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소금꽃의 시간 / 김형미
계절을 앓는 꽃들은 소금기 가득한 시간을 머금고 있다
빈 가슴에 가두고 졸여야 했던 것들
썰물을 따라잡지 못해 조바심치던 날들이 지나갔다
뒤척일 때마다 찰랑이는 들물에 하루하루 젊음처럼 위태로웠다
흐린 날이 많아서였을까 몇 방울 흩뿌리는 소나기에도 녹아내리던 아버지의 허술한 결정지엔 며칠째 아무런 낌새가 없다
마른 시간의 뼈마디에서만 하얗게 만개하는, 꽃
여름 동안, 쇠잔한 어깨로 읽어가던 바닥경전을 지니고 있었으니 발끝을 세우던 염부의 기도는 경계를 지우는 흰빛의 아득함이 아니었다
더는 어떤 물기도 흘러나오지 않을 것 같은 검붉은 얼굴에 하얀 기다림이 서린다
제 몸의 물을 다 쏟아내고서야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아버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빛의 눈물 같은 순백의 결정체 앞에
나의 각오는 결정되었다
마른 뼈들이 맞추어지듯 설산이 일어서고 있다
[우수상] 넙치의 잠 / 김영욱
쓰러져 누운 할머니의 뒤통수가 납작하다
눈꺼풀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하얀 시트 위에서 거품만 뻐금거리는 윤달,
잠녀의 치어들이 꿈틀거리는 눈동자 위에
갯바위 따개비 소라처럼 들러붙은 저승꽃이 붉게
피어나는 깊은 바다의 넙적 물고기
세월의 수압을 등줄기에 새겨 넣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반쪽 몸둥이, 외눈박이의
퇴화된 한 쪽 눈처럼 백태 낀 봄날,
추자 횟집 앞바다가 뿌연 물방울로
몸서리치고 있다
산소통에 매달린 목숨이
고생대 갑주어처럼
검푸른 우주의 단단한 리듬으로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다
횟집 수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깨어나지 않을 긴 잠에 든 오래된 잠녀,
꿈의 부쳑조차 부레를 잃고
가장 깊숙한 생시의 펄로 빠져드는지,
이따금 성한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수억 년 전 추억으로 가라앉고 있다
말해 봐요, 할머니,
그렇게 등짝 떼지 않는 건
바다에 빠뜨린 젊은 씨알을 줍기 위해선가요,
뭍의 나날이 이 꼴 저 꼴 눈꼴 시려
눈 감아버린 건가요, 말해 봐요, 할머니
머잖아 너울거리는 레이더를 꺼버리고
물고기자리로 돌아갈 잠녀, 물속에 잠들어 있다
할머니 뒤통수가 넙치처럼 납작하다
[우수상] 들망어업 / 유종인
- 숭어떼 벼랑 관측소
개복숭아꽃들이 산벼랑에서 파도소리를 듣는다
벼랑 아래 들린 복숭아 가지 하나는
아찔하지도 않은가 벼룻길 파도소리를
진분홍 꽃잠의 허공 베개로 삼고 있다
한낮 졸음에 결린 눈까풀 사이로
숭어떼가 오수와 각성 사이로 빠져나갈까
눈을 부비는 망보기는 막다른 벼랑의 척후병,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숭어떼들이란
한 마리가 곧 수 백마리의 군중심리로 선회한다
집에 두고온 치매 노모의 배변 걱정도
전방에 군 뱇;된 아들 생각도
개복숭아나무 뿌리너겁에 잠시 묶어둔 채
망잡이의 눈초리는 삼엄한 전시를 방불하는 적막 속이다
고요하고 소슬한 파란의 기척이 오기까지
바다 길목에 쳐둔 그물은 물비늘 하나 뜨지 못하는 기다림,
오지 않는 것은 언젠가 옥야 말 것이라는
천혜의 요새에 납작 엎드린 망잡이의 등짝 위로
복숭아 꽃잎이 무등을 태워줘요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숭어 속살에 복숭아 과육처럼 차오를 단맛은
쓴 침이 고이는 감시의 주리를 틀고 틀어야 오는가
한순간 푸른 물빛이 검푸른 빛으로 생색을 낼 때
짜릿한 전율이 몸을 훑는다 망잡이의 무전기가 말문이 트이고
수백의 숭어떼를 하늘로 헹가래치듯 잡아올릴 때
검푸른 물빛은 은빛의 파닥거리는 꽃숭어리들로
잠시 승천의 환호성을 들망 그물 위에 피워올린다
길목에 걸린 숭어떼들의 눈부신 개화,
저 숭어 꽃들의 비린 향기는 어부의 가슴에 벅차오른다
[우수상] 소라게의 집 / 조주안
갯벌은 얼핏 낙원과 가깝지만 파도가 깍지 못한 뼈들로 꾸며진 고원입니다
지도에 새겨지지 못한 방들로 가득한 하룻밤의 도시입니다
나는 껍데기들에게 세 들어 장례를 치러주는 오래된 악시입니다 나는 파도소리에 숨겨진 맑은 음악을 찾아 늘 깜박이를 켜듯 귀를 열고 터울 좋은 집들을 응시하죠
껍데기 속엔 뱃고동 소리처럼 비어있는 깊이만큼 감상적인 여정이 담겨있죠 나는 그 여정들을 읽으며 감정을 가다듬고 미지의 세계를 상상합니다 시간이 흘러 다니기를 좋아하듯 나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때마다 늘 시선은 바닥에 두어야 합니다 파도 속에서 떠밀려오는 것들과 떠밀려가는 것들을 능숙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집을 떠나보내는 일은 늘 여운이 남습니다 나는 새로운 집을 얻을 때마다 지붕 없는 해변의 방들을 생각합니다 살기 위해선 집이 필요하지만 방은 언제든지 만들고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습니다 숨구멍이 있다는 건, 그곳에 방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집들의 내력이 쌓일 때마다 내 몸에도 울림통처럼 이름 모를 방 하나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매일 밤, 바다에 비친 텅 빈 달이 울음을 뱉으며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