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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점이 있습니다.
님은 문무왕비문 원문을 가지고 계신가요?
전 번역본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원문(한자)을 가지고 계신다면
어떻게 받을수 없을까요?부탁드립니다.
실제로 님의 글을 읽고 제대로 반론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전 님의 생각과는 약간 다릅니다.
저도 번역본에서 "주몽을 부리며.."라는 내용도 보긴 했는데요,
물론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인 것은 사실입니다.
원래 중국에서 주왕조이후부터 이것을 제왕의 상징으로 했습니다.
바로 황룡입니다.따라서 신라인들이 중국으로부터 넘어왔으니까
아는것은 당연하다,혹은 중국에서 유명한 상징이니까 신라인들도
알법하다 이렇게 두가지로 결정되어질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첫번째가 더 설득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원래 황룡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봐야 주왕조 이후때부터라면,
한반도 사람들이 이를 알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는게 정상인것 같습
니다.
그런것 처럼 투후제천지윤의 내용역시 투후만 맞아떨어지는게 아니라,
금인제천했다,즉 이 사상이 진(秦)나라로부터 전해져 내려와
휴도왕국에서도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으므로...
사실상 제천할 아들로 태어났다는 뜻은 곧 휴도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만,
특히 여기다 투후라는 천자다음의 최고 관직명을 적음으로써
김일제임이 확실히 드러나게 되는거죠.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은 해봤죠.
신라인들의 조상이 중국으로부터 넘어왔다라기보다는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사람들이 신라인들 조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최소한 결론은 이렇게 두가지가 납니다.
문무왕비문이 사서의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은것은 사실이나,
하지만 자기 조상까지 왜곡해가며 썼다고 하기에는 수많은 비판을
거쳐야 하겠죠.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추모왕의 출자(북부여)또한 무조건 틀리기만
한 것이 아니므로...
즉 주몽을 부리며를 통해서 신라인이 주몽과 어떤 관련성을 보이는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투후제천지윤을 통해서 볼때에는 윤이란 글자가 종손을 뜻하므로
투후의 후손이 성한왕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님이 말씀하신대로 각각 연구소가 다르기 때문에 틀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연구해서 결과가 나왔다고 하시는데,
신라,고구려,백제가 모두 진시황과 관련이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아직까지 그 근거를 묻지 못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근거를 모으기
위해 꼭 물어봐야 할 사항입니다..
제가 본 번역본은 어떤 분이 여러차례 입수해서 그것들을 모아
쓴 것입니다.
어쨌든 문무왕비문 번역본을 가지고 계신다면 저도 꼭 받았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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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원하신다면 달아 드리죠.
저도 한서를 모두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므로 성한왕이 보이는 부분만
단지 조금 봤을 뿐입니다만,
투후의 경우를 비교해보겠습니다.(그리고 버릇이라니,사서 제목을
조금 안알려줬다고 그게 나쁜 버릇입니까?도대체 님의 그런 생각은
이해할수가 없군요.저는 사서 내용을 중요시하지,사서 제목을 중요시
하진 않는 편이기 때문에 어떤 사서인지,어떤 학자가 주장했는지
이름을 외우지 않는 편입니다.이점 제가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까?
그래요 죄송합니다....)
한서 김일제전
―칭찬해 이르기를(贊曰), 김일제는 이적(夷狄)의 사람으로 그의 모국을 잃고 한의 궁중에 매인 노예였으나 임금을 독실하게 공경하고 타일러, 스스로 충성스러움과 믿음이 나타나 공적에 의해 상장(上將)이 되고 나라를 후사에 전해 자손은 대대로 충효로 이름나고 7대 왕에 걸쳐 궁중을 돌본 일, 어찌 그리 성했는고. 본시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제천(祭天)한 까닭으로 김씨의 성을 주었다고 한다.
===> 한서나 자치통감에 유사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번역은 사람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이 시점에서 번역 상의 사소한 차이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국 사서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신라 김씨의 출자와 어떤 연관성을 가진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중국 사서에 나오는 내용과 신라 김씨의 출자를 연결시킬 수 있는 별도의 신뢰성있는 사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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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비문
투후는 하늘에 제사지낼 아들로 태어났다.(투후제천지윤)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단지 이름만 배껴왔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이제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신라인들이 중국사람을 자기 조상으로 꾸몄다는 것에 제가 뭐라고
하진 않았습니다.단지 신라인이 어떻게 중국 사서를 베껴올 수
있는가에 대해 물어본거지..
===> 문무왕릉비문에서 그런 석문을 찾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참조한 것은 백제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석문인데, '투侯祭天之胤'이란 문구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런 문구가 나온다고 해서 전후 맥락에 대한 자세한 석문과 해석 그리고 전반적인 고려없이 그것이 곧바로 신라 김씨의 출자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듭니다. 더군다나 비문 전체가 전하지 않아서 전반적인 해석이 어려운 비문을 가지고 그런 단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큰 의문이 듭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한다면, 신라 김씨는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란 주장도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백제연구소 제공 금석문을 토대로 볼 때, 이런 문구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黃龍이 나오고 朱蒙이 나오는 건 광개토태왕릉비문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관념입니다.
그럼 이러한 문구만 가지고 신라 김씨 족단이 고구려의 왕족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
만일 비문에 '투후'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을 가지고 신라 김씨의 출자가 김일제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같은 논리로 신라 김씨는 고구려의 왕족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말씀은 신라 김씨의 출자가 김일제와 연관성이 있는지 아니면 고구려와 관련이 있는지 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역사님의 글에서 그런 식의 단정을 내리기 위한 근거가 미약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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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신라인들이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투후제천지윤을
알리가 없습니다.문무왕비문이 얼마나 일반 사서와 쓰는 방법이
다를지 몰라도 투후라는 개념은 이를 뛰어넘어서 볼줄 알아야죠.
분명히 중국 사서를 베끼지 않는한은 투후제천지윤이니 하는 말들이
우연히 떠오를 수 없습니다.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한서에 성한왕은 중국의 관직명으로 나오는데,
문무왕비문에 성한왕이 문무왕의 15대조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하물며 투후마저도 일치되는 상황에서 성한왕이라고 일치가 안될까요.
아니,우리나라에 성한왕이라는 관직명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 '신라인의 출자가 김일제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투후제천지윤을 알리 없다'고 주장한다면, 같은 식으로 '신라인의 출자가 고구려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주몽이나 황룡 따위를 알리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별로 신뢰성있는 논리가 아닙니다.
동아시아역사님의 주장이 신뢰성이 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에 앞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1. 먼저 비문의 맨 처음에서 星漢王 관련 부분까지를 정확하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2. 그리고 한서에 나온다는 관직인 星漢王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星漢王과 김일제와의 연관성과 같은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기초적인 사항에 대한 바탕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는 한 '뜬구름잡기'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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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 분명히 단어 끼워맞추기를 한 것이 아니며,
다 근거가 있는 내용을 쓰는 것입니다.누가 제 생각이 100% 맞으라고
씁니까요?문무왕비문을 먼저 어떻게 보든간에 그거 이전에 생각해보실
점은 신라인들이 어떻게 이런 말(투후제천지윤,성한왕)을 알수
있는가입니다.
또 이상한 식으로 말 흐려뜨리지 않기 바랍니다.
아니,이글을 보신 다른 분들도 제가 본 문무왕비문이 틀렸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분명히 사관이 어쩌네 저쩌네 하기 이전에
신라인들이 어떻게 그런 단어를 알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 이 부분은 앞에도 제가 썼듯이 별로 신뢰성있는 논리가 아닙니다.
그런 식의 논리가 신뢰성있는 논리라고 한다면, 역사학에서 전문가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추가해서 말씀을 드리면, "사관"이라는 용어는 그런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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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기도 싫습니다.
왜 내가 언급해야지요?반박을 먼저가한 사람이 누군데,
신중치 못했다고 생각하시면 님이 직접 사서를 찾아보셔야죠.
제가 뭘 잘못했다고 사서를 올립니까?
(사실상 저도 어렵게 찾은것입니다.)
우선 문무왕비문의 투후니 성한왕이니 하는 개념을 제대로 잡으셨다면
바다로 통해서 왔다는 사실도 믿지 않을수 없습니다.
대륙을 통해서 왔다고 한다면 앞뒤가 더 안맞습니다.
우선 대륙 토착민 세력이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토착민이 한두명이 아니므로..
바다를 통해서 왔다고 한다는 것은 발해만연안,또는 산동반도를 거쳐
넘어왔다는 말입니다.실제로 한서에 "김씨들은 한나라에 저항하다가
마침내 바다를 통해 망명을 갔다"고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다를 통해 가던 도중 많은 수가 죽었을 가능성,충분히
있습니다.그중 일부세력이 살아남아 경주지방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일단 제 주장은 신라김씨 조상은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거나
최소한,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신라김씨 조상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전 님의 묘제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님은 문무왕비문을 연구도 않고 무시하시는군요.
아니,무시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선 사서와 완전 차별만 하시는군요.
특히 신라김씨 기원에 대해서 여러가지 근거가 더 있긴 합니다만,
님의 사관을 통해서 볼때 또 안받아들이실게 뻔하므로
전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