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산대학문학상 시 당선작)
동물적인 죽음
-Melting pot 외 1편
김응규
물고기의 수명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를 빼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가미를 다라 턱 둘레에 칼집을 내주면 호흡 중에 자연스레 피가 빠집니다
큰 생선의 경우 꼬리에도 칼집을 내주는데 칼날이 척추에 절반 정도 들어가게 합니다
아가미가 중요합니다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피를 빼는 이유는 아가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내장을 제거할 때도 역시 아가미가 중요합니다
피가 다 빠져나왔다 싶으면 물고기의 항문에 칼날을 넣고 아가미가 있는 곳까지 배를 갈라줍니다
그러면 산소가 모자란 것을 알고 찰거머리처럼 아가미에 매달린 내장들이 보일 것입니다
아가미는 척추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 척추와 아가미의 연결부위를 칼로 끊어줍니다
척추와 아가미는 아주 많은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칼로 끊어주어야 합니다
아가미뭉치를
잡아당겨줍니다
내장이 한꺼번에 딸려 나옵니다
창자는 질기므로 힘으로 뽑아내려 하지 말고 경건한 마음으로 잘라냅니다
물고기는 이제 냄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끝냈습니다
냄비 안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숨 쉬지 않아서 잘 섞입니다
가로등 밑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가 자랐다
날벌레들이 전등에 몸을 박고는 계속 쌓였다
그 아래에는 무단으로 투기된 쓰레기들
바나나껍질이 아스팔트 위에 검게 몰려 있었다
비둘기 한마리가 차에 치였는데
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웠다
고양이 두마리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비닐봉지만 찢어놓고 사라졌다
그 옆으로 창문을 내놓고 있는
반지하방에 사는 남자가
밖으로 뛰쳐나와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밤이었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여성이
애완견을 찾는 전단지를 붙였다
비틀거리며 길을 지나가던 남자가 토를 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새벽 쓰레기차가 왔는데
종량제 봉투가 아니라서 그냥 지나갔다
등교하던 고등학생은 가로등에 붙어 있는
양심을 비추는 거울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가버렸다
떠돌이 개 한마리가
비둘기를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물고는 사라졌다
다른 비둘기가 날아와 바닥만 콕콕 쪼더니
들어오는 차에 놀라서 달아났다
주차공간을 찾던 운전자는 두리번거리다가
담배꽁초를 던지고 갔다
거기에 개미 몇 마리가 타죽었다
반지하방의 남자가 옆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위로 긴 시간 동안 가로등은 묵념했고
어두워지자 힘겹게 빛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가 자꾸만 자랐다
[창작과 비평 163] /2014/봄/
심사평: 섬세한 요리의 상상력으로 죽음을 응시한 [동물적인 죽음-Melting pot]과 [가로등 밑]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하였다. 우선 이분의 시는 잘 읽혔다. 시행을 따라가면서 심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은유가 깊었다. 특히 주목했던 시는 [가로등 밑]이다. 정황묘사가 세밀하고 트릭과 능청, 기대 배반의 말부림이 좋았다. 한마디로 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차에 치였는데/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었다." 같은 표현들이 그랬다. 공부를 쉬지 않으면 대성할 분이다. -공광규 이수명 이정록-
첫댓글 동물적인 죽음은 소름끼칠 정도로 이성적으로 자세히 묘사를 했다. 언젠가 횟집에서 본 광경과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부족이 사냥한 동물을 죽일 때 차근 차근 의식을 거치면서 동물이 최대한 고통을 느끼지 않은 방식으로 죽이는 장면도 생각난다. 창자는 질기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잘라내야 한다는 시인의 말에 우리는 우리 입에 들어오는 생명들을 아무 생각없이 너무 쉽게 먹은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경건함을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가로등 밑은 가로등과 쓰레기 그리고 고양이, 술취한 취객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재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담배꽁초에 개미 몇마리가 타 죽었다는 표현에서 생명을 경시하는 양심의 거울을 말하고 싶은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생명들을 위해 묵념해 주는 것은 오직 가로등 뿐. 오히려 꾸밈없는 은유에 우리의 사유가 더 깊어지는 작품이다.
생선을 다듬고 입에 들어가기 까지 아무렇지않게 생각했는데 생명이 죽어면서 우리에게 남기는 것을 쉽게도 먹었네요. 생명을 준 것들에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먹어야 겠네요.
가로등과 쓰레기에서 무심코한 행동에서 개미가 타죽었다는 사소하지만 생명의 멸시와 우리의 양심을 의심해 봐야 할것 같다.
동물적인 죽음 - Melting pot : 생선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묘사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냄비안에 여러가지 것들의 희생으로 맛을 내는 삶! 숨 쉬지 않아서 잘 섞이는 삶! 어쩐지 등꼴이 오싹해 지는 시입니다 과학 공상영화 처럼 변해 가는 현실속에서 잘 살아 가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하지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자문해 보는 시입니다
가로등 밑 : 바나나 처럼 부드럽게 도시 생활을 그리고 있는 장면들. 바나나 껍질이 검게 변하듯 가로등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자라고 있는 현실. 섬세한 묘사와 표현력이 좋은 시입니다
아직도 냉동실서 꽁꽁 얼려진 생선조차 만지는 것이 겁이 나는 나는 이런 시는 쓸 수가 없겠지요. 마치 생선을 손질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던지는 한마디도 예사롭지 않네요.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가 자라다. 정말 흔하게 보는 풍경인데..저녁부터 시작해 다음날 저녁까지 아주 꼼꼼하게 그려놨네요. 이 냥반은 분명 잠도 안자고 그 긴 시간을 가로등 밑만 보고 있었을까요.
가로등 밑 - 화면으로 보여주는 듯한 세밀한 정황묘사. 선생님께서는 주변에 대한 스케치를 잘 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하셨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풍경이든 선명하게 그려내는 연습. 내가 가장 먼저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것을 이 시를 통해 다시 느낀다.
이 시를 여러 번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세상은 본래 날벌레, 비둘기, 고양이, 개 와 개미가 주인인데 뒤늦게 나타난 인간이란 손님이 자기들 편하고자 날벌레를 죽음으로 뛰어들게 하고, 자유롭게 날아야 할 비둘기 차로 치여 죽여놓고 가버리고, 먹이 찾는 고양이들은 욕을 먹고, 전단지 속 애완견은 사실 자유를 찾아 뛰쳐나간 것일 수도 있는 것을 모르고 수배를 하고...
그들의 길에 토를 하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쓰레기조차 외면하고, 양심을 비추는 거울에 비춰질 양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모습. 동지의 죽음을 바라보던 개는 비둘기를 데려가고, 친구 죽음 목격한 또 다른 비둘기는 차만 봐도 겁이 나고, 멋 모르고 길가던 개미들은 번갯불아닌 꽁촛불에 타죽는다. 한숨 지어야 할 것은 동물들이다. 우리가 그들의 한숨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몇 시간 전 방문한 손님이 주인인냥 행세하는 모습을 긴 시간동안 가로등은 바라보고 있다.
- 전 그냥 한번 이렇게 느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