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죽음에서 생명으로
다섯째로, 십자가는 사탄의 패배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12,31)
십자가는 세상의 우두머리를 쫓아냅니다. 곧 사탄의 정수리가 두 조각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재자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국민들은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겪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독재자가 추방되고 나면 하루아침에 평화를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통치하던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무저갱(악마가 벌을 받아 한번 떨어지게 되면 영원히 나오지 못한다는 밑 닿는 데가 없는 구렁텅이)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십자가는 사탄의 패배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축복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탄의 능력이 제거된 것을 믿으십시오. 사탄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음을 믿으십시오. 사탄의 간사한 꾀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잡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사탄은 통곡하며 도망갑니다. 그러나 사탄은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두머리로 군림합니다. 사탄은 세상의 우두머리, 권력의 왕이 될 것입니다.
6) 참된 진리와 구원
여섯째로,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12,32).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이라는 말은 “내가 십자가를 짊어진다”라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고통이지만, 내가 십자가를 지면 너희를 나에게 이끌어 들이겠다”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믿는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외아들”이심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승천하시고 다시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하심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이 진리를 믿으면 우리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하늘로 들여 올려진 후 인간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의지해 그분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 올려지셨기 때문에 우리도 들어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우리를 잠그고 있던 빗장이 풀린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끌림을 받을 수 있으며, 들어 올려질 수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지만 아직도 십자가를 체험하지 못한 분이나 십자가를 믿지 못하는 분이 있으면 속히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결단과 고백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12,33)
본문 말씀에서 아직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 자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고통을 겪으실 것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히고 허리를 창에 찔릴 것이며 수많은 고초와 수모를 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이 죽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아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능력과 영향력을 지닌 것인지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로 온 인류가 구원받을 것도 친히 아셨습니다.
7) 죽음을 묵상하는 삶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해 가고 싶어 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날마다 죽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매일 확인하십시오. 그러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매일 죽음을 묵상한다면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죽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날마다 묵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의 죽음에 대한 의미는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선 비참함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묵상하지 않고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을 묵상하면 그 경지를 뛰어 넘게 됩니다. 그리고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용감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목자가 겪는 곤란한 일 중에 하나가 환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목자는 환자에게 “당신을 곧 숨을 거두게 됩니다. 죽음을 준비하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수와 화해하시시오.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하느님의 나라로 가십시오”라며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믿으면 삽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 밖에 없음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 날마다 “내가 죽는다면 후회 없이 하느님의 나라로 가겠다”라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죽음을 묵상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 있고 거룩하게 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첫댓글 아 멘 !
아멘. 아멘. 아멘.~~
죽음을 묵상한다는 것.
그것은 용기 있고 거룩하게 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