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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요 제5 시집 평설>
따뜻한 감성의 느낌표와 개아(個我) 성찰
- 정대요 시인, 그 느림의 보행과 영혼의 울림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모던포엠』주간)
1. 존재의 시학과 창조적 의미망(網)
모름지기 우리가 직면한 삶의 현상에서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극한 대립의 갈등 구도로 치닫고 있을지라도 창조적 영혼은 위대하고 아름답기에 ‘통 큰 용서와 통섭(通涉)’을 자신의 삶을 통해 일관되게 지켜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대통령의 집념처럼 ‘몸소 꿈을 실현하지 않으면 불가능 또한 가능한 현실로 전환할 수 없다.’ 까닭에 석청(石淸) 정대요 시인이 등단 직후에 밝힌 독자와의 눈부신 언약(言約)처럼 제4 시집『한순간의 따뜻한 햇살』(홍익출판사, 2026)에 잇닿은 제5 시집『실개천이 강물 되기』(홍익출판사, 2026)의 출간은 우리 현대시문학사에서 찾아볼 수 없이 지극히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이다.
차제에 그 자신의 강한 일념으로 묶어내는 제5 시집『실개천이 강물 되기』의 편집 구성은「자서(自序)」인「감사(感謝)와 따뜻한 감성의 울림」에서 “따뜻한 감성의 시상(詩想)이 살아나 영험한 기폭제가 머릿속 가득 채워준 시적 작위(作爲)로 생명의 역동성이다. 필연적인 만남으로 엄창섭 박사와『신문예』지은경 총회장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신 탓에 이렇게 제5 시집『실개천이 강물 되기』를 세상에 내어놓게 됨을 묵언으로 응시하며 그 고마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단 118편의 시편이「목차 제1부 기적(奇籍)을 창조한 나라(30편), 제2부 비단결 같은 마음이(29편), 제3부 광대나물의 겨울나기(30편), 제4부 비슬산 봄맞이(29편), 그리고 시집 평설에서「따뜻한 감성의 느낌표와 개아(個我) 성찰」로 처리되고 있다. 모처럼 그 자신의 일관된 삶처럼 모든 인업(因業)은 끝내 소멸이 될 것임에 최소한 정신작업의 종사자라면 항상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물음(?) 앞에 그 자신을 겸허하게 놓아 보아야 한다.
또 한편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되 항시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잠언을 저마다 자신의 심장에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까닭에 불립문자인 구도 정진의 정황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꽃향내 피워내는 식물성 언어로 소통의 자유로움을 위한 지난(至難)한 몸짓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은 그 자신의 존재감 빛나는 건강한 서정성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 ‘삭막하고 건조한 겨울에 불꽃이 타오르는 듯 현란한’ 현상에서도 “하얀 꽃 푸른 열매와 연분홍 자태에서/빨간색으로 변장하는 피라칸사스는/해를 넘겨 새봄까지 자신의 화장술 자랑이다. (푸른 열매의 변장술)”도 이채롭거니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일정 시간 흑판 옆,/벽을 바라보게 하는 벌 면(免)하게 한다는/면장(免牆) 의미와 동일의 개념이다.(免面牆)”에서 그 삶의 지혜는 비중이 막중하다.
까닭에 그 자신이 몸담은 공간과 시간대에 관한 애정과 관심의 지극함도 그렇거니와 시적 질료와 시선을 열린 우주로 확장한 끝에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청옥(靑玉)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별임’을 전제한 뒤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본 외계인을 뜻한다./“우리는 지구인의 언어 중 가장 아름답고 가슴에 와닿는 그리스어를 기억한다./“코스모폴리탄(Kosmopolitan)의 의미 알려주고/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문화 이해하고/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지구인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정신이다.(외계인의 지구만평)”라는 휴머니즘적 관점은 더없이 유의미하다.
특히 평자도 오랜 날 그 나름으로 역설해왔듯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그만의 맞물림이랄까? 지역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국가관은 인용하는 예시에서 그 차별성도 그렇거니와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우리의 조국을 극찬한 “동방의 빛이 되리라.”라는 소망의 시편에 견주어 산문시 형태로 풀어쓴 시편은 신선한 감동의 충격일 따름이다.
세계 최고의 전투기 미국산 F-35와 견줄 KF-21 전투기/생산하는 지구상의 위대한 국가,/끝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스라엘의/합작 생산을 제안받은 내 조국 대한민국의 위대함이다.//
-「기적(奇籍)을 창조한 나라」에서
모처럼 ‘분열된 자아의 회복’이라는 시격(詩格)에 결속된 이 같은 대립 구조는 지극히 합리적이고도 상호보완적인 공존의 양상으로 자리하기에 시 짓기의 행위는 단순한 언희(言戱)가 아니라 후기산업사회에 처한 현대인의 뜻깊은 정신작업이다. 그렇다. 국가가 경제적 파국으로 위기에 처한 1997년 IMF 당시 ‘당혹스럽고 그 결정에 후회와 미련, 그리고 아쉬움이 머릿속에 맴도는 정황’에서 그 자신이 진정한 구국정신의 일환으로 “민족의 자긍심 지켜준 선조 생각하면 한편으로/나라를 구하는 거룩한 용기에 아쉬운 비장감이다.(금 모으기 운동)”의 일면은 신선한 감회를 불러줄 것이나 비록 그 자신이 사회동포주의자는 아닐지라도 ‘태양 불꽃이 소멸하면 지구와 함께 달도 수명을 다한다는 안타까운 정보교신이다.’라는 열린 우주에 대한 식견은 민감한 사안이다.
각론하고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한 가족이다./지구 내에서 국가 간 대립은 절충하고/지구를 살리는 큰 프로젝트(Great Project)에/동참할 때 임을 통감(痛感)할 일이다.(태양의 수명연장)”의 이 같은 보기나 한편 따뜻한 감성의 시적 형상화인 그 자신의 시편「삼천포항 경매장」이나「울긋불긋 색동 옷」의 시적 정감도 그렇거니와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롭다.’를 전제하고 “나의 언행 선후배의 마음에 상처 안겼는지,/이 가을에 스스로 자문(自問)한다. (가을은 출발선)”라는 시편에서 시 의미의 다양성은 한껏 신선한 충동이다.
2. 합리적 해법과 관조적 응시(凝視)
모름지기 견고한 성채(城砦)처럼 세월의 격랑을 견뎌내며 ‘살아 숨 쉬고 있는’ 삶의 일상에서 서정적 미감을 맑은 영혼으로 빚어낸 건강한 창조행위는 더없이 지극하다. 모처럼 서로 간의 연이 닿아 평자가 스스럼없이 ‘고통받는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사랑의 상징적 의미’를 이같이 분할·통합하여 숨죽임의 긴장 뒤 비로소 발현되는 늦은 밤의 불안과 허망함이 생명 경외로 합일된 시적 질료가 그의 시편에 수용되어 존재의 꽃으로 발화되는 낌새다. 까닭에 그 자신의 남다른 애향심으로 절망의 시대를 뛰어넘는 맑은 영혼의 울림은 ‘탯줄 묻은 나직한 산자락의 그 아득한 유년의 기억’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서정성에 비장감(悲壯感)이 충동감을 못내 자극할 따름이다.
특히 지난해『조선일보』지면의「남궁인의 심야일지」를 시적 질료를 그 자신이 일관되게 “바람결에 나의 체취(體臭) 흩날리고-시를 닮은 수필, 수필 닮은 시”의 일면처럼 “입 있어도 말 못 하고, 귀 있어도 듣지 못하고,/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상하기 싫은 미래다./연명치료 거부와 일맥상통하는 현상인가?(모 일간지 칼럼)”라는 반문이 때로는 이처럼 주어질 것이나 간혹 때로는 ‘지난 세월이 온몸에 담겨있는’ 연유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그 길/편안한 비단길이었던가?/표정 못내 맑고 여유롭다.(살아온 길 달라도)”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묵언으로 응시할 바다.
까닭에 ‘집사람이 처제 둘과 함께 보름 동안 해외여행 중’인 상황’에서 한 끼의 식사 해결을 위해 ’매일 또 열어보는 냉장고이지만, 익숙하지 못한 식생활이라 “세계가 인정하는 K-푸드 라면으로/대체하면 최고의 식단이기에/후식으로 귤 하나면 족하다. (아내는 해외여행 중)”의 일면은 새삼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또 이와는 대조적일 것이나 자연현상을 시적 질료로 종종 사용하는 그 자신의 시편「소나무의 새싹」은 물론 ‘출행(出行) 계획 애마(愛馬) 걱정으로 동심의 호출은 또 순연(巡演) 중일지라도, ‘출행(出行) 계획 애마(愛馬) 걱정으로 동심 호출은 또 순연(巡演) 중일지라도, “싸락눈 첫눈이라 반기며 감동하여/소리치는 아래 위층 꼬맹이들 감탄에/노인네도 덩달아 흥분한 초겨울/한때의 추억은 정감(情感)을 자극 중이다. (눈보라)” 또한 막연한 관심사나 응당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라면 지켜볼 일이다.
차제에 그 자신이 각고의 노력 끝에 형태의 추구에 도달하여 독자적인 조화의 세계를 구축한 특성 있는 시 의식에 관해 공간과 시각, 시적 중량감에 접근하면서 분할과 통합을 검색한 행위는 새삼 뜻깊다. 따라서 자못 생생한 일탈의 정신을 축(軸)으로 한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의 대비가 “비 맞은 무거운 몸 비바람에 맞서지/않고 자신을 그렇게 맡기는 지혜, (대나무의 교훈)”에서나 또는 ‘편하게 인도하는 문명의 이기(利器) 틀림없는 최상의 발명품이나 “학생들은 문해력이 저하되어 긴 문장을/이해 못 하는 학생은 20% 정도로 학습 진행/끝내는 불가능할 안타까운 현상이다.(문명의 손익)”라는 그 헤아림은 민감한 사안이다.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따뜻한 감성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대표 시격(詩格)에서 비록 어설픈 자기변명처럼 ‘무슨 연유로 정치 전문가 자처하는지 정녕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라는 그 합리성이 주어질지라도 지극선(至極善)에 기인한 맑은 심성은 인용한 시편「비단결 같은 마음이」에서 더없이 다정다감한 정조의 잇닿음이다.
지인 모임에서 정치 얘기는/금기 사항인 까닭에/분위기 전환 위해 정치 쪽으로/대화를 안내하는 실수 반복이다.//
일순간 모두 흑기사(黑騎士)로 변하고,/두 눈 부릅뜨고 목소리 거칠어/공격 자세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비단결 같은 마음이」에서
차제에 그 자신의 시편에서 수시로 확증되듯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지 않고 이채롭게 시각화한 시적 층위가 탈진한 영혼에 새삼 역동성을 안겨준 순수한 정신적 발현(發現)은, “한번 떠난 그 연의 잇닿을 가능성/현실적으로 불가함도 혹여 분별할 것이니.//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긴장감 뒤에도 못내 기대감이다. (會者定離)”라는 시적 작위(作爲)는 충동감을 자극하는 동기부여다. 특히 시집의 목차「제3부 광대나물의 겨울나기」 편에서 다소 호흡이 단조로운 ‘높은 산 잔설 하얗게 남아 있어 가벼운 바람에도 냉기 느끼는 나날’이어도 “가지가 바람 온몸으로 감싸 안아 배웅하는/예쁜 모습 봄소식을 주위에 먼저 알린다. (수양버들)”에서 스스럼없이 확인되는 점이나 민족의 명절인 ‘정월 대보름날의 아침에 악귀(惡鬼) 퇴치를 위해 마당 중앙에 집단 1단 불태운 뒤’ “액운 물리치고 행운 불러준다는 어르신의/말씀에 밤늦게까지 타다남은 부지깽이 같은(정월 대보름)”의 그 정감에 맞물린 ‘달집 점화로 거대한 달집 연기 못내 치솟아 하늘로 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까닭에 그 자신의 지역과 가족에 관한 관심사는 지극하지만, 상이하게도 현실적으로 민감한 국제적 사안도 외면하거나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 삶의 일상은 놀라운 충동감의 자극이다. 차제에 그 자신의 시편「푸른 구슬(Blue Marble)」에서 ‘우리나라 선박 수십 척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극한 상황’ 놓치지 않고 “폭발하는 불꽃 연일 바라만 봐야 하는 공포증,/해양대학 젊은 학생도 실습 교육으로 참여 중에/생애 처음 체험하는 악몽(惡夢)의 현장이다.(호르무즈 해협)”에서 응축된 긴장감이다. 또 그 자신이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구조적 모순을 절감하는 고통에서도 이처럼 아우르기를 통해 푸른 식물성 언어를 친근하게 사용하여 근간 국제적 뉴스의 키워드인 K팝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페르시아만 끼고 있는 이웃 국가도 평화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한 소망’은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이 인류평화 열망하고/피로를 달래는 위안(慰安)으로 다가와 오랜 세월/지구인의 가슴속에 기억되기 두 손 모아 기도한다. (BTS)”를 통한 확인도 그렇거니와 긴축된 긴장감이 서정적 정감의「홍매화」,「봄을 타는가?」를 작동시켜 풀어내는 능란한 기법은 매혹적이다.
모처럼 현실적으로 그 자신이 한평생을 충직한 공직자로 살아왔듯 삶의 여적(餘滴)은 스스럼없이 시적 이미지를 형사(形似)한 “깨알 같은 꽃을 따서 자세히 살펴보니/꽃밥이 너무 작아 확인 어려워도/달콤한 꿀 내음에 꽃향기도 진동한다.(꿀벌의 정지 비행)”의 일면이거나 또는 “따뜻한 햇볕에 피워낸 봄꽃은 황홀경이다./경이로운 눈으로 묵언의 응시(凝視)다.(진달래꽃)의 보기처럼 그 존재감과 차별성은 눈부심이다.
초봄에 꼬맹이 광대나물에/쌀알 크기 보라색 꽃 피워내고,//
꽃이 너무 작아 보일 듯 말 듯/작은 꽃의 꿀 향기에 취한 꿀벌들의/날갯짓 윙윙 소리 요란하다.//
오며 가며 바라보며 광대나물/삶의 지혜에 감탄할 뿐.//
-「광대나물의 겨울나기」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에서 새삼 명증되듯 절망의 깊은 늪에서 허적이며 그 간절한 기대감을 시의 본말(本末)인 서정시로 형상화하여 읊조리는 그 정한(情恨)은 못내 감동의 회복이다. 까닭에 정대요 시인이 일관성 있게 서정성과 시적 상상력에 의한 세세한 풀어냄은 지나친 언희(pun)의 충격에서 일탈(逸脫)할 수 있는 감미로움의 조화다. 차제에 영국의 스펜더(Spender)가 기억력은 “특정한 감각적 인상으로 시인의 천부적인 재능이며 상상력과 결부된다.”라고 지적하였듯, 단순한 정신적 재현작업뿐만 아니라 고통을 통해 생산된 창조적 기억의 변형으로 그 예술 행위는 이채롭다. 혹여 사적인 논리일 것이나 모성(母性)이 자리한 고향은 항구와 같아서 언젠가 돌아가야 할 처소이기에 단순히 탯줄을 묻은 땅이라는 개념보다 정서적 양감(量感)으로 빛나는 그리움의 처소다.
3. 의미론적 순환과 삶의 일상화
어디까지나 창조적 행위는 시적 상상력과 결부됨은 자명할 것이나 다소 근시안적으로 형상화된 시편은 언어 질서에 의해 통일된 체계의 유지와 우주의 신비를 캐어내는 현상이 가늠되기에 결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비록 불확실한 시간대에 처한 대다수 독자에게 참담함을 안겨주는 항목은 질서의 무너짐과 으깨어진 도덕성의 불감증이다. 까닭에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이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한 이들은 축복받은 존재인 까닭에 다른 축복을 구하지 말라.”는 그 지적은 분별할 바다. 또 한편 가끔은 시편「우째 이런 일이」에 잇닿은 ‘주위에서 인정하는 공적도 없어 눈에 뜨이는 외모 아니어도’ “어디를 가든 자유롭고 편한 일상이/못내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하니/축복받은 삶 또한 이 순간이다.(고마운 日常)”의 보기도 그렇거니와 분망한 삶을 즐기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다음 기다리는 할머니, 즐거운 일요일의 한 날’은 “생기 넘치는 시끄러운 다툼에/무슨 말 하는지 구분이 어렵지만/할머니는 대화 이어간다. (영상통화)”의 일면과 같은 정황은 삶의 처소에서 접하는 상식적인 현상이다.
차제에 그 자신이 시의 본말(本末)인 서정시를 기본 골격으로 삼아 활용하고 푸른 식물성 언어를 즐겨 사용한 중량감 있는 생명의 역동성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렇다. 그 자신의 시편「벚꽃의 개화」는 물론이고 “꽃말이 너무 많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나는 영원히 당신 것입니다./사랑과 희망, 사랑의 노예,/소중한 인연, 사랑과 희망이 찾아온다.”/필자도 새 꽃말 등록하고픈 충동(衝動)(꽃말이 많은 꽃)”도 그렇거니와 ‘아래쪽 계곡에 졸졸 흐르는 여울 진심을 담아 흘려보내는’ 그 현상에서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분홍색 그 예쁜 모습에/지나는 길손 시선 끌기에 족하다.(진달래의 속마음)”의 보기는 더없이 다채롭다. 그 같은 관점에서 새로운 공간 만들기에 일관성을 유지하며, 내적 충만에서 기인된 영혼의 파상으로 모성적인 평온함을 수용하는 정조가 돋보여 그만의 ‘체취, 느낌, 시 의식’은 삶의 본질을 살려 추하고 우울한 대상도 저토록 깨끗하게 정제시키려는 역동성임에 틀림이 없다.
앞뜰에서 멀리 바라본 비슬산/정상(頂上)은 아직 갈색이다.//
아래쪽 산록(山麓) 연초록에 물들고/하얀 벚꽃 점점이 피었는데,/마을 부근 벚꽃 피워낸 그 자리/가지마다 푸른 잎은 무성하다.//
-「비슬산 봄맞이」에서
특히 즉물적인 대상의 표리를 분석하는 그 자신의 시 적 작위(作爲)는 강렬한 서정을 전통적 리듬에 담으면서도, 갈 앉은 운율 속에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소재를 분할·통합하고 입체적 구성과 점층적 효과를 의중에 담아 실험과 탐색을 올곧게 수행하고 있다. 또 한편 다소 혼미한 우리 시의 형식과 내용의 구도 처리에 고뇌하고 한국의 현대시가 극복하지 못한 철학과 사상성의 빈곤에 관해 그 나름으로 탄탄한 이론의 틀 짜기를 위해 몰입한 정신작업에서 깊은 사유적 행위는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짐짓 총체적으로 날(刃) 푸른 칼날처럼 건강한 비판 정신이 예리할뿐더러 ‘가족애, 애향심, 조국애’의 이미지가 그의 시편에서 빈도수 높고 또 선명하게 드러남을 사려 깊게 가늠할 바다.
또 한편 “꽃의 존재와 현상의 시학”이라는 언어구조를 통한 이분법적인 발단과 해체와 창조의 변형으로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순간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됨은 시적 치유(治癒)에 견주어 ‘끝내 박멸이 어려운 생명력을 지니고’ “뿌리는 지표 20cm 하부에 검은 전깃줄과/유사한 긴 뿌리가 세력 뻗쳐 텃밭을/단시일 내 무서운 기세의 점령이다. (쇠뜨기 풀)”의 보기처럼 ‘맑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몸과 마음도 한층 더 신선하다.’라는 조화로운 느낌 뒤 “연초록의 나뭇가지에/배경 화면의 예쁜 하늘,/살랑살랑 흔들리는 동영상도/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으로 살아난다. (옥빛 하늘)”라는 헤아림은 ‘반가운 소식 찾아올 듯 기분 좋아지는 형상(形像)임’에 틀림이 없다.
결론적으로 독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그 자신의 정신적 결과물은 독창적인 예술가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일관된 의지로 시 창작의 작업에 몰입하며 ‘행복한 언어의 집짓기라는 시인의 몫’을 확증한 삶의 편린(片鱗)이다. 때로는 주위의 정황이 우리의 삶을 비록 힘겹게 할지라도 프랑스 과학철학의 창시자인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의 “새처럼 날개가 없어서 날 수 없지만 날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날개를 만들어낸다.”라는 그 역설은 분별할 점이다. 모쪼록 ‘시를 쓰려면 최소한 깊은 자기 통찰의 당위성을 의식할 일이기’에 창조적 자아성취를 위해 고뇌하는 동시대의 도반(道伴)으로서 그 자신에게 지순한 서정성의 끊임없는 탐색을 거듭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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