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살공주
심선경
우리 이웃엔 심각한 공주병을 가진 마나님이 사신다. 사람들은 그녀를 ‘백살공주’라 부른다. 나이를 백 살이나 먹었다는 게 아니라, 백 살이 되더라도 공주병을 못 버린다는 비아냥거림이 밑바닥에 깔린 별명이지 싶다.
부부 동반 모임에 가면 그녀는 유달리 예쁜 척, 귀여운 척, 사랑스러운 척을 한다. 그녀를 푼수데기 여편네라며, 동조 세력에 나를 끌어넣으려는 이웃들 틈에 끼여 그녀가 정말 사차원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성 자체가 나쁘다거나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냥 어물쩍대며 딴청을 피우곤 한다. 너무 오버해서 보기 괴로울 정도만 아니면 애교로 봐서 참아줄 만하다.
그녀가 아직도 백살공주란 별명을 떼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언젠가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공주병은 왜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정신장애의 일종이라며 잘 알아듣지도 못할 의학 전문용어를 나열하는 바람에, 들은 족족 바로 잊어버렸고 ‘공주병이란 자기애(自己愛)가 지나친 병’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녀 또한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늠할 순 없지만, 자기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그 병조차도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주병도 암처럼 악성과 양성이 있다. 이웃의 백살공주는 그나마 양성에 속한다. 물론 양성이라도 병은 병이니 부정적인 면이 없는 건 아니다. 공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매우 강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역시 자신에게 관심이 많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남들은 흥미도 없는 자신만의 소소한 일화를 무슨 대단한 전설인 양, 끝없이 읊어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원래 공주 이야기는 역사 내지는 신화가 되어야 나름대로 신비롭게 여겨지는 것이라 이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자기에게만 중요한 일을 남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자랑거리 축에도 못 끼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화려하게 포장하여 풀어내면, 처음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급기야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오르는 짜증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만드는 게 그녀다.
또, 공주병 증상 중의 하나는 ‘연약한 척’이다. 사소한 통증도 마구 부풀리고 엄살을 떨어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도록 은근히 부담을 준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도 도저히 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기야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의 수많은 공주들 중에 황소나 코끼리처럼 튼튼한 공주가 나왔던 적이 있었던가. 그녀들은 하나같이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처럼 누군가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연약한 존재들이었다.
악성 공주병은 앞서 나열한 증상들을 모두 갖고 있지만, 자기 주변 사람들을 모두 시녀화한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고귀한 신분의 공주는 자기 하나여야만 한다. 감히 천한 시녀들이 눈앞에서 설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누가 자기보다 잘나가면 절대로 용서가 안 된다.
이런 심각한 공주병을 가진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그 배후에는 엄마인 왕비가 있다. 왕비의 딸이 공주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자기 딸이 사랑스럽지 않은 엄마가 어디 있을까마는 그것이 도를 넘어서서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로 키우다 보니 그렇게 자란 딸 역시, 자신은 특별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대접해주어야 마땅하다고 믿게 된다.
여하튼 나이 잡수실 만큼 충분히 잡순 우리 이웃의 백살공주는 목욕탕에 와서도 예쁜 척, 잘난 척하며 공주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딱히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나로서는 그저 구석 자리에 앉아 덜 불어난 때만 죽으라고 밀고 있다가 한증막에 슬쩍 들어가 보기도 하는데,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부산을 떨던 그녀도 한증막 문을 밀고 들어선다. 동네 아줌마 여럿이 진을 치고 앉아 있다가 그녀에게 시선을 꽂는다. 그중 뱃살이 출렁거리는 거구의 아줌마가 백살공주를 보고 묻는다.
“댁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그리 몸매가 날씬하고 피부는 백옥 같수? 도대체 비결이 뭐유?”
“그래, 비결 좀 가르쳐줘요.”
옆에서 다른 아줌마가 또 거든다.
이쯤 되면 얼음이 든 녹차를 우아하게 마시고 있던 그녀가 우쭐해지기 시작한다. ‘후훗, 그래도 보는 눈들은 있어서……’ 하는 흐뭇한 표정으로 약간 머뭇거리더니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대답한다. 물론 어김없이 코맹맹이 소리다.
“딱히 비결은 없구요. 평소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생활하면서 틈틈이 교양서적도 읽고 좋은 영화도 감상하면서, 무엇보다도 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죠. 뭐.”
말문이 터지자 상대방이 원하든 원치 않든 줄곧 자신의 피부와 체형관리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는데, 한증막의 열기도 만만찮거니와 그녀의 공주병 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듯하여 나는 이야기의 절정에 닿지도 못하고 한증막을 뛰쳐나와야 했다.
정말 사람들에게 말한 그대로 실천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환상적인 몸매와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그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평소에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교양서적도 좀 읽으며 비록 TV 영상이지만 좋은 영화도 많이 본다. 그런데 왜 나는 그녀처럼 쭉쭉빵빵한 몸매와 우유 빛깔 같은 고운 피부가 되지 않는 걸까. 그래, 그녀는 과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나랑 다른 점일까. 저녁을 일찍 먹은 날, 밤 아홉 시쯤이면 배가 출출해져서 이따금 챙겨 먹는 야식 때문에 나는 그녀의 근처에도 못 가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만으로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녀가 끝까지 숨기고 말하지 않았을 비결이 한 가지 정도는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억측을 해 본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살아가는 방법에는 속이 훤히 보일 만큼 앙큼한 구석이 있다. 시간에 목 졸리며 항상 허둥지둥하는 나와 달리 그녀의 걸음걸이는 급할 게 없다. 목소리도 언제나 나긋나긋하다. 정장을 고집하는 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레이스가 잔뜩 달린 옷은 언제나 바람에 하늘거린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와 내가 저녁 찬거리를 사서 아파트 출입구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주차를 도와주던 경비실 아저씨가 나는 대충 지나치고 그녀 쪽의 짐을 받아 승강기까지 날라다 준다. 그녀는 명절마다 경비실 아저씨에게 작은 인사치레라도 하는 건가. 아마도 그녀가 나보다 더 연약해 보여서일게라며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려 애써본다. 그녀의 콧소리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는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듯하다.
백살공주의 남편이란 사람도 어찌 보면 꼭 팔불출 같다. 어딜 가나 마누라 자랑에 침이 마를 날이 없다. 가끔은 이런 팔불출 남편을 가진 그녀가 부러울 때도 있다.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 무뚝뚝한 양반은 마누라 칭찬에 무척 인색하다. 마음에 없는 소리겠지만 남들 앞에서 “내 마누라가 최고”라고 한 번이라도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는 걸까. 팔불출이라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기분 좋게 한마디 던져주면 업고라도 다닐 텐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어떤 때는 공주병인 그녀보다 내가 더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녀의 출중한 외모와 너무도 당당한 자신감에 압도당해 그녀 옆에 나란히 앉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녀처럼 외모를 가꾸거나 코맹맹이 소리를 만들어 낼 자신은 없다. 그녀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저만치 높고 먼 세계에 있고, 나는 그보다 한참이나 낮은 곳에 서서 그녀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그녀와 나 사이엔 건너갈 수 없는 강 하나가 흐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녀는 자신을 하늘이 내려준 절세미인으로 생각하면서 발걸음 가볍게 아파트를 나선다. 팔불출인 그녀의 남편은 언제까지 아내에게 칭찬 일변도의 멘트를 날려줄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백살공주인 그녀와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는 반쪽은 아름다운 외모를 영원히 비춰줄 수 있는 거울뿐인 듯하다.
오늘도 그녀의 손에는 작은 손거울이 들려있다.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는 찰떡궁합인 둘 사이엔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바로 백살공주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