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 전쟁으로서의 트로이 전쟁
그리스 신화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순전히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헬레네 납치 사건으로 돌리고 있다. 자신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트로이 측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 신화 이외에 트로이 전쟁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헬레네가 트로이로 도망가기 이전부터 내내 트로이를 침략할 명분을 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던 중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가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군대를 동원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예 헬레네 납치 사건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한마디로 말해 그리스인들은 소문으로 들려오는 트로이에 있는 엄청난 황금을 탐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04년 개봉된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는 우리의 이러한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는 신화와 관련된 부분은 모두 생략되고 모든 사건이 현실 정치와 맞물려서 벌어진다.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던 그리스와 트로이는 서로 화해를 시도한다. 화해 사절단으로 트로이에서 헥토르와 파리스가 파견된다. 그리스 왕궁에서는 이들을 맞이하여 성대한 연회가 벌어진다.
그런데 연회장에서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첫눈에 그만 서로 사랑에 빠진다. 헬레네는 결국 귀국하는 파리스의 배에 올라타고 트로이로 도망친다. 메넬라오스는 미케네의 왕이자 형인 아가멤논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아가멤논의 반응이 아주 의미심장하다. 그는 옛날부터 트로이를 점령해 버리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동생을 심하게 꾸짖으며 이제야 트로이를 공격할 구실이 생겼다고 기뻐한다.
이 영화는 배역을 통해서도 그리스군이 침략군이라는 인상을 물씬 풍긴다. 그리스군의 대표 장수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모두 인상이 험악하다. 얼굴에 흉측한 상처가 있어 숱한 싸움으로 잔뼈가 굵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전투에는 소극적이다. 그는 아가멤논의 침략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급기야 그는 헛된 야욕에 사로잡힌 무례한 아가멤논에 실망하여 전투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그가 나중에 전투에 다시 참여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를 위해서가 아니다.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어 원수를 갚기 위해서이다. 이에 비해 트로이의 대표 장수 헥토르와 파리스는 얼굴이 매끈하고 유순해 보인다. 그들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평화스럽고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인물 배정을 한 것은 감독이 잔인한 침략군으로서의 그리스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전쟁의 아버지,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의 전투 양상이나 결과는 많은 점에서 그 이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전쟁을 선취하고 있다.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멀리서 운집해 있다가 각각 밀집대형을 이루어 서로를 향해 달려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모습은 어느 전쟁에나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트로이군이 그리스군의 방벽에 개미떼처럼 기어올라 그것을 뚫고 그리스군 진영으로 넘어가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들은 근접전을 벌이기 전에 현대의 포격전처럼 멀리서 활이나 창이나 돌을 던지기도 한다.
양군이 도열하여 싸움을 벌이다 가끔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일대일 대결이다. 『일리아스』에도 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대결을 비롯하여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까지 몇몇 일대일 대결이 등장한다. 『일리아스』의 일대일 대결 장면은 정복 전쟁을 벌인 로마 장군들의 일대일 대결이나, 중국의 『삼국지』와 『수호지』,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 TV에서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의 일대일 대결을 연상시킨다.
고대의 전쟁의 전투는 정탐이나 습격이 없이 양군의 보병이나 기병이 무리를 이루어 싸우는 원시적인 형태로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리아스』에는 벌써 정탐이나 습격이 등장한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트로이군을 정탐을 하기 위해 적진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안심하고 있던 트로이군에 습격을 감행한다. 그들은 이 습격으로 트라케 군을 이끌고 막 트로이군에 합류하여 곯아떨어진 레소스 장수를 비롯한 그의 휘하 병사 12명을 도륙한다.
트로이를 몰락시킨 오디세우스의 목마 전술은 일종의 속임수이다. 오디세우스가 그리스 병사 시논을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가장하여 남겨놓아 트로이인들에게 목마에 대한 의심을 사라지게 한 것도 속임수이다. 이런 속임수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전쟁에나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강강술래를 이용, 왜군을 속인 것도 유명하다. 『삼국사기』에 보면 우산국을 힘이 아닌 꾀로 정복한 이사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우산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기 어려움을 직감하고 나무로 사자 형상을 많이 만들어 전선에 싣고 가 해안에서 우산국 사람들을 위협했다.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모두 잡아먹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사부는 결국 이 속임수로 우산국 왕의 항복을 받아낸다.
트로이 전쟁의 결과도 그 이후 모든 전쟁의 축소판이다. 전쟁이 끝나자 패배한 트로이는 철저하게 파괴된다. 또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아이와 여성들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트로이 왕실의 운명이다. 그리스군은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공주나 며느리들을 모두 그리스 장수들의 성의 노리개로 분배한다.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에게 주어졌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주어졌다. 트로이 왕실의 운명이 그러했다면 일반 시민들의 운명은 어떠했겠는가? 최근의 이라크 전을 상상해 보자. 전쟁이 끝난 후 남아 있는 것이 있었는가.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하지 않았는가? 몇 년 전 끝난 보스니아 내전과 아직도 계속되는 아프간 전쟁의 최고의 피해자도 어린아이와 여성들이 아니었는가.
트로이 전쟁이 끝나자 앙키세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의 유민을 이끌고 정처 없이 항해한다. 그는 연로한 아버지 앙키세스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 아스카니오스(Askanios)의 손을 잡은 채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한다. 아이네이아스는 이곳저곳을 헤매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건국의 토대를 닦는다.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이네이스』를 보면 아이네이아스가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에 정착한 후 그의 13대 후손 로물루스(Romulus)가 로마를 건국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물론 후손이 로마의 건국자로 나타나지만 아이네이아스가 방랑하여 이탈리아에 정착하는 과정은 실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이네이아스의 방랑을 보면서 보트 피플이 되어 정처 없이 유랑하는 현대의 전쟁 피난민을 연상하는 것은 무리일까?
첫댓글 이번에 함께 볼 영화의 배경을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인터넷 정보 가져왔습니다^^
그렇잖아도 검색 해보려했는데 정보 감사합니다. 한아님 해설 기대돼요.^^
전쟁사에 관한 영화라서 미리 내용 파악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크겠네요. 해설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오랜만에 함께 하는 하하씨네!
반갑고도 기대됩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