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들꽃의 식구들께!
월요일에 시작하려던 일정은, 일이 생겨 화요일 아침 8시 40분 동대구행 고속버스를 타고서야 시작되었습니다.
대구 수성못 근처에서 대학 동기내외가 준비해준 경양식으로 배를 채우고 달성군의 가창댐 갤러리 커피숍에서
지난 25년 간 못 나눈 대화의 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산세가 정말 예쁜 가창 수원지 일대 였습니다.
모두들 인내하며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아픔과 기쁨을 교차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특히 목양의 길이라는 생각을 가진 시간이었습니다.
안개비가 보슬비로 바뀌고, 또 안개비로 바뀌기를 반복하는 밤 이어서인지 만남의 시간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여관방에서 하루를 보낸 후 꾸물한 날씨를 배낭에 담고, 소싸움의 고장, 감이 천지인 청도로 향했습니다.
청도에서 갈만한 곳을 청하니 운문사를 권합니다. 귀가 얇은 탓도 있겠지만 몸은 어느새 운문사로 향합니다.
오~ 환따스틱! 가는 길이 환상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감나무와 너무도 잘 정돈된 감밭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간간이 감나무로 둘러싸인 마을과 집들은 가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도 남을 정도로 찬란합니다.
몇 번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은 올 가을, 꼭 교회식구들과 다시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걸으며 나지막히 김준태의 시에 유종화가 곡을 붙인 '감꽃'을 불러봅니다.
마침내 운문사에 닿았습니다. 입장료를 받는 것이 기분을 상하게 했지만 산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런 기분은 그만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처진 소나무'라고 명패를 단 웅장하고도 단아한 모습의 소나무가 정중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산사도 그동안 봐온 것과는 달리 요사채들이 정방형의 얼굴을 한채 단정하게 서 있고, 조경된 각양의 나무들은 1500년 전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절을 지었는지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비구니들의 공부도량이기도 한 운문사는 여인의 젓가슴 같은 산들에 둘러싸여 더욱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을 되짚어 이번에는 와인터널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905년에 세워진 기차터널을 지금은 감으로 만든 와인을 정정하는 셀러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방송된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지이기도 한 그곳은 한번 쯤 들러볼만한 곳입니다.
와인터널 입구에는 감을 말린 것들과 감 식초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시식을 권합니다. 모든 아주머니들이 내민 감 말랭이를 먹으니 그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합니다.
1km나 되는 와인터널의 시식코너에서 생전 처음 감으로 만든 와인을 마셔보았습니다. 감의 탄닌 성분 때문인지 떫은 맛이 강했고 독특했습니다. 4종의 와인이 생산 된다는데 2종만 맛을 보여주더군요(나머지는 값이 비쌈-8만 6천원) 재정상 살 수는 없고 느낌만 전하니 이해바랍니다.
와인터널을 나와 쌩쌩 달리는 차들을 향해 쌕시한 포즈로 손을 들기를 수 차례, 드디어 차 한 대가 멎었습니다. 남녀가 탄 차 인지라 조신하게 앉아서 가는데 친절하게도 청도역에 내려주면서, 밀양을 가려면 버스 보다는 기차가 싸고, 빠르고, 편하다는 정보도 줍니다. 너무 고마워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주려고 가져간 작은 선물을 건넸습니다.
정말 오랬만에 기차를 탔습니다. 17~8분 후에 밀양에 도착해서 관광 안내소에 들어가 정보를 얻어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조선 3대 누각(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 중의 하나라는 영남루에 올라 밀양을 한 눈에 내려다 보았습니다. 마침 '아랑대축제'가 열려서 밀양은 후끈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번 아랑제의 아랑 아가씨로 뽑힌 진과 정을 만나 안내를 받은 것입니다. 게다가 관광 안내소에서 만난 아가씨도 전에 아랑아까씨였다는 겁니다. 역시 미남에게는 미녀가 따르는가 봅니다.
매고 간 배낭이 무거워 배낭을 매고는 많이 걸을 수가 없어서 숙소를 먼저 잡고자 여관에 들어왔는데 지금 이 글을 올리느라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도 고프고 출발하기 전에 오른손 엄지 손톱을 다쳤는데, 그것이 아파 조금 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온 탓에 영 컨디션이 제로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홀쭉합니다.
그만 적고 나가서 밥을 먹어야 겠습니다. 곁에 들꽃식구들이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아쉽습니다. 밥 먹고 밀양 천변에 나가 아랑제를 감상해야 겠습니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 부산 사상쪽으로 가서 거제를 거쳐 1박할까 합니다.
내일도 글 올리겠습니다. 많이 회복해서 여러분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레치얌! 꼭꼭
첫댓글 목사님~, 안다치게 조심~, 또 조심 그리고 교인들 생각 마시고 목사님 자신만 생각하고 사랑하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슴다. 많은 추억들 온몸에 담아오셔서, 들꽃 뜨락에서 떨어지는 꽃비를 맞으며 저희 들꽃들에게 맘껏 풀어주시길......, 행복한 기대 쪼끔 해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