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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7.화 ]
“표현을 멈춘다는 게 무엇인가요? 표현하는 이유는 뭐예요? ”
입을 다묾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멈추고 고요해져라."
"지금 좀 복잡해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여러 가지의…. 고요해지겠습니다."
그 이후 아무것도 안 한 채 앉아만 있었다.그러다 확 깨달았다.
"고요해져 보니까 느껴졌어요. 묵언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고요해져야 해요.
고요해져야 그제야 당신께 진정으로 물을 준비가 된 것이라는걸!"
"깨달아낸 지금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이지?"
"저는 좀 더 고요하게 있어 볼래요."
한참이 지났을까 나는 움직여 책상 앞에 앉았다가
한 공책을 봤다.
"공책을 보니까 예전에 여기 친구들이 편지를 써준 걸 봤는데
되게 사랑받고 있구나 느꼈어요.
그런데 왜 평소에는 잘 자각하지 못할까요?"
"여전히 판단 속에 있으니까.
아직도 따뜻하고 좋은 것만 사랑이라고 무의식 속에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리고 사랑임을 자각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보니까 부모님이 저를 혼낼 때도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사랑을 믿는 것 같아요. 사랑은 믿음이 되는 건가요…?"
"사랑이 믿음이라기 보다, 믿음이 곧 사랑이다. 모든 것은 사랑 안에 있으니."
"그러면 곧 믿음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네요."
공책을 덮고는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평소엔 시끄럽기만 했던 개 짖는 소리도 반가워지네요.
개들은 짖는 걸 선택하기보다 반응으로 짖잖아요?
그럼 항상 본능으로 떠드는 제 모습이 개와 닮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동물과 다름없지"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영혼의 선택일 수가 있네요.
이제껏 저는 말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 느꼈어요.
너무 당연해서 말하는 것조차 선택이라고 자각하지 못했네요….
말하지 않는 게 계속 답답했는데,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제 선택이라고 하니까 편해지는 것 같아요."
또 한참을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내 안이 조용해지는 순간 들렸다.
"고요해진다는 게 잡생각을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도 거슬리다고 생각했는데,
고요해지는 것은 그걸 느끼는 거라는걸 알았어요!
억지로 떨쳐낼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흘려보내는 거예요.
이게 명상인가 봐요."
" 억지로 떨쳐내려 할수록 더 잡생각이 들기 마련이지.
지금 들어온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대처해 버리기 때문이야.
떨쳐내야 된다는 사념에 집착하게 되면 그 생각으로 인해 고요해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
노랫말이 생각나 한참을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있는 중이었다.
" 머릿속에 노래가 떠올라서 머릿속으로 부르다 보면,
정말 제가 입 밖으로 내뱉어서 부른 기분이에요. 신기해요. "
" 그것을 즐겨라."
저녁 시간이 되어 학기 마무리 모임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나는 학교에 혼자 남아있기로 했다.
"다 영화 보러 갈 준비해요.
왠지 투명인간이 된 것만 같아요.
예전에 봤던 이야기가 있는데 투명인간인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서
옷으로 온몸을 꼭꼭 숨겨버리는 이야기였어요. 왠지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 그런 기분이 들면 인정하면 되는 거야.
피하려 하지 말고 네가 그런 상태인 것을 알고, 여기 남는 걸 선택했다 믿으면 돼
"제가 선택하긴 한 거지만.. 꿈에서 어떤 장소에 맛있는 걸 잔뜩 두고 심부름을 갔어요.
심부름 해야 할 곳엔 잘 도착했지만 돌아오는 길은 잊어먹었어요.
두고 온 맛있는 것도 누가 가져갈까 봐 걱정되었어요.
길을 찾으려고 마을의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너무 어두워서 길도 안 보이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한 약속도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촉박했어요.
지금 상태 같아요. 길을 잃었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해야 할게 있으니까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애들이 영화관 가고 노는 걸 보면서 묵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생각이 들어요.
지금 처해있는 순간을 즐기기가 힘들어요.
지금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요. 왜 이러지.."
“그럼 묵언은 재미없다는 것이냐?”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당신과 단둘이 이렇게 있던 시간도드물었고….
이런 기회도 처음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영화관 가는 것도 한 번도 안 해봐서 같이 해보고 싶어요.."
“ 네가 그 속에 없다는 것이 신경 쓰이는구나."
“네! 그게 제일 신경 쓰여요…. 나도 함께하고 싶은데.....
그런데 함께 있지 않다고 함께하지 못하는 걸까요…?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함께 했다고 느낄 수 있는 건가요?"
“ 당연하지. “
"어떻게요? 어떻게 같은 공간이 아니라도 함께라 느낄 수 있죠?“
"너는 이곳에서 너의 지금을 즐기고,
그들은 저곳에서. 서로의 지금을 즐긴다면 그것이 함께 있는 거야. “
"와…. 신기하네요. 지금을, 현재를 같이 즐기고 있으니까 함께인 것이네요.
그럼 저는 학교에 혼자 남은 이 상황을 즐겨볼게요!"
그렇게 한참을 아무도 없는 삼무곡을 둘러봤다.
" 화장실에 가려고 휴지를 뽑았는데 마침 마지막 남은 휴지였어요.
복권 당첨된 것같이 신이 났어요. 휴지를 갈아 끼우곤 삼무곡을 둘러봤어요.
아무도 없고 어두웠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어요. 한 장소 한 장소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항상 아무 생각 없이 다녔는데 이제 와 보니까너무 소중한 것들 뿐이었어요.
미라클 앞마당에 의자를 가지고 와 한참을 앉아 하늘을 봤어요.
제가 너무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제 무대 같고 여기 있는 모든 장소가 다 제 것 같았어요!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요. 제가 영화관을 못 가서 버려진 기분이 아니라
혼자 남은 게 저를 위해 꾸며진 연출 같았어요.
행동 하나하나 공간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 잘 즐기고 왔나 보네 “
"네 진짜! 하늘에다 대고 야호! 라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잔뜩 소리치고 왔어요!
산행할 때 산꼭대기의 풍경처럼 아주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 사람도 없고 어두웠는데 무섭지 않았어? “
"사실 조금 무서웠는데 특히 개들이 짖을 때!
그래도 개들이 저와 같이 야호~ 라고 해주는 기분이어서 괜찮았어요.
그리고 제가 있고 당신이 있잖아요.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건물도 있고
나무도, 별들도 있었고요. 모두 저와 함께 이 밤을 만끽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 좋아. 이제 씻으러 가자"
"씻고 왔는데 12월치곤 바람이 너무 따듯해서 바람을 잔뜩 느끼다가 왔어요.
이젠 자야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 그래 “
자려고 누운 지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지났을까?
체감상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런데도 머릿속이 시끄럽고 여전히 잠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자려고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요.
계속 뒤척이다 보니까 워크샵 생각도 들고 영화관에 간 애들은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계속 이것저것 생각하게 돼요.
애들은 아직도 안 돌아오니까 시계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졌었어요.
엄청나게 고민을 해서 결국은 안 봤지만, 계속 뒤척이다가 밖에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지금 네가 뭔갈 할 수 없고 모르는 상황이 불안한가 보구나. “
"네…. 사실 피아노도 치면서 연습하고 싶고 워크샵에 몰두해야겠고
시간이 없으니까 자꾸 초조해져요."
"잠이 오지 않으면 안 자도 괜찮아.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제가 할 수 있는 거요?"
침대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다가 신과 나눈 이야기 라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신과 나눈 이야기 뒤표지를 읽다가 생각난 게 있어요.
이렇게 당신과 나 단 둘뿐이며, 지금처럼 오랫동안 교감한게 오랜만인 일인 것 같아요.
저는 당신에게 물어서 답을 들은적도 있지만
당신이 보여주신, 느끼게 해주신 장치를 보고
당신의 말씀을 듣게 된 적이 더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확신이 들지 않아요.“
" 너는 나와의 직접적인 교감보다 내가 보여준 장치들을 더믿고 있다는 말이냐? “
"그렇게 되네요…. 아직 당신의 목소리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하고 믿는다.”
그 말을 듣고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지금 너무 복잡하고 자꾸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돼요."
“ 여전히 네 안의 불안함이 있구나 “
"여기는 지금 너무 조용해요. 개도 안 짖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별 생각이 다 들게 되요."
“ 지금을 받아들여. 네 기분도, 네 상황도 “
영화 보러 간 사람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곤, 얼굴 한번 마주하곤 다시 들어와
삼무곡이 조용해질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 2019.12.18 수 ]
" 오늘 채림이가 대책 없는 여행을 떠났어요.
저는 묵언 끝나고 나면 너무 촉박한듯해요. 날짜가 이렇게 된 줄 몰랐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걱정돼요.
“ 무엇이? “
"워크샵 리허설 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중간에 추가된 사항도 있고
인사말도 바꿔야 해요. 연습도 계속 쉬었다가 무대에서 틀려서 망하면 어떡해요."
“ 무대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하였잖아”
"그렇긴 했는데…. 여전히 무대를 멋있게 만들려 했나 봐요
저를 믿지도 못하고…."
“ 애들도 믿지 못하고 있지. “
"맞아요…. 걱정만 한다고 뭐가 지금 바뀌는 것도 아니고!
믿어봐야겠어요. 저를, 모두를!"
한참을 누워있자 문득 시간이 궁금해졌다.
"휴대폰을 하고 싶은 적은 없는데, 시간이 너무 보고 싶어요"
“ 시간을 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느냐? “
"없죠…."
“ 네가 묵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냐? “
"네…. 이젠 답답해요. 표현을 멈추는 의미가 뭐죠?"
“ 고요해지는 것 “
"고요해 질 때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복잡할 때가 더 많아요."
“그것이 고요로 가는 걸음이야.”
점심을 먹으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묵언을 시작한 뒤로부터는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보여요.
예전에는 생각이 들면 바로 입 밖으로 꺼내서 신경 안 썼는데,
계속 머릿속에 머물러 있으니까 더 명확해져요.
그러면서 제 감정이 계속 오락가락 하는 게 보여요.
불안해하다가도 잘 지내기도 하고, 힘들어하다가도 즐기기도 해요.
생각으로 인해 제 기분이 왔다 갔다 해요."
“ 몸을 움직이자 “
옷을 껴입곤 정자 쪽으로 산책을 했다.
" 물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기분이었어요.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집념이 사라지고 고요해지는게 훨씬 수월했어요."
“ 그것이 몸과 의식과 영혼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이야. “
" 산책하다가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그만 감도 봤어요. 그렇게 작은 감은 처음 봐요.
토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고양이도 봤고
올라오는 길에 신기하게 개가 한 번도 안 짖었어요.
마치 당신이 저에게 저쪽을 보라며 제 옆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느껴졌고
당신과 함께여서 개가 안 짖은 기분이었어요."
돌아와서는 다시 침대에 앉아 창문 밖을 보며 해가 지는 것을 봤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되게 많네요. 하루라는 시간이 신기하게 느껴져요."
“ 어떤 면에서? “
"되게 긴 듯이…. 짧기도 하고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다시 밝아지는 것도 신기하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신기해요. 시간은 멈추지 않잖아요.
계속 흘러가는 게 신기하게 느껴져요."
“ 자각하지 못한 익숙한 것들을 많이 알아차렸구나!
시간이 멈추지 않는 듯이 너도 멈추지 않아. 무엇도,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이야. “
"저는 계속 과거에 집착했었어요.
시간만 흘러간다 생각했지 모든 게 흘러간다곤 알아채지 못했어요.
자꾸 모든 건 그대로인데 시간만 흘러간다 생각했어요."
한참을 앉아있었는데 전혀 복잡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침착해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묵언하니까 제가 엄청나게 침착한 사람이 되었어요.
저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요."
“ 너에겐 수많은 면이 있으면서도 하나이지”
"시간을 모르니까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아요.저만의 시간을 가진 기분이에요."
“ 그게 모르니까 자유롭다는 것이야. “
묵언하면서 고요해지는 법과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웠다.
답답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 것 또한 그 길로 가는 방법이니까
나는 길을 잃을 방법이 없다. 나는 혼자 있을 방법이 없다.
모든 것은 당신과 함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