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민 方旻
(hongsan1305@naver.com
1. 일반 택지에 짓는 주택이 아니라, 번화가에 오피스텔 올리듯 수필 쓰는 사람, 최민자다. 단층집은 벽돌이나 목재로 지어도 충분하다. 즉 스토리를 기반으로 사유 조각과 정서 양념을 버무리면 된다. 하지만 여러 층 입체형 수필은 단순 사색과 파생(派生) 감성만으로 지을 순 없다. 반드시 철근 콘크리트(체계적 사념)로 쌓아야 하는 오피스텔은 다양한 직업군 사람이 거반 사무용으로 쓴다. 건물 이름과 형상은 공유하지만 그들끼리 연계성은 미약하다. 오피스텔 짓듯 쓴 글이 그녀의 최근작 《사이에 대하여》(연암서가, 2021)다. 이런 방식 글을 대다수 수필가의 평면형과 대비해 입체형이라 부를 만하다.
2. 빌딩 같은 입체형 글을 쓰자면 강도 높은 사유 자재와 논리 부품, 정서 공구가 필요하다. 빌딩 건축 기본 골조엔 철근이 필요하듯 작가가 동원하는 건 과학 정보와 연계 지식으로 무장한 사색이다. 사념 철근을 중심에 박고 단단한 상상 콘크리트를 붓고, 유연한 해석과 의미화 문장으로 벽체를 세운다. 벽돌집엔 없어도 되거나 약간만 필요한 것도 빌딩엔 절대 부품이 된다. 흙을 이기고 짚을 잘라 넣어 결속재로 이용해 짓던 과거 체험 스토리 중심 토담집이 아니다. 철골을 박거나 콘크리트 골조로 지으려면 훨씬 단단하고 굳센 철강을 써야 한다. 그녀 수필에선 철강은 기발한 사유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도약하는 상상력이다. 곧 사유 부품을 퍼즐 조각 맞추듯, 탑을 쌓아올리듯 쓴다.
3. 빌딩 건축에선 주요 자재를 직접 만들기는 어렵고 분야별 공장에 주문해 사용해야 한다. 수필 건축에 필요한 자재 역시 그렇게 조달한다. 소소한 집은 자체 체험 스토리(돌 쌓고, 벽돌 만들고,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혼자 짓는 집)로도 되지만, 건축 자재 상점(서점과 도서관)에서 부품 공급 받아 지어야 하는 집은 다르다. 필요 자재를 찾고 골라 합당한 걸 주문하고 치수에 맞춰 조립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장기간 수련한 기술과 풍부한 현장 경력, 곧 전문성을 요구한다. 최 작가는 이미 수필집 7권을 낸 전문가다. 산골 양지쪽 비탈에 얼기설기 제멋대로 집 짓고 사는 자연인 건축가가 아니다.
4. 그럼 그녀 입체형 수필은 어떠한가. 《사이에 대하여》에서 눈길 잡아채는 특징은 문단 사이를 표 나게 구분한 거다. 문단은 보통 들여쓰기로 구분하는데 이 책에선 한 줄 띄워 벌린다. 예컨대 <몸통>, <사이에 대하여>, <옛집>, <뿌리>, <그늘>, <비상> 등에서 본다. 이건 바로 앞 문단과 뒤 문단 연결성이 미약하다는 것을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사유 주제를 수직 논리로 적립하는 서-본-결 방식으로부터 연유하는 입체형 구성이다. 조립하는 사유가 도약하기도 하는데 이는 체험 스토리를 기-승-전-결로 전개하는 평면형 구성에 대응한다. 예로 든 글은 모두 이를 입증하듯 세 문단 구성이다. 방이 여러 개인 가정집 짓듯 하는 수평 확장형이 아니라 동일한 공간 구조를 조립하듯 올리는 적층형 서술이다. 달리 말해 맥락성 주제, 즉 이야기 전개식 엑스(X)축 서사 구성과 달리 통합성 주제, 곧 사유 확산식 와이(Y)축 교설(敎說) 구성이다. 이건 문단 간 연결이 체험 시간 맥락을 좇는 대신, 사유 공간 논리 따라 점프한다는 말.
5. <옛집>은 스토리 연관성 약한(없는) 세 문단으로 구성한다. 제1문단은 옛집의 품격 이미지와 기능을, 제2문단은 오늘날 집의 물질 가치와 의미를, 제3문단은 이 시대 사람과 집의 불화를 제시한다. 끝엔 작가 화자를 옛집과 동일시한 자아인식을 틈입해 마무리한다. 세 문단 모두 집이란 공통분모가 있지만 혈연(스토리)이 아닌 사회적(개념) 인연이다. 한편 사유 논리 맥락을 따르다 끝에서 급작스런 정서반응으로 맺다보니 구조가 불안해 보인다. 연결 고리가 견고하지 못하면 논리가 비약할 수 있기 때문인데. 평면형 1층 집보다 입체형 3층 건물이 안정성 면에서 약점이 있는 것과 같다.
6. 또 다른 특징은 이 오피스텔형 수필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고 출근해 일만 하는 사무용이 많다는 거다. 글에서 작가와 주변인 삶이 잘 드러나지 않고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이 중 사람 냄새를 그나마 맡을 수 있는 건 <왜 사냐고 묻거든>, <그럴 나이>, <욕망의 순서>, <겉바속촉> 등이다. 이것도 살고 있군, 정도이지 그들만의 땀내 나는 구체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중 <겉바속촉>을 보면, 동네 빵집에서 취향에 맞는 빵을 고르고 섭취하는 즐거운 사연 서술 뒤엔 문단을 벌린 다음, 사람 일반론으로 전환해 비약한다. 끝 문단에선 또 <옛집>처럼 정서 반응으로 귀결한다. 그녀 글엔 어떠한 사연도 일반론적 사유로 곧잘 전환시킨다.
7. 문장 특징엔 숙고한 사유를 전개하며 결론을 제시하므로 단정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것은 필연이다. 교설형 수필에서 보는 특징 중 하나로 상황 추정 종결어미인 “-것이다, -인가(까)”가 아니라 의견 단정형인 “-(이)다, (해야)한다”가 주종이다. 이 중 <반짝임>은 특별하게 총 세 문장만으로 쓴 한 문단 글인데, “언어다, 충동질한다, 지운다”가 종결 서술어다. 결국 그녀 글에선 작가 삶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대신 특유 사유가 다채롭다. 즉 교설형(논술식) 작품이 주류로, 조동일이 수필을 교술 장르로 본 바에 따르면 갈래 본질에 부합한다.
8. 평면형 수필가는 글로써 따분한 삶의 한 모퉁이에서 찾는 들꽃 향 위로와 성찰에 십분 만족한다. 최민자는 이와 다르게 체험 지평을 들춰내 인생 비의와 존재 본질을 입체형 방식으로 채굴하려 한다. 그녀에게 수필 쓰기는 독특한 놀이(“활자를 갖고 노는 분복”-‘책머리에’서)이기 때문에, 독자의 공감 여부는 논외 사항(“소통의 방편도 되어 줄 수 없음이 자명해졌으나 괘념치 않으려”-‘책머리에’서)이다. 하지만 글 쓰는 태도는 치열하게 업무에 매달리고 성실하게 성과를 내지 못하면 퇴사해야 하는 샐러리맨을 닮았다. 《사이에 대하여》는 필요 자재(지식 섭렵과 사색 심화)에 맞는 설계(주관 논리)로 차별화(기발한 상상)하고 신제품(신선한 비유)으로 출시한 결과다. 우리 수필계 우뚝한 랜드마크 건물이다. (좋은 수필, 2021-10, 196-200면)
첫댓글 방 교수님 참 오랜만이에요.
글로 만나도 매우 반갑군요.
늘 건필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