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12,9-10)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진실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진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진실은 순교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셋째, 진실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크게 영향력을 미칩니다. 한 사람, 한 집단, 한 시대에 영향을 끼칩니다.
라자로는 “예수님을 믿어라”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통해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이라는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구나. 그분은 정말 구원자시구나”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라자로는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누구나 라자로를 보면, 그를 죽음에서 살리신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신성남’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부족하고 형편없는 사람을 신부로 만들고 오늘날 이렇게 있도록 하신 하느님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지위와 지성 그리고 사회적 신분을 보는 게 아니라 그가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라자로와 같은 존재입니다.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 변화, 축복을 주었습니다.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강하게 감동을 받았던 말씀이 바로 “라자로 때문에”입니다. 그래서 성서에 형광펜을 얼마나 많이 그었는지 모릅니다. ‘라자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신성남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런 질문은 예수님을 만났던 신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저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1) 영적 목마름의 해결
드디어 다음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33년 동안입니다. 앞서 30년 동안의 기록은 별로 없고 공생활 3년 동안의 기록이 많습니다. 그 중에 특히 마지막 1년 동안의 기록이 가장 많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사건은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4복음서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다는 소문을 듣고 유다인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유다인들 사이에 뭔가 흥분이 일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축제를 지내러 온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이렇게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12,12-13)
참으로 이상한 점은 그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영적 호기심, 영적 갈증, 영적 끌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 목마름을 갖고 삽니다. 사람들은 영적 갈증의 해갈을 교회에 기대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무기력해 영적으로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당에 와서 졸다가 그냥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많은 부분에서 위기를 맞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많은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홍수가 났을 때 마실 물이 없는 것과 마찬기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종교 천국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수석 사제들은 종교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진정한 구원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어느 누구도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영적 목마름, 영적 호기심이 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메시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가서 환호했습니다. 종려나무는 열대성 식물로 사진이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는 것은 사랑, 기쁨, 존경, 환영 등을 의미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첫째, 진실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진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진실은 순교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셋째, 진실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
“이튿날, 축제를 지내러 온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이렇게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12,12-13)
아멘.
아~~멘.
진실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
진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때로 진실은 순교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진실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크게 영향력을 미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