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을 10년 동안 바라보며 살아온 들꽃의 식구들에게!
엊저녁(2일)은 시장통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텔레비젼에도 나왔다는 80년 전통의 국밥집입니다.
손님은 달랑 나혼자, 조금 후에 술이 취한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 오셔서 막걸리 한 잔을 시키시고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횡설수설 하십니다. 밥은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밥을 먹고는 영남루 앞에서 시민단체의 촛불집회에 잠깐 기웃거리다가 아리랑 대축제 구경을 했습니다.
일제 때 의열단 단장이었던 민족 투사 김원봉 선생의 투쟁을 그린 창작뮤지컬이 올랐습니다.
12만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에 연예인촌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창작극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표충사행 버스에 올라 약 40분을 달려 산사 입구에 닿았습니다. 같은 버스에 탄 내 또래의
아주머니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곳을 찾는다는 그분은 절에서 봉사도 하고, 공양 수발도 들고, 명상도 하기 위해 절을 찾는다며, 너무 마음이 편하고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절 찾기를 권한다고 하시는데, 일견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정말 좋아서 남에게도 권하는 것이 진정 신앙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분 안내로 배낭을 맡긴 후, 난 산을 올랐습니다. 영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재약산입니다. 사자평이 유명하다는데 아침도 거르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금강폭포 코스를 잡았습니다.
산을 평가하는 기준에 물, 나무, 바위, 동물, 계곡 등이 있다는데 재약산은 이 모든 것을 갖춘 듯해 보였습니다.
금강폭포 곁에 자리한 자그마한 암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기도도량을 쌓을 듯하게 신비롭습니다.
폭포 밑에 앉아 한 동안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우들의 이름을 한 순배 하고 났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점심 공양에 맞춰 내려 오라고 한 아주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11시 40분 쯤 공양실에 들렀습니다.
일반인들은 없고, 보살님들과 스님들만 계십니다. 일상복을 입은 처사가 들어서니 모두들 의아한 듯 나를 쳐다봅니다.
아주머니와 눈 인사를 건네고 담담하게 밥을 퍼 그릇에 담고, 나물과 오이무침, 김치, 방앗잎, 부침개,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밥을 비비고, 콩나물국과 함께 맛나게 먹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아주머니가 나가랍니다.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에게 주려고 가져간 작은 선물과 명함을 건네며 "인연이 닿으면 만날 것 같아 드립니다." 했더니 공양실 다른 보살님들이 "아니, 목사님 이시네! 목사님이 절집 공양간에 와서 공양을 다하시다니..." 라며 님들끼리 귀엣말을 하십니다. 세상이 이상한지 종교가 이상한지, 언제부터 다른 종교가 높은 벽이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산하는 길에 보니 길 양편에 들어선 팬션들이 아름답습니다. 아마 여름에는 발디딜 틈 없이 붐비리라 생각됩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내려와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자갈치 시장으로 가서, 선창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추억이 있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거제대교를 넘어 거제도로 갔습니다.
후배 목사님의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배가 남산 만한 새댁이 자신의 집이 전주 송천동 이라며 반가워 합니다. 남편을 따라 조선소가 있는 거제까지 왔다고 합니다.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니 이 또한 기쁨입니다.
몸이 너무 피곤합니다. 하루종일 걷고, 차를 탔습니다.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은 손톱이 주는 불편도 한 몫합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곧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서 광주나 대전으로 돌아가야 할까봅니다. 그나마 광주행은 하루 두 차례 뿐입니다.
참, 부산 사상역 입구에서 성폭력 시민여성단체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다가 문재인 선생을 만났습니다. 격려차 참석했다고 하더군요. 무척 바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짠했습니다.
집에 전화를 하니 아내 목소리가 잔뜩 감기에 걸린 음성입니다. 몸이 안좋다고 하는 말에 마음은 집을 향해 갑니다.
쫄랑대며 뛰어 오르는 아모르도, 카라의 엉덩이춤을 추는 하늘이도, 소녀시대의 다리 엇갈림춤을 추는 바다와 코를 킁킁 거리며 몸을 밀착해대는 망울이도 보고싶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보고싶은 것은 들꽃가족들입니다.
같이 산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움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레치얌!
첫댓글 지금쯤엔 교회에 도착하셨을 목사님께 감사에 인사 남깁니다. 좋은경험을 함저도 꼭께 나눌 수 있도록 글 남겨주셔서 상상에 나래를 펴고 잘 읽었습니다.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