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꿈(송진권)/강민숙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들썩여 잠을 잘 수가 없네
뿔에 칡꽃이며 참나리 원추리까지 꽂은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자귀나무처럼 이파리 오므리고
호박꽃처럼 문 닫고 잘 수가 없네
아이구 그래도 제집이라고 찾아왔구나
엄마는 부엌에서 나와 소를 어루만지고
아버지는 말없이 싸리비로 소 잔등을 쓰다듬다가
콩깍지며 등겨 듬뿍 넣고 쇠죽을 끓이시지
소가 우리 집을 찾아온 밤에는
밤새 외양간에 불이 켜지고
마당도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지고
그래도 제집이라고 왔는데 하룻밤 재워 보내야 한다고 얼렁 그 집에 소 여기 왔다고 소리 하라고 기별 보내고
웃말 점보네 집에 판 소가 제집 찾아온 밤엔
죽은 어머니 아버지까지 모시고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호랑나비 가득 얹은 산초나무같이
흔들려서 잘 수가 없네
잉어를 잡아다 넣어둔 항아리처럼
일렁거려 잘 수가 없네
<해설>
어렸을 적에 동화 책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읽고 나서 죽으면 절대로 ‘소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씩이나 했던 기억이 머리에 스쳐갑니다. 하루 종일 쟁기를 끌거나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소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묵묵히 일하는 소야 말로 ‘성자(聖者)’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은 송아지가 태어나면 온 집안의 경사이고, 오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소가 팔리는 날이면 집안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서 아버지는 외양간으로 가 헛기침을 연신해댔습니다. 이 시도 “웃말 점보네 집에 판 소가 제집 찾아온 밤엔/ 죽은 어머니 아버지까지 모시고/ 마음이 들썩여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합니다. 뿔에 칡꽃이며 참나리 원추리까지 꽂은 소”가 시인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소가 우리 집을 찾아온 밤에는/ 밤새 외양간에 불이 켜지고/ 마당도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지고”집안이 축제 분위기 같지만 사실은 함께 살았던 식구 같은 소를 팔아 서운하고 허전하고 어둔 마음을 환하게 밝혔을 겁니다.
이제 봄이 오면 제방 둑에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소가 낮은 울음 우는 풍경이 펼쳐지겠지요. 한때 재산목록 1호였던 소를 보러 가고 싶습니다. 맑은 눈망울 지닌 성자 같은 모습을.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
첫댓글 어울렁 더울렁 ? 그러한 공동체가
있었죠.그 영화 감동으로 봤습니다 .. 농촌분들의
향수와 도회지 사람의 소풍도 사라져가는 논둑길에서 본
황소를 언제 봤던가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