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의 영웅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별똥별 사라지듯 사라진 조국의 영웅들!
그들이 남기고 간 철모는 녹슬어 가고 있다.
그 날을 증언하듯 탱크와 비행기는 다부동 언덕에서 조국의 영령들을 지키고 있다.
70년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유학산도 밤이 되면 웅웅 소리 내고 운다.’고 한다. 유학산 꼭대기에서 흐르는 피눈물이 다부동 골짜기를 채울 때 난 세 살배기 아이였다.
할머니께서는 6월만 되면 6.25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 등을 타고 피난길에 오른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칠곡군 약목면 관호 2동이다. 다부동과는 지척 간의 거리다.
라디오에서 한강 다리가 끊겼다고 한다. 6.25 전쟁이 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피난 가야 한다고 서두르고 있다.
주민들은 왜관 철도나 인도교가 끊어지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난리들이다. 할머니께는 다른 집보다 걱정 보따리가 하나 더 있다. 세 살배기 어린 것을 데려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업고 가야 하는데 업힐 곳이 없다. 그렇다고 걸릴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집안 식구들은 서둘러 피난 짐을 챙긴다.
고모와 할머니는 이고 갈 짐, 삼촌과 할아버지는 지게에 지고 갈 짐 등을 챙겨놓고 보니. 태산처럼 높다. 이고 지고 들고 소 등에 싣고, 문제는 세 살짜리 나였다.
업을 수도 걸릴 수도 그렇다고 두고 갈 수는 없잖는가 안거나 업으려면 짐 하나를 줄여야 한다. 소 등에 태웠더니 무섭다고 울어댄다. 할 수 없이 손끝에서 손끝으로 배턴을 받듯 교대로 넘겨받으며 가야 했다.
멀기도 먼 피난길의 첫 번째 관문이 신동재다. 낮에도 무섭다는 신동재를 어린 것 데리고 이고 지고 힘겹게 넘는다. 겨우 팔달교에 다다랐다. 다리 아래 모래사장에 피난 짐을 풀었다.
환경이 달라지니 불안감에 어린것은 울어댄다. 모래사장 위에 이불 홑청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고 무엇을 먹일까? 고민이다.
유복녀 손녀딸 걱정으로 할머니의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피난살이 하루해가 길기도 하다. ‘밤이 되면 무섭다고 울어대는 손녀딸 때문에 할머니는 밤이 올까 두렵다.’고 했다
오늘 다부동 아래에서 산화된 그대 영웅들을 만나보게 됐다. 삶보다 더 소중함이 무엇인가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다부동에서 아버지들의 지게 위에 얹힌 등짐, 어머니들의 머리에 인 봇짐, 모래밭 이불 홑청 위에 누워있는 세 살배기 아기의 모습이 떠오른다.
60여 년을 대구에서 살았지만, 다부동 전적기념비 안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라!
우리 피부에 와 닿지 않는가!
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2022년 국보 문학 기행은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고 조국애를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전투! 다부동 전투!
여기서 패하면 모두가 끝장이라는 각오로 싸웠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조국을 생각하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고 단호한 명령을 내린 민족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었다.
그때 백선엽 장군의 나이는 겨우 29세였다.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살렸다.
8월 뙤약볕 아래 땅에 엎드려 무거운 철모를 쓰고 총부리 바라보며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느 학도병이 남긴 글은 국보 가족 모두의 영혼을 흔들었다.
‘어머니 !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어린 학도병의 마음 안에는 고향의 어머니가 울고 계셨다. .
고향 텃밭의 상추가 생각나고 깊은 샘에서 퍼 올린 찬물에 밥 한 그릇 말아서 먹고 싶었던 어린 영웅들이여!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조국은 없습니다.
이불 홑청 깔아놓은 모래밭에서 나는 물고기의 밥이 되었겠지요.
다부동 골짜기를 채운 그대 영웅들의 피눈물에 우리는 발을 담그고 살아갑니다.
그대 영웅들 덕분에 행복한 조국이 있고, 국보 문학이 있고 제가 살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혼곡이 울려 퍼질 때는 온몸의 비늘들이 불기둥처럼 솟구쳐 올라 온몸이 뜨거웠다.
오늘 들은 진혼곡은 나라를 잘 지켜달라고 하는 그대 영웅들의 호소와 절규로 들렸다.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 마음과 글을 갈고 닦아서 살아 숨 쉬는 좋은 글 남기겠습니다.
그대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영웅들이여
편안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