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레/ 김태영
게임을 하다보면 아이템에 무슨 수치가 붙어 나오는 경우를 봅니다.
예를 들자면 장갑에 +2힘 신발엔 +2민첩성 갑옷엔 +75% 방어력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장갑 하나 꼈을 뿐인데 힘이 세진다니 좀 웃기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실생활에서 이 아이템의 위력을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직업이 가구 배달 기사인데 가구 배달을 하려면 몇 가지 필수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첫째 장거리 대량운송이 필요한 화물차
둘째 단거리 이동수단인 손수레
셋째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이중 코팅 장갑.
넷째 가구를 등에 매기 위한 밴딩끈
다섯째 나사못을 박을 수 있는 전동드라이버 그리고 그 외 네비게이션이라든지 핸드폰 등의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건 이 도구들을 이용함으로써 훨씬 더 효율적이고 빠른 배달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코팅장갑과 손수레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코팅장갑은 켤레당 700 원에서 천 원 정도 하는 고급 장갑입니다. 200원 짜리 빨강 코팅 장갑은 신축성이 약해서 잘 벗겨지므로 우리 업계에서는 아예 사용하지 않습니다. 장갑을 끼면 확실히 마찰계수에 의해 두 배, 세 배의 악력으로 물건을 들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손수레인데 이 손수레는 한사람의 몫을 거뜬히 해 냅니다. 저희들이 사용하는 손수레는 바퀴 네 개가 360도 회전하는 손잡이 없는 손수레입니다.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 혹은 좁은 골목길을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방향 전환이 필수입니다.
바퀴의 힘을 이용하면 무거운 가구를 들지 않고 손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나 주택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날라야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 단지는 손수레가 제가 할 일을 대신 해 주니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고마운 손수레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물건을 내려주고 아무 생각 없이 다음 집을 향했습니다.
다음집도 아파트라 손수레에 싣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화물칸을 바라보는데 헉! 손수레가 없는 겁니다. 너무 놀라 운전석 문도 열어보고 박스 무더기도 뒤져보았지만 손수레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가만, 생각 좀 해 보자, 하지만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도통 어디 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 겁니다. 이럴 때 방법은 손수레를 사용한 마지막집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가끔 이 고마운 존재에 대해 잊어버리는 때가 있고 그럴 때면 거의 100% 마지막 사용한 집에 두고 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바로 앞집 신축 아파트 단지에 두고 온 것 같습니다. 배달도 미루고 부랴부랴 전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박스를 정리하고 105동 입구에 두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20분을 후퇴하여 105동 앞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몰라 배달했던 집을 다시 들러보았지만 여기 없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 한숨이 나옵니다. 손수레 값은 35000원입니다. 1년을 사용했으니 가격으로 치면 기껏해야 돈 만 원도 안 할겁니다. 그러나 손수레 없이 배달을 해야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경비원에게 손수레 못 보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 거기 있던 구르마? 아까 몽골 남자가 들고 갔는데…….”
“예? 몽골 남자가요?”
“그려, 이삿짐 차에서 내리더니 후다닥 뛰어와서 집어가던데.”
아! 이런 망했습니다. 10여년을 일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손수레를 잃어버렸습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이삿짐센터에서 가져간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없습니다. 그들도 저희와 똑같은 손수레를 10개 이상 들고 다닙니다. 당연히 그들의 손수레와 제 손수레가 섞여버리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직접 제 것이라 하고 가져오지 않으면 끝입니다. 원래 자기것인줄 알고 가져가 버리니까 말입니다.
오늘 일 또한 분명 제 잘못입니다. 제가 챙기지 못해서 벌어진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납니다.
“아니 지꺼도 아닌데 왜 가져갔데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저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허탈하긴 햇지만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서 깔깔거리며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몽골 사람 때문에 열 받았어.”
“왜, 왜? 몽골 사람들이 어째서?”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는 몽골 사람이 내 구르마 가져갔어.”
아내가 몽골 사람이라서 농담 삼아 깔깔대면서 말했지만 그래도 아내는 기분이 나빴나 봅니다.
“아이고! 구르마 잃어버린 사람이 속도 좋네, 그런데 구르마 가져 간 사람이 몽골 사람인 거 어떻게 알았어?”
“경비 아저씨가 몽골 사람이라고 했어 둘이 이야기 했었나 봐?”
“구르마를 도대체 어디다 뒀길래?”
“아파트 입구에 놔뒀지?”
“몽골 사람이 이삿짐 센터 직원이야?”
“그렇겠지.”
“근데 이삿짐 센터가 현관 입구에 뻔히 있는 거 알면서 구르마 거기다 놔뒀어?”
헉! 아내의 말에 저는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손수레 잃어버리면 100% 이삿짐 센터의 실수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 그러니까...”
제가 우물쭈물 하자 수화기 너머로 아내의 폭풍같은 잔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삿짐센터 차가 있었으면 미리미리 챙겼어야지. 자기가 잘못해 놓고 왜 몽골 사람 탓이야? 이삿짐 센타 아저씨들이 집어간 게 한두번이야? 어쩌고 저쩌고....”
흑흑... 저는 단지 위로받고자 아내에게 전화 했을 뿐인데...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남은 집들은 손수레 없이 버텨야 하는데, 다른 집은 남편이 남들 편이라는데 우리 집은 아내가 남들 편인가 봅니다.
“에잇!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당신이랑 말 안 해. 맨날 혼나기만 하고. 흥 칫 뿡!”
제가 볼멘소리를 하자 그때서야 아내의 말투가 부드럽게 변했습니다.
“어쩌겄어? 집에 하나 또 있으니까 오늘만 고생하쇼~”
아내와 전화를 끊고 다음 집을 향합니다. 이제는 아파트건 뭐건 무조건 다 등에 지거나 손에 들고 날라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등짐을 지어야 합니다. 복도식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부터 저 멀리 보이는 복도 끝까지 등에 업고 아! 말해 뭐하겠습니까? 속도와 힘이 두 배 이상 소모가 됩니다. 다른 날보다 두시간이나 더 걸려서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손수레를 내어 줍니다. 아내가 내어 준 손수레는 너무 크고 바퀴 회전이 안 되어 방향전환이 자유롭지 못해 사용할 수 없는 손수레입니다.
아내가 내 준 손수레를 물류창고에 주고 새 손수레를 샀습니다.
손수레에 제 전화번호와 이름을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손수레 한가운데에 다음 문구를 적어 넣었습니다.
‘이삿짐 센터 아자씨! 제발 가져가지 마세요. 이삿짐 센터 거 아니에요. ㅠ.ㅠ’
첫댓글 세상에나....고생하셨네요~!!
손수레가 어디로 갔을까~얼릉 돌아오렴~♡
어쨌든 죄없는 몽골사람도 김선생님 사모님도.... 글 속에서 읽으니 몽골 고비에 갔던 때가 마냥 그리워졌어요. 잘 읽었어요~♡
손수레가 지 가고 싶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ㅎㅎ
거참!
@@ 그러니까 말이에요 ㅎㅎ
손수레 잃어버린 일을 이렇게 아기자기 하게 재밌게 쓰셨네요
그 어렵다는 여성시대 방송을 2번씩이나 타고~(3번인가?,,,)
능력자세요!
손수레가 저리 편하고 큰 일하는데,
발수레를 사면 얼마나 더 편해질까요!!
ㅋㅋ 올해만두번째입니다. 매년 한두번 방송탑니다.^^
@우리윤아 저는 매년 한두번 시내버스 탑니다.^^
대단 허심니다 라디오시대를 평정 하셨군요!!! 7월말까지 하반기 문학상 몇 군데가 있는데 던져 볼까 고민 중입니다^^
내보시게나 당선되믄 술한잔 사고 안되믄 말구~
우씨 형이 전화 안 받어 글로 만들어 올렸어요...............아 김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