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는
외부인이란 없다
(주님 공현 대축일 2024.1,7)
60:1-6; 에페 3:2-3, 5-6; 마태 2:1-12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에 대해 들어
보셨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조이스의 저서들 중 하나로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이라는
단편소설 모음집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 중에 어느 날 저녁,
한 외로운 남자가 도시의 인기
있는 “연인의 길 Lovers’ Lane”을
걸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 사람은 그냥 혼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조이스는
우리에게 그 남자가 “인생의
향연을 떠난 한 사람의 외계인
처럼 느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마치 아웃사이더처럼
느꼈습니다.
조이스의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잘 읽히는 이유는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의 경험이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을 기대하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씀을 드리자면, 전세계
사람들이 조이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바로 내가
지금 느끼고 있거나, 과거에 느껴본
적이 있는 그런 느낌 인걸...”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조이스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게 되는 것은
현대 세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소외의 경험입니다.
소외에 대한 느낌은 집에서 느낄
것을 기대할 수도 있는 곳에서
집에서처럼 느끼지 못하는
경험입니다.
소외감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고
있는 도시 거주자들의 어딘가
고정된 뿌리가 없는, 근본이 없는,
삶에서 비롯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잃고 자기 자신들의
익숙한 환경에서도 낯선 사람처럼
느끼게 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즐기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막상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자신이 그런 집단이나 사물의 일부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외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현대 도시
거주자들 만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흔히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젊은이들의 청소년 문화가
젊은이들을 성인 세계와
단절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어른들도 역시 그런
소외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지속적인 변화가
어른들의 어린 시절의 익숙한
세계를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 즉 어른들의 어린 시절의
세계는 이제 영원히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인네들도 자기네들의 유용성을
젊음과 생산성에 관련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에서 소외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정말 이제는 소외감이 보편적인
경험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제를 지내는
이 축일, 즉 주님 공현 대축일은
바로 이와 같은 소외감에 대한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세 사람의
동방 박사들로 대표되는 이방
국가들에게 보여 주신 메시아의
현시에 대한 축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 공현 대축일은
실질적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축제 지냈던 그 원래의
축제였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4세기 말 에서야
비로소 기념되기 시작했습니다.
4세기 말까지, 그리고 오늘
날까지도 동방 교회에서는,
우리의 크리스마스가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축제를 지냈지만,
주님 공현 대축일을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축일로 축제를
지내왔습니다.
왜 첫 400년 동안의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보다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주님 육화(肉化)의 축일로
축제를 지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대교는 대단히
배타적인 종교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은
모두 배제하고 오직 자기네들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자기네들을 해방시키고 모든
이방인 민족들보다 자기네들의
민족을 높이 들어 올리는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성서에 이방인들을
“개” 라고 지칭하는 구절이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은
하느님의 자비에서 단절된
불신자들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놓고
볼 때,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의 이야기 속에서 이방인
“개”의 세 대표가 가장 먼저
메시아의 발치에서 올리는
예배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초기 유대인 개종자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그 이상으로,
실제로 이방인이었던 초기 그리스도교
교인 대다수에게는 이 메시지가
복음 말씀의 해방의 능력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이전에는 그런
이방인들에게서 배제되었다고
여겨졌던 하느님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사랑이 그 사람들에게
다가왔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하느님께서
소외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는
내용의 발표였습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에서
열리는 잔치에 온 땅의 모든
민족이 예외 없이 모두 다
초대되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앞으로 외부인과 내부인도 이류
시민도, 유대인이나 이방인도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 모든 민족이 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라고 불리게 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연유로
인하여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주님의 육화(肉化)가 주님 공현
대축일에 기념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유대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위해서 메시아가
도래한 것을 온 세상에 드러낸 것이
바로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오랜 사간이
걸렸고, 주님 공현 대축일의 완전한
의미가 아직도 실현되고 있는지
저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여전히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던 시절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의 국기에
싸인 채, 마치 그 나라의 신인 것처럼
선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청교도의 신학인
“자명(自明)의 운명설(運命設)
(Manifest Destiny”미합중국은 북이 전역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배 개발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19세기 중엽에 후반에 걸쳐 유행한
이론)”을 선포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 자명의 운명설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약속의 땅으로
떠난다는 운명설인데 – 이와 같은
내용은 절대로 주님 공현 대축일
메시지와는 조화시킬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오히려 그 역으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누구나
그 별을 쫓아 따르는 사람들,
즉 하느님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든 간에, 그런 모든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면서
저는 이제 다시 제가 현대 세계에서
경험하는 소외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 시작했던 그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이 주님 공현 대축일, 삼왕래조
(三王來朝) 축일은- 즉 동양에서
온 세 명의 외부 사람들 축일은
– 때때로 소외를 당하게 되는
우리들에 대한 하나의 일깨워
줌이 됩니다.
즉 우리는 자신들로부터,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부터
소외를 당할 수가 있는데,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는 항상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함을 느낄 수
있고, 항상 받아들여지며, 항상
무조건적인 환영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일깨워 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언제나
가까이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해 주는 하나의
영원한 빛, 하나의 영원한
안온함, 하나의 영원한 에너지를
표현하는 축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세 명의 동방
박사들과 또한 그 세 명이
대표하는 모든 사람들과
합류하게 됩니다.
– 즉 그 세 명이 대표하는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세계의 2류
시민들, 그리고 세계의 왕따들이
별을 따라가는 그 여정의 끝에
합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사람들을
메시아의 발치에서 얼싸안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평화
속에서 그런 모든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안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드림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네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월5일]
📖말씀:1요한 3,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 묵상
요즘 주변을 보면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와 '너'는 없고 '나'만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신앙만 신경 쓰는 개인주의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공동체로 이어지기 위해선 새로운 복음화의 차원에서 새로운 방법과 표현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기도
영원하신 주님, 제게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말씀 안에서 만나고 들은 것을 실천하는 자 되게 하소서.
💒실천해 보기
•냉담자에게 관심갖기
♧복음화발전소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아멘 제 안에 주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찬미예수님!
아멘.🙏
신부님늘감사합니다 늘주님의사랑이가득하시길기도드립니다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올한해 건강하게 기도올리실 수있게 해주시고, 신부님께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께 안녕과 평화를 빕니다🙏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월6일]
📖말씀:마르 1,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 묵상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십니다.
인간에게 오신 성령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하고 고백하게 합니다. 또한 성령은 과거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려는 신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법과 새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리는 신자들은 굳건한 믿음을 갖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어 성덕의 길을 걸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특은을 받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봉사의 도구가 됩니다.
🕯기도
주님, 저를 성령의 특은을 받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충직한 종으로 써 주소서.
💒실천해보기
•봉사의 도구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월7일]
📖말씀:에페 3,6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세상을 세롭게 만들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AD와 BC로 구분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계를 움직이고 지배했던 유럽 문화의 중심에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고 문화까지도 발전되었습니다.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우리에게 참평화와 참진리, 참행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제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 사상인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만이 인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
주님, 저에게 말씀을 듣는 마음을 주소서. 그 말씀 안에서, 온 세상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실천해보기
•사랑의 사람이 되기
♧복음화발전
신부님! 감사합니다
추운날씨에 건강조심하세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월8일]
📖말씀: 마르 1,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 실천 되는 곳에서 드러나십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살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친교는 교회의 본모습입니다.
([교회 헌장]1항) 친교란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고 하느님과 일치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 구원의 계획에 그리스도적인 사랑 안에서 자신을 봉헌하고 참여함을 뜻합니다. 이것이 복음화의 소명에 불림을 받은 모든 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영성입니다.
🕯기도
구원의 주님, 저를 복음화의 소명에 불림 받은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기쁘게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제게 허락하소서.
💒실천해 보기
•소명을 인식하기
♧복음화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