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어두웠다.
시도, 꽃도, 사람들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 어둠에 익숙해진 나는 그 어둠을 다 바라보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내 시, 내 꽃, 내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한다.
어쩔 것인가 세상 한 편은 자꾸 환해지고 눈 부시고,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향하여 빛바라기로 서서 사는 것을-
몇번 사진을 찍으려고 해돋이를 보러 간 적은 있었다.
장엄하게 떠오르는 동해바다 해돋이를 사진찍기도 하고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며 백두일출을 만나기도 했다.
밤새 나종영 시인과 2년동안 술을 마시고 새벽에 화포를 찾아 얼어붙은 개펄 안에까지 걸어들어가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해맞이에 특별한 의미를 두어보지 않았다.
@2007. 백두일출-김해화
새벽에 일어나 일터에 나가고
일터 가는 길에, 또는 일을 하다가 날마다 해돋이를 만나면서 살아왔으니 새해 첫 해돋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었겠는가?
해가 뜨지 않아도 날은 밝아오고 해맞이를 하지 않아도 해가 바뀐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내 가슴은 아주 메마르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만 볼수 있다는 백두일출, 남북 작가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장엄한 해돋이 앞에서도 나는 그냥 우리 역사와 현실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을 뿐, 가슴 젖을만한 희망 하나도 지니지 못했다.
해가 갈 수록 내가 바라보는 역사는, 삶은, 캄캄한 쪽으로 깊숙하게 걸어들어만 왔다.
희망이 아니라, 투쟁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커다란 무기는 절망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삶과 눈이 너무 어두운 탓일까?
용산 학살, 노무현 자살, 김대중 서거, 지난 해 큰 슬픔으로, 절망으로, 분노로 다가왔던 큼직큼직한 일들 앞에서 나는 침묵했다.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분노했다.
춥고, 아프고, 캄캄한 내 울부짖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나는 더 캄캄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이 세상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세상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탓하지 마시라.
나뿐만 아니라, 차라리 침묵으로 절망으로 이 세상의 폭압에 맞서는 적지 않은 시인들이 있고, 그 시인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들을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당신들은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 시인이 가야할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더 캄캄해지고 더 낮아질 수도 있으리라.
이 걸음으로 살아서 지옥인들 못가겠는가?
그러나 그만 캄캄해지고 그만 낮아지기로했다.
해돋이를 보러 길을 나선 까닭이다.
@2010. 부분월식-김해화
길을 나설 때 새벽하늘에는 달이 환하고 그 한한 하늘에서는
오랑캐 한 마리가 달 한쪽을 물고 달을 삼켜버리기 위해 으르렁대고 있었다.
부분월식이라고 했다.
어디로 갈까?
불탄 향일암이 아니라도 그냥 여수 돌산 어디로 가볼까?
화양반도로 가볼까?
순천 화포?
그러다가 무작정 고흥을 향하여 달렸다.
팔영산 근처 어디 쯤 가면 해뜨는 바다에 닿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잠시 눈발이 날리더니 오랑캐를 물리치고 달이 둥근 모습을 되찾았다.
월식이 지나간 것이다.
@2010. 남열일출-김해화
팔영산 어디쯤을 찾아가는데 남열 해돋이 축제라는 플래카드가 스쳐 지나갔다.
길 가에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에 남열해수욕장을 입력하고 길 안내대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돌고돌아 찾아가 만난 남열바다-
해돋이축제가 열리는 곳은 해수욕장이었지만
나는 사람들을 피해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길 가 언덕에 차를 세웠다.
해수욕장에서는 커다란 모닥불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에 눈을 두고 있는 사이였을까? 그 전이었을까? 하여튼 달이 지고 먼동이 트고 있었다.
하늘 밝아오는 것을 가늠하여 해돋이가 더 잘 보일 곳으로 차를 옮겼다.
크고 작은 섬들이 손을 내밀면 닿을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 흩어져 집집이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섬들은 어딘가요?
해둗이를 기다리는 옆 사람에게 물었다.
아마, 여수쪽일 것입니다.
해는 아직 뜨지 않고 추웠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따뜻한 사람의 손을 잡고 싶었다.
@2010. 남열일출-김해화
@2010. 남열일출-김해화
추위 속에 오래 내어놓으면 사진기의 밧데리가 빠르게 닳아버린다.
사진기를 가슴에 품고 해돋이를 기다렸다.
섬에서 반짝이던 불빛들이 사라졌다.
저 섬에는 벌써 아침이 와버린모양이다.
수평선 위에 낮은 구름띠가 깔려 있었다.
구름띠가 찢어지면서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2010. 남열일출-김해화
@2010. 남열일출-김해화
@2010. 남열일출-김해화
사진기의 삼각대 다리가 튼튼한지 확인했다.
사진기를 얹고 렌즈를 통해 해맞이를 하면서
내가 딛고 있는 땅, 내가 딛고 일어나야 할 세상의 단단함을 확인했다.
수많은 철근을 세우면서 나는 일으켜세우는 일에 익숙해졌다.
일으켜세우는 것을 잘 알아 쓰러뜨리는 일에도 익숙하다.
나 스스로 쓰러지고 일어서는 일에도 당연히 익숙하다.
쓰러지면 캄캄하지만 일어서면 곧 환해질것이다.
해가 떠오르는 것은 해가 일어서는 것이다.
언젠가 동해 추암에서 해맞이를 할때 나는 해가 바다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오메가라고 하더라.
구름띠를 찢고 떠오르는 남열바다의 새해 첫날 아침 해는 분명히 구름을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2007. 추암일출-김해화
스스로에게 환해지기로 했다.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밝혀주지 않은 길이라면 내가 스스로 밝혀야하지 않겠는가?
길끝에 이르러 그곳에 집을 짓고 들어앉은 사람들이여.
아직 길 위에 서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대들의 집 사립문 밖에 등불 하나를 내어 달고 아침이 올때까지 끄지마시라.
그래서 밤이 조금 소란스럽고 꽃 몇송이가 꺾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세상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 아니겠는가?
@2010. 남열일출-김해화
해가 뜨고나면 세상은 순식간에 환해진다.
환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바쁘다.
나도 어서 돌아가 내 세상을 밝혀야겠다.
첫댓글 일출 직전이 가장 춥고 어두운 법이지요.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해는 어둠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시간에 잠에 빠진 사람들은 그 어둠을 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어둠 속에서 그 깊은 어둠을 본 자들까지 금세 그 어둠을 잊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밤눈이 어두웠네. 그래서 칠흑의 무서움을 잘 알지. 한 두번 겪고 나면 아마 누구라도 그 무서운 어둠을 잊고싶을 거야. 나는 살아오면서 그 어둠을 참 많이 겪었네. 밤눈 어두운 내가 터득한 어둠뚫기는 어둠을 어둠으로 봐버리는 것이었어. 언제 소주나 한잔 하세.
일출 전 여명의 남열바다에 펼쳐진 고요와 그 고요 속에 감춰진 긴장이 가슴을 질러온다. 슬프고 아름답고 새롭다...
해화씨의 어둠에 대해서 뭐라 말할 수 없네요. 그래도 '어서 돌아가 내 세상을 밝혀야겠다'는 다짐 같은 거, 아니라면 어떤 생각의 전환 같은 거, 반갑네요.
'스스로 환해지자'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올 한해 그런 현상을 위한 노력! 해야 겠어요.. 항상 누군가가 밝혀주기만을 바랬거든요... 모두들 소원하시는 것 이루는 한해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