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둠을 떠나 빛으로 오라
‘바로 그 빛’이신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네 가지 메시지를 남기십니다.
첫째, ‘바로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잠시 동안 사람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기에 이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라는 말씀은 ‘메시아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로 요신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아는 영원히 지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때가 차면 그분은 제자들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이라는 말을 새겨 봐야 합니다. 즉 예수님은 잠시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가실 분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빛이 있는 동안 어둠에 붙잡혀 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이란 어둠의 반대 개념입니다. 어둠의 특징은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길은 빛이 있을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둠이 깔린 세상에선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찾지 못하면 곧 절망하고 맙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채 두려움이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면 불안하고 우울해지며 나중에 병들어 죽게 됩니다. 인간은 희망을 잃어버리면 짐승과 같아지고, 빨리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희망을 가질 때 암도 이기고 위기와 절망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이 꺾이고 맙니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 본 적이 있습니까? 칠흑같이 어둔 밤에 다녀본 적이 있습니까? 어딘지도 모른 채 한 발자국을 내딛으면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다면, 몸서리치듯이 두려워했던 그때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어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둠에 너무나 익숙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어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칠흑같은 현실이 어둠이라는 사실은 빛을 바라볼 때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어둠 속에 있고 그 어둠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빛이 있으니 그 빛이 있는 동안 어둠에 다시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이 빛이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빛을 찾는 것이고 빛을 믿는 것이며, 그 빛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어둠, 저주, 절망, 좌절, 죽음의 세력을 몰아내는 방법은 철학이나 논리가 아니고 학문이나 돈도 아니며, 명예나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빛만이 그 세력들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빛이 임하면 어둡고 암울하던 영혼은 생기가 돌고 신선해집니다.
빛이 있는 동안 어둠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추우면 온기 곁으로 가면 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됩니다. 배고픈 사람이 제아무리 ‘배고픈 귀신아, 물러가라’고 외치더라도 배고픔은 여전합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외롭다고 하면서 사람 만나기를 거부한 채 비판만 일삼고 있다면 더욱 외로워집니다. 제가 보기에 외로움은 본인 스스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다며 모두 쫓아버린다면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 못합니다. 빛을 비추면 어둠은 즉시 사라집니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과 사탄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성령과 귀신도 공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도전하십니다. 빛이 있는 도안 그 빛을 믿으며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에 붙잡히지 않고 그 빛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4) 불신앙을 버리고 빛의 자녀로
넷째, 우리가 빛 안으로 들어와 살면 빛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입니다. 어둠의 자녀는 카인의 후예입니다. 그들은 착하게 살고 싶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부정, 비판, 음란, 거짓 등 어둠의 세력이 독버섯처럼 계속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저주, 죽음, 어둠의 세력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는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일꾼이 됩니다. 상상도 못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지만 불신앙 때문에 듣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불신앙이란 단순히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현상입니다. 불신앙의 깊은 곳에 어둠의 영이 있습니다. 기적이나 표징을 보더라도 “그래도 안 믿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의 깊은 곳에 오만과 교만이 있습니다.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을 뛰어넘는 교만이 불신앙입니다. 단지 논리에 맞지 않고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어둠의 영이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해 ‘비합리적이다, 비논리적이다, 비상식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방어를 위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영혼 깊은 곳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불신앙의 영이 있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아페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12,37)
36절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을 떠나 몸을 숨기셨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공적 활동은 끝이 난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오십니다. 이것은 공적 활동이 아니라, 열두 제자들을 불러놓고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마음에 불신앙이 있다면 그 어둠의 영이 깨어지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불신앙은 이성이나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오만, 교만, 거짓 등의 문제입니다. 이를 성령의 칼로 잘라내고, 성령의 불길로 태워 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 빛의 아들이고 세상을 밝히는 축복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