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 : '스타카도(staccato)'식 문체로 짧은 문장이 운문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많은 동작과,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서술자는 자신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그의 절제는 접속사와 수식어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의 절제는 접속사와 수식어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체언과 용언으로만 구성하며, 중문 또는 복문 구조를 피하며 단문으로 일관하고, 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거세시켜 객관 묘사법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데서 극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스타카토 문체가 주는 효과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순수한 공백이 독자의 인상과 감동을 촉발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사건의 비극성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
배경 : 철거 위기에 놓인 도시 빈민들이 살아가는 1970년대의 도시
구성 : 액자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넘나드는 구성과 우화적기법
외화 - 우화(寓話)로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제기, 우화의 의미 - 타인과의 관계를 벗어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화 - 빈민층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일화 적용, 소설의 주제는 매우 사실주의적인데 반해 수법은 반사실적, 서정적임
시점
외화 :작가 관찰자 시점
내화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사실의 양면성.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그가 속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안과 겉,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 양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연작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의 한 편으로, 1970년대 말 가속화된 산업화의 희생자인 도시 빈민층의 삶을 배경으로 하여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비판, 사물에 대한 고정 관념 경고, 철거민들이 겪는 좌절과 고통, 도시 빈민 계층의 참혹한 삶과 의지, 빈민층과 부도덕한 부자들과의 대립들을 그림 - 1970년대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쟁이 가족의 삶을 통해, 도시 재개발에 가려진 소외 계층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표현상의 특징 :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시점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고, 과거와 현재 시간을 중첩시키면서 사건을 전개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통해 서정적인 감정을 자아내고, 우화(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인용하여 의도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문제 제기와 해답 추구의 과정을 거쳐 삶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의의 : 산업화로 인한 사회 구조의 모순과 병폐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아울러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시각을 갖도록 한다.
<줄거리>
이 소설은 1970년대 가난한 노동자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는 아직 제대로 된 노동법조차 없어 많은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했던 시기이다. 소설 속 약자들은 결국 이기지는 못 하지만, 그들이 간직한 깊은 희망을 보여준다.아버지 김불이는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사람으로써, 결국은 현실을 도피해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그는 늙어가며 많은 정식적 피해를 받았고, 그것은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현실을 도피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달나라를 동경하고 서커스를 하겠다는 등 비상식적인 일을 원하게 된다. 그는 평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육체 노동을 하며, 그들의 자식들이 금전적 문제로 그와 똑같이 육체노동을 하며 문맹인으로 자라나는 걸 보며 얼마나 슬펐을까. 한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일해 온 그로써는 그 상실감과 슬픔이 더욱 컷을 것이다. 단지 난쟁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들과 조금 신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사회의 빈곤층의 위치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나름대로 장애를 극복하려 애쓰며, 열심히 일을 한다.이 가족의 장남인 영수는 가장 깨어있는 지식인이다. 그는 가족들의 어려움을 오로지 공부로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하며, 열심히 공부한다. 그는 지식인으로써, 다른 아이들과는 정신적 성숙함의 깊이가 달랐다. 가족과 영수를 보면 사회의 지식층과 하층 빈곤민의 갈등이 잘 일어난다. 김불이가 집에 없을 땐 가장의 역할을 맡아내고, 둘째 아들인 영호는 영수와는 반대로 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며,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모든지 쉽게 포기해버린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족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만 현실의 타개책을 제안하거나 하지는 못하는 의지박약의 인물이다. 요즘의 젊은이들도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을 비판하고 원망할 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명희와 영희는 빈곤층 여성의 슬픔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장에서 일하며, 몸을 팔게 된다. 제일 희생이 크면서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 하며 여성으로 기본 인권도 받지 못한다.
<느낀점>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아픈 책이었다. 하지만 난쟁이들의 힘겨운 삶의 투쟁을 보면서도 그들에게서 돌 틈에서 핀 미나리아재비꽃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느꼈다. 이 책이 가슴 아픈 것은 그들이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짖밟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시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초라하다 할지라도 행복을 누렸던 자신들의 집이 헐리는 것을 보고 난쟁이 일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록 그 집은 무허가였지만, 난쟁이 일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지닌 집이 현대 사회에서는 단지 '무허가'라는 이유로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계엄령과 긴급조치의 시대였던 70년대는 작가에겐 '쓸 말을 빼앗겼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암울하고 숨막혔던 시대에 연작소설 을 썼던 것은 벼랑 끝에 내몰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우리네 삶에 '경고 팻말'이라도 세워놓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라는 작가 조세희의 회고담 그대로 이 작품은 나의 가슴에 경고 팻말을 세워 놓았다. 난쟁이라는 왜소하고 병신스런 모습을 통해 산업 사회의 허구와 병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이 작품이 내게는 내면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무시하는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가 그것을 바로 보는 이를 난쟁이로 본다는 회의적인 의미로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쟁이 아버지의 눈으로 우리를 본다면 오히려 우리가 난쟁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