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코밥상
권순옥
비가 온다. 을씨년스럽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단풍이 들더니 추적추적 빗방울에 낙엽이 진다. 이런 날에는 음식도 따뜻한 것을 찾게 된다. 기억 속에 저장된 추억의 기슭에는 먹거리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호박죽, 콩죽, 갱죽. 그 음식이 무슨 근기가 있었을까만 먹은 게 남아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잔뼈가 굵었다.
봄에는 시래기죽을, 가을에는 호박죽이나 가끔 콩죽을, 갱죽은 거의 겨울에 자주 먹었다. 경상도에서는 식은 밥과 신김치를 넣어 끓이는 것을 갱죽이라 한다.
"남들이 묵는 거는 몰라도 입는 거는 아는 기라. 개똥철학 친정어머니 문자다. 때꺼리 없어 굶고 들앉아도 굴뚝에 연기만 내면 조석은 끓여 먹는 줄 안다고 했다. 이를테면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굶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 시절에는 부농도 일본 순사에게 공출을 대고 나면 일 년 양식이 빠듯했다는데 빈농은 오죽했으랴. 엄마는 순사하고 갱죽은 평생 안 봐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부족했던 절대빈곤시대의 슬픔 어린 음식이다. 갱죽 3년 먹으면 형편이 멍석처럼 펴진다고 지겹도록 먹어야 했던 그 죽은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갱죽은 밥과 김치가 주재료다. 김치는 숭덩숭덩, 고구마는 뚬벅뚬벅 썰어 넣는다. 쌀보다 보리가 더 많이 섞인 밥 한 양재기 넣고 푸욱 끓여 한때 끼니로 때운다. 갱죽은 밥알이 퍼져 미끄덩한 진기가 거섶에 엉겨야 제맛이 난다. 밥이 들어갈 만큼 들어가야 나물이 부드럽다.
겨울 해는 노루 꼬리만큼 짧았다. 점심때 밥은 건너뛰기 일쑤고 고구마로 때우는 것이 예사였다. 김치와 밥 한 자배기, 삶은 고구마가 상에 올라온다. 식구가 두레상 앞에 앉으면 숟가락을 먼저 들기보다 고구마 소쿠리에 손이 먼저 갔다. 그래도 천금 같은 당신 새끼들에게는 밥을 먹이고 싶었으리라.
"밥은 너거 무라"며 부모님이 우리에게 밀어주면 우물처럼 속이 깊은 언니도 덩달아 따라했다. 열 살 안팎으로 어렸지만 허벅지게 퍼먹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결국 밥은 반도 더 남겨져 부엌으로 되돌아갔다. 양식을 절약하느라 남은 밥으로 저녁에는 온 식구가 밥알이 넉넉한 저녁을 먹게 된다.
"마싯나?"
"뚜겁다."
"입천장 디일라 천천이 묵어라."
그런 밤은 속이 든든해 행복했던 것 같다. 국이라기엔 되직하고 죽이라기엔》 묽은 갱죽은 어쩌면 삶의 모자람이 담긴 음식, 구황식품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가족을 지키려는 사랑이 있었고 나눔이 있었으며 끈질기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조금은 불편했던 그 가난이 산교육이었다. 가난 속에서 일찍 철이 들어 내리사랑법을 배웠고 배려하는 미덕을 배웠다. 어릴 때의 기억에 갱죽 국물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젊을 때는 부침개 마른반찬 등 구색이 맞게 앙그러진 밥상을 차렸다. 요즘은 종일 농장 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단출한 쥐코밥상을 차린다. 쥐코밥상이란 죽이나 반찬 두어 가지만으로 차린 초라한 밥상을 말한다.
오늘 저녁은 또 뭘로 한 끼를 때우나. 쉬운 것이 갱죽이다. 궂은 비와 뜨끈한 갱죽, 그 어울림이 제격이다. 머릿속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 그이가 기다렸다는 듯 얼른 주워 "그래 갱죽 좋지" 한다. 이심전심이다. 남편은 갱죽을 별미로 여긴다.
둘이 먹는 거 찬밥 한 공기만 있으면 된다. 신김치와 멸치 몇 마리, 밀가루 수제비, 콩나물은 없어도 그만 있으면 금상첨화다. 고놈은 맨 나중에 넣고 한소끔 복닥복닥 끓이면 아삭함과 향이 살아있다.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본다. 간이 딱 맞다. 칼칼한 국물과 부드럽게 풀어진 밥알이 입안에 그득, 갱죽이 특별한 날 잘 차려진 음식 못잖은 '특식'이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후루룩후루룩 퍼먹는 갱죽, 그이는 초라한 쥐코밥상을 큰 상을 받은 듯 좋아한다. 그런 남편이 고맙다.
-《수필미학》50호(2025 겨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