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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계간《에세이문학》에세이문학작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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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수필/시 작품방 스크랩 낚시의 고수 -에세이문학 2010여름호에 초회추천작품-
김경애 추천 0 조회 69 11.02.15 14:0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추천응모작 수필]

낚시의 고수


김광남


  “형, 낚시하러 가자. 날씨도 좋고, 산경치가 대단한데.” 오랜만에 아우가 찾아와 조른다. 산의 나무들은 어느새 작은 잎들을 키워 갖가지 푸르른 색들을 피워낸다. 낚시 철이 이르기는 하지만 깻묵가루, 보릿가루, 생선가루 등 떡밥재료를 사왔다. 그걸 밥과 함께 반죽해서 보통 감자 크기만 하게 뭉쳤다. 그 속에 방추형으로 6개의 잉어 낚시를 숨겨 넣었다. 그런 덩어리를 열 개 만드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제방둑길을 달린다. 강물은 하얗게 반짝이며 비릿한 강 냄새를 몰고 온다. 원주 간현에 있는 섬강 큰 다리 근처에 조어(釣魚) 할 터를 잡았다.

  강물이 차서 왕성한 입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낚시고임대를 둑에 박았다. 8개의 릴낚시를 펴서 만들어온 떡밥을 핀 고리에 모두 걸었다. 릴 줄을 풀고 힘껏 던졌다. 활처럼 휘었던 낚싯대가 펴지며 낚싯줄은 총알처럼 멀리 풀려나가 풍덩 소리와 함께 멈췄다.

  강 건너 산등성이는 해를 넘기며, 강물에 뿌린 노을을 서서히 거둔다. 강은 어둑해지고, 낚싯대 끝에 달린 은방울이 물위에서 잘게 떤다. 끝이 휘청거리도록 강한 떨림과 딸랑거릴 방울소리를 기다린다. 낚시 끝을 보니, 희미하게 고기떼가 오는 깊은 물속을 짐작 할 수 있다. 큰 잉어들이 떼를 지어 강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아직 덜 풀린 떡밥 주위를 맴돈다. 그 중 한 놈이 조심스럽게 떡밥을 입술로 툭툭 건드린다. 함정일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떼를 몰아 한 바퀴 돌고는 사라진다.

  낚시 의자에 앉았으면, 갑자기 내가 앉은 자리가 배(舟)가되어 강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는 착각에 빠진다. 착각에 승선한 나는 상류 합수머리 근처까지 오른다. 길옆엔 작은 가게가 있고, 합수머리 쪽으로 가면 불룩하게 배부른 돌기가 나온다. 거기는 친구 종환이랑 밤낚시를 했던 곳이다.

  그날은 초저녁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비를 챙겨 입고 간드레 불빛에 반사한 삼색 찌를 보며 상념에 젖는다. 잔잔한 수면위로 빗방울이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린다. 친구는 졸려서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고 자리를 떴다. 난 고기떼가 몰려올 것 같아 잠이 오지도 않지만, 수면을 바라보면 잡다한 일상들이 물속에 잠기고 마음은 평안해 진다.

  갑자기 삼색 찌가 좌우로 흔들렸다. 찌가 조금씩 물속으로 들어간다. 벌써 손은 낚싯대를 거머쥐었다. 한밤에 올 것이 오고, 상상이 들어맞았다. 물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찌가 서서히 솟구친다. 이 좋은 찬스를 놓칠 리 없다. 낚싯대를 힘껏 당겼다. 타이어에 걸린 것 같이 푹신하다. 손바닥에 전율이 온다. 잠시 후 팔뚝만한 고기가 낚싯줄을 입에 매단 채 물 밖으로 치솟아 오른다. 입에 걸린 바늘을 빼려는 수작이다. 지체 없이 당기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발버둥을 친다. 끌려나온 고기는 제법 큰 잉어다.

  잉어를 잡았다는 외침에 자던 친구는 한달음에 좇아 나왔다. 10분도 안되어서 똑같은 크기의 잉어가 또 내 낚시에 걸려들었다. 그것이 친구와 낚은 마지막 잉어였다. 한 학교에 근무하면서 가래떡과 조청 같이 찐득하게 붙어 다니던 오랜 친구였는데, 그 후 혈압으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 그 때 함께 밤을 지새운 종환이가 오늘 새삼 그립다.

  입질을 할 때 챔 질 하는 성질과 순간을 적시에 포착하는 정도가 되면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중 조궁(釣窮)이다.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된다. 찬스는 누구에게나 온다. 낚시는 우리네 삶과 흡사하다. 뒤돌아보면 나는 늘 우물쭈물 재다 실패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낚시에 걸린 고기를 끌어올릴 때는 당기고 늦추는 동작의 완급을 잘 조절해야 하고,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한다. 튼튼한 낚싯대와 굵은 줄만 믿고 사정없이 끌어 올리다가는 낚싯대가 부러지거나 줄이 끊어져 실패하기 십상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비싼 낚시 장비에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다 해도 좋은 성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운만 믿고 허술한 채비로 낚시를 해봤자, 당연히 건져볼 고기는 없다. 밑밥은 반드시 푸짐하게 주어야 한다. 그건 농사로 치면 밑거름이다.

  동생과 낚시를 걸어놓고 앉은 지가 벌써 3시간이나 지났다. 낚싯대는 방울을 울릴 생각도 않는다. 내 경험으론 낚시 4일가면 3일은 공(空)치는 날이다. 아우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한 시간이 또 지났다. “형, 오늘은 공치는 날 인가봐.” 동생과 난 돌아갈 채비를 한다.[200×12] (09.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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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낚시의 등급으로 조졸(釣卒)-조사(釣肆)-조마(釣痲)-조상(釣孀)-조포(釣怖)-조차(釣且)-조궁(釣窮)을 거쳐 남작(藍作)-자작(慈作)-백작(百作)-후작(厚作)-공작(空作)에 이르고 드디어 조성(釣聖)과 조선(釣仙)에 이르는 것.<이외수의 수필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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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2.15 14:17

    첫댓글 김광남 선생님, 방을 옮기다가 그만 댓글을....
    댓글 올려주신 분께 죄송해서 어쩌나... 복희님과, 미옥님께 다시 댓글을 부탁~^^*
    댓글도 사랑...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1.02.1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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