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 김 태영
며칠 전이 내 생일이었다. 음력으론 8월 13일 양력으로 9월 20일이다.
주민등록번호는 720813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음력 양력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가족관계 증명서나 인감증명서 어디에도 음과 양을 구분해 놓지 않는다. 그냥 생년월일 1972. 08. 13이다.
중학교 동창 모임 밴드에 등록된 생년월일도 8월 13일이다. 음력 표기를 안 해서 양력 8. 13일에 축하 메시지가 떴다. 동창들이 축하 댓글을 참 많이도 달아줬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이의제기를 했다.
‘네 생일은 양력으로 환산하면 9월 20일이니 바꾸려면 정확히 바꿔.’ 라는 것이다.
그의 제안에 내 대답은 ‘No'였다.
사실 내 생일이 진짜 8월 13일인지 아니면 다른 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또한 모르고 우리 부모님 또한 모르는 일이다.
아내와 딸과 아들 나 이렇게 넷이서 한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의 독단으로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방즈락츠 강가마라는 딸의 이름을 한국명 윤아라는 이름으로 개명할 때도, 윤호라는 아들 이름을 지을 때도 아내와 딸과 셋이서 함께 논의하고 결정했다. 딸이 내 호적에 입양되고 나서부터 아내와 딸이 매년 내 생일을 챙겨주었다.
어느 해는 9월이 되기도 했고 어느 해는 시월이 어느 해는 늦은 8월이 되기도 했다. 음력이 주는 불편함이었다.
“아빠. 생일은 왜 매년 달이 달라져요?”
딸의 물음이었다.
“음력이라서 그래.”
“그럼 아빠 생일을 어떻게 외워요?”
딸의 물음에 음력이든 양력이든 어느 한 날짜로 고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딸이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음력인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하기 위해 호적등초본을 떼어 꼼꼼히 살피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출생일 1972년 8월 13일, 출생 신고일 1975년....
뭐, 뭐.... 뭐란 말인가?
초등학교 입학식 날 내 이름이 김 삼식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받았던 충격이었다.
여덟 살 되던 해 어머니 아버지 없이 혼자 입학식을 치렀다. 학교까지 가는 건 형을 따라 몇 번 가 본 적이 있어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때는 살기가 어려워서였는지 초등생(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는 부모님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고 학생이 대답하면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학생 하나하나 이름이 불려지고 불려진 학생들은 왼쪽 가슴에 자랑스레 이름표를 붙였다. 모든 학생들이 다 불리고 이름표를 받았지만 정작 내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모두가 이름표를 받고 결국 나 혼자만 이름표를 받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이 반 배정을 받고 교실에 모두 들어간 뒤에도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김 삼식 학생, 김 삼식 학생 손들어요.”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내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그 때까지 내가 부모님이나 동에 형으로부터 불린 이름은 싯째였다.
“야 김 싯째.”
“싯째야.”
언제나 그렇게 불렸으므로 당연지사 재 이름을 김 싯째로 알고 있었다.
혼자 남은 선생님이 내 생년월일을 물어 보았고 나는 대답했다.
“너 혼자 남았네, 이름표도 하나 남았고 생년월일도 같으니 네 이름은 김 삼식이야.”
“네? 제 이름은 김 삼식이 아니라 김 싯째인데요.”
“싯째라는 이름은 없어. 네가 셋째 아들이라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나 보네, 너 셋째 아들이지?”
“네.”
“싯째라는 한자는 없어. 네 이름은 김 삼식이 맞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알아 ,알았지?”
여덟 살 인생 처음 맛 본 인생의 쓴 맛이었다. 어쨌든 나는 내 이름이 김 삼식이란 걸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그날의 충격은 지천명의 나이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출생신고 날짜를 확인하고 나서는 음인지 양인지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생일상이었다.
음력 8월 13일은 추석 이틀 전이다. 명절 준비로 내 생일은 까맣게 잊고 지나갔다.
집을 나오고 나 스스로 가정을 꾸리는 30여 년 동안 단 한번의 생일상도 받아보지 못했다. 생일 선물은커녕, 그 흔한 새일 축하 메시지조차 받질 못했다.
음력 8월 13일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양력으로 환산해서 9월 20일을 생일 기념일로 정하면 모든 서류와 엇박자가 난다. 확실치도 않은 생일을 일부러 환산해서 관공서 서류와 엇박자를 낼 이유도 없었다.
아내와 딸과 셋이 상의해서 양력 8월 13일을 공식적인 생일로 선포한 지 7년이 지났다.
아내가 케이크를 준비하고 딸이 아빠의 생일 선물로 손 선풍기를 사 들고 왔다. 아들은 모아둔 용돈을 꺼내 점심때 만 난거 사 드시라며 오천 원을 내민다.
아내와 딸과 아들이 기억해 주는 생일!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첫댓글 김 싯째 아니 김 삼식님의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인생 후반전이 확 피어나기 바래요. 이미 그러고 있는듯 하지지만요.
ㅎㅎ 고맙습니다
지났지만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혹시 김 싯째 이름이 세째라서 그렇게 부른게 아니라
하도 몸을 안 씻어서 좀 씻어라고
김 싯째라고 부른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ㅎㅎ
김 씻째는 그렇지만
난 좀 곤란하겠다
씻째
안 씻째
빙고~ㅎㅎ
@안준철 그러게요 아예 안씻으면 곤란한데요 ^^
그러고 보니 전 생일 선물 좀 받아 보긴 했네요 ㅋㅋ 20살 볼링장 생활 할 적 이쁜 누나가 너 생일 때 뭐 받고 싶어? 누나 시집 사줘..... 그래서 그 누나에게 시집 한 권 받아 봤고.....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스텐드 바 일 할 때 그날 저녁 절친한 형이 케익 들고 와서는 축하 해줬는데....... 아 그립다 그리워 벌써 20년이 넘어 가느 ㄴ 구나 나도 인생 후반 다시 재미나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지금도 잘 놀고 있잖아~
@우리윤아 어째 칭찬인지 나무라는 건지 헷갈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