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포구, 노을의 강론을 듣다 /문 경 희
한때의 영화를 되새김질 하듯 포구는 조용히 몸을 뒤척이고 있다. 이웃한 고층의 아파트단지와 빌딩 사이에서 낮은 포복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 자그마한 포구. 어느덧 포구라는 이름마저 무색해지고 있는 하단포구를 찾은 건 퇴근 무렵이었다.
출출한 시간, 허기를 달래며 사무실을 나섰다. 도심 속의 포구가 생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포구는 포구가 아닌가. 갓 채취한 해산물이라거나 허름한 선술집처럼, 따뜻하고 정감어린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물녘의 바다라는 쓸쓸함을 깔고 앉아 하루의 마지막을 소진해보는 것도 일탈의 한 방편일 더. 구릿빛 바다사나이들의 걸걸한 농지저리가 귀를 켜는 술집에서 소주 한 잔으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상상은 상상으로 앞질러 나가고, 싸하게 속을 훑는 공복감을 자극하듯 혀 밑으로 느껍게 침이 고인다.
“재첩국 사이소.”
유년의 아침을 깨우던 정정한 목청의 출발지가 이곳 포구 일대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서울에서 방송관련 일을 하는 딸아이가 사라져 간 옛 것들에 관한 취재를 하러 내려왔는데, 그 중 하나가 하단의 재첩국이었다. 아무리 원조라는 수식어가 범람하는 세태지만 바닷물이 출렁이는 곳에서 재첩국의 원조를 만나겠다니. 처음에는 갸우뚱 했지만, 그것이 내 무지와 무관심의 소치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단(下端)은 낙동강의 끝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태백산의 어느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길이 장장 1300리를 흘러 강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곳인 동시에 바다의 시작점이다. 국내에서 가장 긴 강이며, 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낙동강. 국토의 속살을 조근 조근 밟아 내리며 뭇생명들의 모천(母川)이 되었을 강이 비로소 안식에 드는 곳이라라까.
밀물과 썰물이 만나던 하단은 한때 재첩 천지였단다. 모래톱에 손을 찔러 넣으면 한 주먹씩 딸려올 정도였다니 가난한 살림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을 게다. 너나없이 먹고 사는 일이 녹록치 않던 시절, 바다가 대가없이 내어주는 것들이야말로 얼마나 큰 은총이었으랴. 구수한 밥내가 되고, 등 붙일 방 한 칸이 되고, 자식들의 책가방이 되었던 것이 자잘한 가무락조개, 재첩이었을 것이다.
해감을 시키고, 삶고, 껍질을 제고하고, 다시 끓이고…. 도시의 혈관에 수액을 공급하듯, 희붐한 새벽이면 아낙들의 애절하고도 우렁찬 외침이 골목을 누볐다. 시내는 물론 시외 인근까지, 발도장을 찍지 않은 곳이 없었을 만치 삶이라는 전장에서 억척을 떨었던 이들이다. 막 끓여낸 재첩국보다 더 뜨겁게 살아냈던 사람들이랄까. 하얀 머릿수건에 치렁한 앞치마, 더러는 등짝에 매달린 젖먹이까지, 행색은 비록 남루했지만 그들이야말로 세상의 하루를 여는 첫 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산 빛, 강 빛으로 진하게 우려낸 국 한 그릇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아침을 일으켜 세웠을까. 어는 가장의 시린 속을 달래고, 입맛도, 밥맛도, 살맛까지도 희미해져가는 어르신들의 기력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렇듯 세상은 한 고단함이 또 다른 고단함을 추스르며 흘러왔는지도 모르겠다.
연안 물류의 중심지였다는 하단포구. 부산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가 이곳에 집하되었다가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여 다시 내륙지방으로 운송되었단다. 특히, 강 건너 명지 소금과 전국 각지의 골물이 하단포에서 거래되었다니, 포구의 규모와 명성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그런들 편리와 속도라는 대세를 어찌 거스르랴.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교량이 생겨나고 시원하게 뚫린 강변도로가 뱃길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나루터가 매립되어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포구도 쇠락의 길로 들어섰단다. 그들만의 황금어장도 그 즈음에 이르러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포구 초입이다. 푸른 바다에 작은 조각배 하나가 출렁이는 그림의 입간판이 파수병처럼 버티고 서 있다. 원래의 포구가 매립되고 옮겨온 곳이라지만, 황포돛대가 개선장군처럼 포구를 왕래하던 오래전 그때를 복원해 놓은 듯하다. 자그마한 입간판 너머로 오렌지 빛 낙조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변해버렸어도 저 낙조만은 예와 다르지 않으리라.
포구는 적막하리만치 고요하다. 하루를 여닫는 그들만의 규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자그마한 어선들은 일찌감치 정박의 닻을 내렸고, 배를 부리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다. 어지럽게 놓여있는 부표와 그물, 그리고 자잘한 어구들만이 아직도 명실공한 포구임을 선언하고 있다.
파란 많은 물살을 헤치며 생업에 바빴던 어선들은 내일의 출항을 위해 다시 숨을 모으는 중일 게다. 물질을 끝낸 어부들도 삼삼오고 모여 앉아 텁텁한 막걸리 몇 잔으로 고단함을 털어내고 있지 않을까. 지금쯤은 그들의 얼굴에도 홍시 빛 노을이 내려앉고 있는지 모른다.
두툼하게 산자락을 두른 구름과 태양의 마지막 숨결이 질펀하게 몸을 섞는다. 쇳물이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았다가 혼돈의 카오스 같았다가, 그들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한다. 살아 움직이는 추상화랄까. 지상의 어느 화공이 태양의 붉은 행보를 저토록 농밀한 터치로 그려낼 수 있을까.
끝나는 순간까지는 끝이 아니라며, 태양은 남은 오늘을 치열하게 채워간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뒷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태양의 전언이 허공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직도 남아 포구를 지켜내는 이들을 향한 주문처럼, 혼신으로 제 몸을 달군다. 저토록 뜨거운 노을의 강론에 누군들 눈 감고 귀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도심의 뒤안길에서나마, 포구도 포구의 사람들도 분명 오늘을 저리 장엄하게 살아냈을 것이다.
민생고도, 한 잔 술도 뒷전으로 물린 채, 숨 막히게 펼쳐지는 장관에 오감을 맡기고 섰다. 밤새 불 앞을 서성였을 아낙들처럼, 산 너머 어디쯤에서는 태양의 두 손도 밤을 밝히며 새로운 하루를 빚어낼 것이다. 노을이 밀어 올려줄 내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