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영신적인
현실이다
(연중 제2주일 2024.1,14)
1사무 3:3-10, 19; 1코린 6:13-15, 17-20; 요한 1:35-42
우리는 성(性)이 포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쇼 든,
광고 든, 영화 든, 인터넷이든,
소설이든, 제작자들은 성적 주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성적인 주제는 인간 사회에서
항상 그래왔다고 생각하며,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성적인
주제에는 그리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날 미디어의 보편성
때문에, 현대 문화는 아마도
과거보다 더 성적 소재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산아 제한과 낙태는
아이를 가져야 하는 책임 문제로부터
성을 분리시켜 놓아버렸습니다.
성은 현대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의 오락의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60년대와 그 후
수십 년 동안 유행화 되었던
소위 성적 자유는 오늘 날의
부모와 그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부모의 불성실, 이혼,
혹은 일반적인 무책임으로 인해
가정 생활의 안전이 훼손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요즘은
한 가정에 방탕한 아들이나 딸이
아니라, 방탕한 부모나 삼촌이나
고모가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런 배경에서 생각해 볼 때,
바오로 성인께서 코린토의 교인들에게
보내신 서한인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들은 말씀
- 즉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 이제는 사라져버린 세상으로부터의
메시지인, 매우 구식의 메시지로
들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고린토라는 지역 그 자체가
그 당시의 고대 세계에서 모든
종류의 성적인 부도덕으로 만연한
사회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코린토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두고 그리스 말의 속어
코린티아제스타이 korinthiazesthai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 이 단어의 실질적인 의미는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잠을 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상황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우리의 현대적인 경험의 맥락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을 위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성에 대한 억제되지 않은 태도에
적어도 한 가지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즉, 그 한 가지 좋은 결과라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죄의 실체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꽤 최근까지 만 해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성범죄가 가장 나쁜
종류의 범죄라는 인상을 받고
있는 듯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 인종
차별적이고, 정직하지 않거나,
동정심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그러한 면이 성범죄와
배교해서 아주 사소한 과오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날의 사람들은 사랑과 연민이
가장 높은 그리스도교 율법이라는
것을 더욱 더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성행위가 아무리
적절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러한
최고의 율법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들은
성이 단순한 동물의 활동 그 이상의
것으로 간주되려면, 성이라는 것은
인간 관계와 친밀감을 찾는
인간의 맥락 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놓고
있습니다.
성이라는 것은 인간 사이의
무엇인가 입니다. 따라서 성은
인간적인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즉, 성이라는 것은 의사소통의
한 가지 형태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성에 관한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행위가 됩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관계에 대한 하나의
갈망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인간관계는
단순히 표면적인 관계에 그치지 않는
인간관계입니다.
즉 친밀감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밀감”
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문화에서
그 품위가 땅에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성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을 표현할 때 “그 사람들은
친밀했다”는 말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친밀하다는 말의 뜻은
진정한 의미로 그런 뜻이 아닙니다.
친밀함/친밀성은 근본적으로 원래
하나의 영신적인 현실입니다.
우리는 두 사람이 그들의 희로애락,
희망과 실망, 즐거움과 고통,
성공과 실패를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친밀한 관계를 가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친밀감이라는 말은 자신을
더 깊고 깊은 수준에서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친밀감은 그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밀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친밀감을
가진다는 것은 특히 남자들에게
자주 문제가 되는 부분입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다른 인간과
감정을 공유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어딘가에서 남자들이 가장
자주 표현하는 검정은 분노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 남자들은 분노 외에 다른 감정들은
내면에 꽁꽁 눌러 숨겨 놓는 경향이
심합니다.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은 남자에 대한
메시지는 많은 남자들에게
심란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남자들은, 소위 “진짜” 남자들은
문화적인 영향으로 항상 통제력을
가져야 하고, 어떤 약한 모습도
절대로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고
믿도록 사회화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혹은 슬프거나, 무섭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 또는 실패한
것처럼 느끼면 절대로 그런 느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에 대한 이와 같이 황당한 신화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인간성의 많은 부분을
억압해야 합니다.
남자들은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친밀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관계는 피상적일 뿐일
것입니다.
그런 데다가, 대중 문화는 남자들에게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자주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관계는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게임이 되거나, 외로움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일종의
아스피린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인 행위는 친밀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인간의 마음의
갈망을 결코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든 것의 장기적인 결과는
많은 남자들이 정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즉, 그런 남자들은 친구가 없거나,
결혼을 했다면 그런 남자들의 아내가
그런 사람들의 유일한 친구가
될 뿐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견고한 인간관계와
우정입니다. 그러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를
성숙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성숙하게 되는
부분에서 순결함이 대두되게 됩니다.
순결함/정숙함은 인간관계를 더 깊게
하고 더 깊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기 수양입니다. 순결함은
친밀감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는
인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한 반면에, 성범죄는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친밀감이 형성될
수 있도록 규율 된 행동 양식을
실천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성관계를 통해서
친밀감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단순한 성관계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며, 용서해주고 배려해주며,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결코 대신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노는 것을
막으려는 청교도적인 계획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성에 대한 가르침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관계를 지속할
사람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에
근거를 둔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가
교회의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의 기초가 되는 가치들 중의
일부를 나타냅니다.
첫댓글 신부님 감사합니다
은혜 듬뿍 받고 왔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기도중에 신부님도 기억하겠습니다.
행복한 나날되십시요
신부님 너무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늘건강하고
행복 하세요
경치가 너무좋아요
너 무 멋져요~~
눈 내린 문경 엠마오 기쁨의집!!
감사드림니다
신부님!!
설경이 너무 멋져서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건강하신 신부님 늘 뵈어서 넘 감사합니다!!
올해도 주님과 행복한 시간 되시길 빕니다!!!
감사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병원에 입원했어요 검사중입니다
신부님 세요건강하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동)
고맙습니다
아멘🙏
신부님 유익한글 잘봅니다😍
힘들어요~ 친밀하고쉽지않아요 ~ㅎᆢ슬퍼요힘들어요 마음이아파요~^^상처받기보다
혼자를 택했어요~^^
관계든성이는 머든 책임질수있는범위에서 누릴수있는것이라봐요~~ 다해줄자신이 없어다가가지도 못하고 다가오는사람에게는 하염없이내어줄수없는 인간이더라고요~^^ 적당한거리에서 앞을보고 가는관계가 좋아요~^^
언제나행복한 피정의집 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찬미예수님!
아멘. 🙏
신부님늘감사합니다 늘주님의사랑이가득하시길기도드립니다
1월13일 묵주20단드림
신부님!
늘 좋은글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날씨에
건강조심하세요.🙏❤👍
아멘.아멘!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1월13일]
📖말씀: 마르코 2,17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묵상
신앙생활은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용기를 갖고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회개의 삶입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회개의 삶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것에 그치면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습니다.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올바른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잘못된 인식, 환경, 습관등이 많습니다. 그 장애를 스스로 발견하고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재복음화를 위한 첩경입니다.
🕯기도
내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 제가 어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부르심에 눈 뜨고 귀 열어 부르심에 응답하여 의탁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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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복음화를 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
이번 말씀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써 큰
가르침이 되었고 교육의 훌륭한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