늘 아버지께 많이 배워서 감사해요. 아버지 말씀을 반영하여 그림을 더 고쳐보아야 하겠어요.
아버지: 사실은 내가 너에게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운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날에도 젊은 시절에는 참으로 겸손하고 경건하고 충성된 일꾼이었던 목회자가 나이가 들어서는 교만하고 자기 욕심만 챙기며 하나님의 영광은 잊어버리는 일들이 많고, 그 결과로 비참한 삶을 사는 경우를 가끔 볼 때에 불쌍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며 일하던 분들이 나이가 들수록 자기 욕심만 챙기고 이 세상 영광에 눈이 멀어서 허영을 좇다가 비참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면서 제발 전도자에게 삶의 진리를 잘 배우기를 소망해 본다. 나도 그런 점을 마음에 새기며 두려운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새로운 그림이 다 완성되면 나에게 보여주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할까?
은성: 예, 그렇게 할께요.
https://images.app.goo.gl/sqL3cb4cAkX5UPK77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https://images.app.goo.gl/aZApK8n6cFxPSTWk7 "물매로 골리앗을 죽인 다윗"
* 흥미로운 사실
다윗은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준비하여 골리앗에게 던졌고 이마에 그 돌이 박혀서 죽게 되었다. 프로야구 투수가 공을 던지면 시속 약 150㎞정도 나오는데 물매는 1m정도 되는 줄로 끝에 돌을 달아 돌리면서 달려가며 던지면 최대 시속 260㎞까지 나온다. 이렇게 곰과 사자를 죽였던 다윗은 그보다 빠르지 않고 방심한 골리앗을 돌 하나로 명중시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2. 1993년 5월에 고고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마에 돌이 박혀 있는 거인의 해골을 발견했다. 이마의 길이를 측정하여 거인의 키를 계산해 본 결과 그 키가 2미터 90센티나 되는 거대한 체격의 거인이었음이 밝혀졌고, 연대를 알아본 결과 다윗 시대에 죽은 것으로 측정되었다. 이런 결과로 고고학자들은 이 해골의 주인은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의 해골임이 확실하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발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서 발견된 거인의 해골에는 물맷돌이 아직도 정통으로 이마 한복판에 정확히 박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해골에 관한 발견의 소식이 실린 글에는 ‘다윗의 물매에서 날아간 돌이 아직도 거인의 이마에 박혀 있다.’라고 영어로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