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가난은 가족(家)이 힘들어한대서(難) 가난이 아니고, 몹시 힘들고 어렵다는 뜻의 한자어 간난(艱難)에서 종성 'ㄴ'이 동음 축약되어 나온 단어이다. 그러나 보통의 가난(艱難)은 앞서 말한 가난(家難) 또한 동반한다. 내가 3살 때 배운 한글이 30년 동안 업(up)그레이드 되어 지금의 업(業)이 되기까지, 가족들은 가난했지만 난 난(難)을 느껴본 적 없이 살았다. 색의 단계(grade)를 보여주는 그라데이션(gradation)처럼 난 아래쪽 가족들의 무채색 계단을 밟아 하얗게 빛나는 지금의 정점에 이르렀다.
두번째 문단에서 난 이미 수천억 자산가가 되었고, 가족들의 가난 또한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가족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등식이 성립하려면 더한 것이 있을 경우 '=' 너머에는 빼야 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소리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던 가족을 잃고 가장 큰 어려움(難)을 만났다. 아니, 만났었다. 지금은 옛날 일이 되어 고난(古難)이라 우스갯소리로 할 정도니 말이다. 난 수천조 자산가다.
한국사회에서 가족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4명 중 1명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엄마 아빠", "부모님" 중 한 분이 계시지 않는다. 각종 미디어에서 저 단어들을 쓸 때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괜스레 그 자식들은 뜨끔한다. 그리곤 계시거나 계시지 않는 한 분에게 괜한 억울함과 화를 갖곤 한다. 그 화는 어릴 땐 나타나고, 어른일 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나타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감정을 숨기는 방법을 배워간다. 다른 식으로도 배울 수 있었지만, 이 아이들은 가정에서 가장 먼저 배웠다. 그리곤 이 아이들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계획적인 생각과 생활 방식을 좋아하게 된다. 비논리적이고 비체계적이며 비계획적이라서 내게 슬픔 분노 억울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학습시킨 부모와는 달리 내게 확실한 답을 쥐어준다. 그리고 그 답이 맞을 경우 학교나 사회에서 상장도 주고 장학금도 주고 직장도 준다. 나 또한 셋 모두를 보상으로 받았다.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 무렵엔 보험 방문 판매가 유행이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두꺼운 보험 약관과 보험사 소개 앨범이 있었는데, 난 거기에 내 한글들로 탄 상장을 끼워넣었다. 그런 상장 앨범이 우리 집엔 5개나 된다. 아니, 내 집엔.
내 중학교 졸업식 가는 차 안에선 코스닥이 2834.40을 돌파했다는 라디오가 들렸다. 28과 34와 40을 모두 더하면 1002인데, 10월 02일이 내 생일이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한다. 2020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닷컴버블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이 생기고, 쇼 곱하기 쇼는 쇼²이 아닌 쇼라는 비논리적 마케팅에 열분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내가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 저런 마케팅을 결재하고 승인한 팀장 과장 부장 대갈통을 으깨버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입시 공부를 했다.
대학에 들어오니 휴대폰은 더 스마트해졌고 한글 자판이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손가락의 시대에서 두 손가락의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엄지만으로! 한글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좌우로 넘기며 읽히지 않고 상하로 오르내리며 읽힌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일찍 깨달았다. 난 항상 얼리어답터(earlyadopter)였기 때문이다. 애국자이기도 해서 항상 삼성 엘지 스마트폰만 썼다.
2001년, 한글 모음의 형성 원리인 천(天) 지(地) 인(人)을 활용해서 한 손가락의 시대를 개척하고자 하였다. 한글 모음의 형성 원리인 천(天) 지(地) 인(人)을 활용해서 한 손가락의 시대를 개척하고자 하여 수천만 자산가가 되었다. 2006년엔 한국의 첫 아이폰 사용자가 되며, 상하로 스와이프(swipe)하며 읽을 수 있는 전자책 시스템 특허를 출원했다. 평소 책과 사회 구조에 관심이 많던 나는, 책이 갖는 감상법과 그 구조가 스마트폰에 맞지 않아 불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지인 키보드와 상하 스와이프 전차책 특허 덕분에 난 수천만 자산가가 되었다.
이런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제안한다며 당시에 한국에는 흔치 않았던 스타트업 개념의 작은 팀의 제안서가 전자메일로 왔다. 당신의 특허를 우리팀이 사업계획서를 써 미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면 훨씬 더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대신에 스타트업 팀 리더인 씹슨(씹-son)에게 특허 명의를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화 난다. 미국 정부에서 하는 것인 만큼 서류적인 형식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어쩌다 시대를 빠르게 타 미국에 특허까지 가져 수천만 자산가가 되긴 했어도, 미국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사업 요강과 디테일까지는 한국의 한글과 김치를 사랑하는 새내긔가 알지는 못했다. 이 때 진정한 내 인생 첫 번째 고난(苦難)을 겪기 시작한다.
빡이 쳤다. 사회의 쓴맛을 이제 21살 된 때에 느끼니 이 빡을 우리 민족 모두와 공유하고 미국-척결, 부시-아웃, 자주국방론자가 되고 싶어졌다.(*역자 : 자주국방론자의 자주는 purple이 아니다.) <이런 세종대왕님 만세!같으니라고>가 등단한 것이 바로 이 때였다. 첫 번째 공모전에선 제목에 쌍욕이 들어가있어서 떨어진 듯하다. 한국은 유교사회라는 걸 미국물에 취해 뒤늦게 깨달은 까닭이다.
아, 미국 특허로 미국 돈으로 실제로 미국 물을 마신 적이 있었다. 이게 참 웃기고도 중요한 사건(happening)인데, 내 생일 때 미국인 친구들과 마셨던 네슬레 퓨어라이프의 청량감에 감탄하여 과거의 행복(happy)과 아침의 영광(morning-glory)이 불현듯 파바밧 떠오른 적이 있었다. 조금 더 풀어서 쓰자면,
마지막으로 중학교를 뛰쳐나오던 그날의 기쁨과 화려한 졸업식 꽃다발, 코스닥이 한국 사상 최고점을 찍으며 떠오른 아침의 햇살, 28+34+40=내 생일, 그리고 그날 꽃집에서 생일파티에 쓸 생화를 고르며 맡았던 향기, 생일파티 직전 긴장해서 화장실에서 응아하며 본 네이버 뉴스 기사, 앞으로의 미국의 패권과 경제전망. 이 다섯 가지를 동시에 떠올린 것이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난 다음 날 아침, 시들해진 튤립과 빈 컵라면을 버릴 때 맡은 서양과 동양의 냄새 하모니 속에서 그 다섯 가지를 실크로드처럼 단번에 연결했다. 0.2초만의 일이었다. 뇌의 시냅스가 이어질 때 촉각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 그 때와 비슷할 것이다. 아무튼 그 길로 난 전 재산을 한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와 무역 전망, 내 다섯 가지 경험들을 토대로 가장 유망한 네슬레 코리아를 인수했다. 한 기업의 회장님이 되었다. 그렇게 난 수천조 자산가가 되었다.
첫댓글 글 굉장히 잘 쓰신 것 같습니다 서너번 넘게 읽고 있어요
언어유희, 수기형식을 통해 부분적 보이는 착란, 사회 풍자와 비현실적 전개 등이 느껴지는데 의도하신대로 제가 읽은게 맞나요?
이런 글에서 놓치기 쉬운 서사성 인과성도 어느 정도 챙기신 것 같습니다
혹시 영향 받으신거면 어떤 그림 음악이나 책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유...... 이상헌 동인님한테 쩰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벌써 받아부리다니 감사할 따람입니다! 정확히 읽었어!
1. 초반에 "가난, 고난, 업, 그라데이션, 그레이드"의 한자어와 영어를 달리 하여 언어유희를 주며, 첫머리의 흐름이 이야기의 중간중간, 마지막까지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두번째 문단에서"도 중의적 의미였어. 실제로 글의 두번째 문단이면서 화자의 두번째 문단 공모전 당선작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ㅎㅎ
그래서 화자는 처음 말했듯 "수천만, 수천억, 수천조 자산가"로 점점 단계를 밟아가지.
2. 내가 한국사회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역설적으로 화자는 애국자로 설정하여 "한국, 사회, 코리아" 같은 워딩을 틈틈히 썼어.
3. 누가 봐도 소설이다 싶은 글을 쓰고 싶었어! 그래서 비현실적 전개로 가되, 사실에 기반한 것들을 기초로 두고 싶었으 ㅎㅎ "코스닥 지수, 닷컴버블, 2006년 아이폰 발표, 천지인 키보드"가 그러한 펙트 장치들이야!
4. 부분적 착란은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는 수천조 자산가의 수필 내지 자서전 느낌을 상상하며 써서 그래! 중간에 "2020년대 사람들"이란 대목에서 알 수 있음!
미술가로 살았지만 지금은 창업을 하고 있고, 문학도 겸하는 꽃집 아들의 인생을 요상한 상상들을 같이 넣고 스까놓으니 이런 작품이 나온 듯해! 인생에 영향을 받았따고 해야 할까 허헣..
단톡에서 추천해준 책들은 아직 구매도 못했어ㅠㅠㅠㅠ 3월달이 정부지원사업 피크라서 요즘 바쁘네... 중간고사 끝나면 말해준 책 사서 더 문학적으로도 업(業)그레이드 할 생각이야XDDD
어...시대적 배경에 대해 첨언하자면 천지인 자판은 2001년인가 처음 나왔을 겁니다. 타임머신팀에 있던 엔지니어 두 명이 삼성과 송사를 벌였고 2002년쯤 합의를 봤어요. kt show의 광고는 지금 생각해도 잘 만든 광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곱해서 자신이 나오는 수는 0과 1이어서 kt 나름으론 디지털시대를 표방하는 메세지였지만 문제는 그 병맛만 뇌리에 박혀서...광고효과로만 치면 충분히 성공했죠.
오오 그렇군요 그렇군요! 엄청 디테일하게 알고 계신데 어떻게 그런 부분까지 알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나요?? 신기해서요!
쇼 곱하기 쇼는 쇼 마케팅은 확실히 성공한 광고죠! 모든 초딩들이 다 따라하고 다녔으니까요 ㅋㅋㅋㅋㅋㅋ
@60기 정규수 특별한건 아니고 천지인 자판에 관련된 일화를 어렸을때부터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ㅋㅋ삼성이란 대기업을 상대로 사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게 예삿일이 아니어서 기사로도 다뤄졌죠
https://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530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첨부한 기사를 읽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