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그 친구가 생각난건 tammy wynette의 stant by your man 이란 노래 때문이다.
듣는 순간 곧바로 생각났다.
토요일 아침 룸메가 출근하자마자 전투력 100% 충전후 시작한 일은 벼르고 벼르던 고추 다듬기이다.
서울 언니네것과 합쳐 30근을 사다놓고 여지껏 눈으로 더듬기만할뿐 한달 이상을 방치해둔 상태다.
작심을하고 장갑을 준비한 후 일 할 분위기를 만드는 첫번째 작업, 무작위로 뽑은 테잎을 장전후
음악을 들으며 아침 8시 반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런데로 좋았다.
맹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의 once there was a love 에 이어 우울하기 짝이 없는 deep purple 의 soldier of fortune (병사의 비애),
그러더니 맙소사! '일요일은 우울해'로 시작해서 죽음에 이르는 '글루민 선데이'가 나온다.
아침부터 이무슨 해괴한 음악이련가싶어 황급히 교체후 흘러나온 첫 음악이 내 친구가 여고 시절 가장 좋아했던
'태미 와이넷'의 '스탠바이유어맨'이다.
맥라이언과 톰행크스 주연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룬 밤'에서도 주제곡은 아니지만 나온 노래이기도하다.
친구 생각이 간절히 난다.
항상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있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 울적해진다.
그 친구와는 학교는 달랐으나 집은 가까워 방과후에 자주 만났었다.
단짝 넷 중 둘은 무용 전공으로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전학가고 둘만 남아 3학년 무렵때 희노애락을 같이했다.
친구는 우리들에겐 물주로 통할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그 당시에 새로 나온 50원하는 새우깡도 친구 덕에 처음 먹어봤다.
집에 놀러가면 밥상도 우리집에선 볼수없는 반찬들인것이, 광주에서 내노라하는 큰 요정을 어머니가 하고 계셨다.
지금의 청원 모밀 3층이 화실이었는데 렛슨이 끝나는 9시가 되면 아랫층에서 기다리곤했다.
집에 올때까지 별 중요하지도 않는 얘기로 서로의 일과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지금에사 고백하는데 그때 이미 우린, 학생 신분이었지만 젊은이의 메카 화신다방도 드나들었다.
어찌됐든 치열한(?) 고3을 보내고 대학 입학전 석달간을 그 친구와 주로 보냈는데
악연이랄수밖에 없는 그 남자를 만난게 그 시점이다.
온갖 멋은 다 부리며 날라리 생활을 잠시 한 셈인데 방년 19세에 무려 6살이나 많은 그 남자와는 딱 한번 봤을뿐
나는 서울로 가고 친구는 조선대를 다닌고로 그 이후로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한다.
강의가 빌때 시내로 나오면 맛있는거 사주는 맛에 친구들 이끌고 몇번 만남으로 시작했다는데 방학때 내려와보니 거의 동거생활을 하다시피 하고있었다. 한번 봤을뿐이지만 품성이나 형질이 너무 다른 그 남자와 어떻게 엮이게 되었는지......
아뭏튼 온갖 비난,반대,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학 3학년때 아이를 낳고 말았다.
스물한살의 임신 8개월때 결혼식을 서둘러 할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로 몇년간은 만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생활 자체가 달라버리니 자연히 멀어질수밖에 없었을것이다.
다시 친구를 만나게된건 10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나도 아이를 낳은 후였는데 다시 만난 친구는 더 비참해져있었다.
둘째 아이를 갖고있을때 친정에서 준, 집 10 채를 살수있는 지참금을 모두 탕진후
남편은 가출하여 다른 여자와 살면서 딸까지 낳았더란다.
젊기 짝이없는 나이에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을까?
혼자서 그렇게 10년 정도를 살더니 그렇게도 결사 만류하던 재결합을 하고야 말았다.
이젠 두 아들을 위해서 살 나이라며......
그때 고작 30대 중반이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친구지만 보고싶지않아 또 10년 정도를 보지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큰 아들 결혼한다며 연락이왔다.
그때 들은 얘기는, 남편은 또다시 딸을 낳은 여자와 살기위해 가버리고 혼자였다.
지금은 두 아들을 다 장가보내고 친정 어머니와 13평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있다.
풍족하던 재산을 모두 잃고 영세하기 짝이 없는 식당을 하며 지낸다.
친구는 나를 피한다고 여겨진다.
서로가 생각과 시각이 다르다보니 자꾸만 엇나가는것같다.
나의 진심어린 호의에도 옳게 받아들이지않는다.
그처럼 밝던 성격도 뾰족해져 매사 왜곡한다.
간혹 친구들 애경사에 참석할때만 볼뿐 나의 손짓을 불편해하는듯하다.
몹시도 마음이 아리다.
산행도 같이 하고싶고 그 시절에 자주 불렀던 carpenters 의 yesterday once more의 노래 가사처럼 옛시절로 돌아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남자를 곁에 두고 순애보적 사랑을 요구하는 스탠바이유어맨의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남편을 용서하고 또 용서하면서 붙안았지만 말로는 지금 어떠한가?
언젠가 울면서 읆조리던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될터인데......한 남자로 인해 내 삶은 곤두박질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삶을 스스로 재단하지못한 어리석음에 화도 난다.
왜 다가오는 고단한 삶을 끌어안기만 했을까?
왜 못난짓을 반복하며 무력하게 끌려만 갔었을까?
그릇된 판단과 빗나간 사랑의 파멸을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자존심으로 자신을 꽁꽁 묶고서 곁을 내주지않는 고약함에 친구들도 모두다 외면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친구야.
지난날이 어땠을지라도 이제는 자식들의 헌수를 받는,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온 나이가 되지 않았니?
삶의 모양이나 색깔이 네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다해도 지난날을 탄식하고 자조하지 않았으면한다.
지금까지의 삶이 어쩔수 없었다면 앞으로는 20여년 남았을 세월 동안은 달리 살아보지 않겠니?
삶을 그냥 흘러보내듯 탕진하는것이 아닌 적극적인 너의 주도로 가꿔보는건 어떨지 조심스레 권유해본다.
늘 건강을 잃지말고 나의 부름에 응답해주기 바란다.
고추 다듬기는 5시간이나 지난 오후 2시경에나 끝을냈다.
온통 친구 생각에, 손으로는 기계적으로 꼬투리를 떼고 닦고 했을뿐 어떻게 마칠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마무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는 듣고싶지 않다는듯 조용히 음악을 껐다.
첫댓글 추억이 음악을 타고 들어와 가을햇살처럼 고추옆에서 머물다 갔네요.
그 친구 하하에 모셔와 새 세상 한번 구경시켜주면 어떨까요?
음악취향이 곧 자기 성격과 관련이 있기에 운명이 조금은 그런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봅니다.세상 고뇌 다 떠안은듯 슬픈 노래만 부르는 가수들 일찍 떠났잖아요.밝은 빛,꿈을 노래하고 성장하는 희망찬 노래가 신상에 좋을 듯합니다.나는 그런데 너무 청승맞고 우울하고 안개쌓인 회색빛을 좋아하니 큰일..흘러간 팝송으로 내내 친구생각 하셨네요.똑같은 생활을 불 보듯 뻔히 예감하면서도 반복되는 불행에 친구로서 안타깝고 답답하셨지요.자존심으로 곁을 내주지 않았다는데 고약함보다는 보여주기 싫어서겠지요.영희언니 고추 다듬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새삼 궁금해지네요.
노래가사같은 인생이 되어버린 leehan202님 친구분을 생각하며 'stand~'을 듣습니다.예전에 그냥 좋아서 듣던 팝송이었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담고 있는듯 슬프게만 들립니다.친구분의 앞으로의 삶이 덜 아프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음악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어린시절 우리들 곁에 항상 노래와 클래식음악들이 있었지요. 헌책방에서 구입한 오르간교본을 보며 빈초등학교교실에서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학교종이 땡땡땡, 떳다떳다 비행기등.시간 가는 줄 몰랐고. 고2때 학교에서 친구들 어깨너머로 배워 피아노 바이엘을 마쳤죠.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피아노치면 옆에도 못오신다 하셨고 아침에 방송실에서 치고 있으면 선생님께서 직원회의하신다 하셔서 멈추기도 하였지요. 점심시간엔 계단식강당에서 음악감상하였지요. 메리위도우의 왈츠등. 유방암진단받고는 100개짜리 클래식CD사서 들었답니다. 책과음악은 삶의 동반자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