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계 없는 사랑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과 비슷한 사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앞서 죽게 되면 “저를 데려가고 아이를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에는 정의가 기초되지 않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우리를 사랑하실 때는 정의가 기초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과거로 끝난 것입니까? 세상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은 과거의 이야기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과거의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죽고 난 미래에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한 번 다음 말씀을 읽어 봅시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하느님의 사랑은 한순간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흔히 우리는 사랑에 대해 <로미오와 줄리엣>, <노트르담의 꼽추>, <겨울 연가> 등에서 보는 환상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열정은 영원한 사랑이 아닙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질되고 맙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사랑이란 감정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한순간의 열정이 아니며, 하느님의 사랑은 의지적 사랑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세월이 흘러 모든 상황이 변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사랑하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실수나 죄악을 범하더라도 모두 용서하고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용서가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존재하고, 실수하거나 죄를 지어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한계가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하게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이중인격자처럼 이중적으로 적당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잘 믿는 척하지만, 속으로 아무 내용도 없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를 용서하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5) 사랑이냐 배신이냐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13,2)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특별하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예수님은 제자들 중 자신을 배신할 자가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바로 유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내색도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과 배신’입니다. 이것은 어떤 드라마의 주제가 아니라 주님 최후의 만찬 주제입니다. 사랑의 이면엔 배신이 도사리고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 무한한 사랑, 용서하는 사랑 앞에서도 유다는 그분을 팔려는 사탄의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배신은 파스카 축제 식탁에 함께 놓인 두 가지 메뉴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입니까, 배신입니까? 성당에 잘 나오는 척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 척하지만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진 않습니까? 만약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무궁한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주님이 사랑에 배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값없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헌신으로 보답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값없이 주신 하느님의 사랑.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