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속죄소(시은좌) Atonement Cover, Mercy Seat
출애굽기 25:17-22
17.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지성소에 들어가면 언약궤와 그 위에 속죄소만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속죄소라는 말의 '속'은 빚을 갚기 위해 바치는 어떤 댓가를 말합니다. 이 속죄소를 '시은좌'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The Mercy Seat, Atonement Cover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카포레트(כַּפֹּרֶת)'를 번역한 말로 '뚜껑' 또는 '덮개'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또 헬라어로는 '헬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라는 말로 '화목제물', '속죄', '화해', '달래기'(propitiation)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뜻을 갖고있는 속죄소가 언약궤 위에 놓여져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막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은 지성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놓여있는 속죄소입니다. 속죄소의 '소'는 '장소'를 말합니다. 즉 속죄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속죄하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그곳은 언약궤가 놓여져있는 곳이며, 1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동물의 피를 갖고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속죄소는 언약궤의 뚜껑(cover)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언약궤의 덮개를 속죄소라고 합니다. 속죄소 위에는 두 그룹(천사)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그 그룹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고 22절에서 말씀합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속죄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속죄소에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희생의 피를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회개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상한 심령을 갖고있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만나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희생 제물의 피를 들고 속죄소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려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속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피'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동물의 피를 갖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뿌렸습니다. 레위기 16장을 보면 그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16장14절부터 보면 다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피로써 속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찌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피로써 속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므로 대제사장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그곳에 아무 때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엄히 금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라도 그곳에는 1년에 한 번만 대속죄일인 7월10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고, 아무 때나 들어가면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10장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않고 자기들 뜻대로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서 여호와 앞에 분향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신 다음에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둘째로 죽지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10장9-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3절에서 말씀하신 뒤에 이번에는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무언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에만 그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구약시대에 살고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1대1로 절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모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직접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언제든지 맘에 들지 않으면 끊어버릴 수 있는 애인이나 친구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너무나도 남발합니다. 그러다가도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해 도저히 할 수 없는 불평과 더러운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러면서도 곧장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용감하게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8장11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면 금방 회개할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금방 회개하지 않고 또 그 죄를 반복하지 않습니까? 즉시 벌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참으시고 기다려주시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보지 않으시고 모르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대제사장이 속죄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세밀한 준비를 해야합니다. 레위기 16장을 보면, 3절부터 대제사장인 아론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예물을 준비해야 됩니다.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백성에 자신을 포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백성의 죄는 백성의 죄이며, 대제사장의 죄는 개인적으로 속죄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을 위하여 수송아지와 숫양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로 몸을 씻은 뒤에 세마포로 만든 흰 옷을 입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의 죄를 위하여 숫염소 둘과 숫양 하나를 또 준비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속죄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띠도 세마포로 만들어진 것을 해야 했으며, 머리에는 세마포로 만든 관을 써야 했습니다. 평소에는 12가지 보석이 달려있는 매우 화려한 에봇을 입고있지만, 속죄일만큼은 아무 색이 없는 흰 색의 세마포 옷을 입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자는 감히 하나님 앞에 화려한 차림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최대한으로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석고대죄'라는 것이 있어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며 죄를 용서해줄 때까지 앉아있는 행위가 있는데, 이때에도 평소에 입던 색깔이 있는 옷을 입지 않고, 흰 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또한 죄를 지었을 때에 왕궁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왕궁에서 입던 화려한 옷을 벗고 흰 옷을 입고 쫓겨났습니다. 이렇게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대로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누구에게 잘못해서 그에게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싫어하는 옷을 입고 그 사람이 싫어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최대한 그가 좋아하는 옷차림을 하고 그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듣기 원하는 말을 골라서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옷차림과 자세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제사장이 우리 대신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자유롭다보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을 갖추지 않고, 우리 멋대로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만 합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의 상황이 제대로 갖출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갖출 수 있는대도 불구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우리의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구약시대 같으면 그 자리에서 죽음입니다!!!
로마서 6장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마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삯(댓가)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파'였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위하여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어린양을 죽여서 그 피로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1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위하여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어린양을 죽여서 그 피로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1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어린 양의 피를 볼 때에 그 죄를 보지 않고 넘어가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죽을 죄인이라도 어린 양의 피 때문에 그것을 덮어주시고 구원해주신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3장25절을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은 '속죄소'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지은 죄를 간과하심"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간과하심"(the remission of the sins)이라는 말은 '유월절'의 '유월' 즉 pass over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속죄소에서 속죄제물로 바쳐졌던 소나 양의 피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오셔서 그분의 피를 뿌림으로 이스라엘 집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 것처럼, 우리의 죄를 보지도 않고 넘어가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속죄소가 뚜껑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는 우리 자신만이 압니다. 다른 이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우리 속에 깊이 감추어진 죄가 해결받지 않고는 주 안에서 자유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휘장 안에 있는 속죄소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만나서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그저 덮어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무얼 망설이십니까? 왜 주저하십니까? 그냥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과거에 했던 것들을 부끄럽지만 말하기만 하면 되면데,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자유함과 죄책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진리 안에서의 자유함이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유로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죄책감 속에 빠져서 스스로 결박당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기를 원한다면 지금 즉시로 속죄소 앞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입을 열어 고백하십시오. 분명히 그곳에서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맛보게 될 것이며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용서받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를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여러분의 모든 상처가 아물고 회복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김 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