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육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다 하시니 지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주를 몰래라.
● 전문 풀이 [1]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 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연기나 놀의 멋진 자연 풍치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벗으로 삼아, 어진 임금을 만난 좋은 시대에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병(老病)으로만 늙어가는구나. [3] 예로부터 전해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사라져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로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없어졌다는 말로써) 이 세상의 많은 슬기로운 사람들을 어찌 속일 수가 있겠느냐. [4] 그윽한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었으니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듯 매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5] 산 앞에는 대(낚시터)가 있고, 대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구나. 갈매기들은 무리를 지어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저 귀하고 좋은 흰 망아지[賢者]는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 것일까?(아마도 그 망아 지는 큰 뜻을 품었나보다.) [6] 봄바람에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니, 춘하추동 사계절이 각기 지닌 멋은 사람의 흥겨워함과도 같구나. 더구나 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소리개는 하늘을 날으니 흘러가는 구름은 그림을 남기고, 밝은 햇빛은 온 누리를 비추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을 수 있겠는가. [7]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완락재가 아담하고 깨끗이 서 있는데, 거기서 수많은 책을 벗삼아 한평생을 보내는 즐거움이란 무궁무진하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랴? [8] 우레 소리가 산을 무너뜨리도록 심하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며, 밝은 해가 떠서 대낮같이 되어도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소경이 되지는 않아야 하리라. [9]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보지 못했지만 그 분들이 행했던 가르침이 앞에 있구나. 그 행하신 길이 앞에 있는데 아니 행하고 어찌할 것인가? [10] 예전에 걷던 길을 몇 년이나 내버려두고, 어디로 가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예전에 걷던 그 길로) 돌아왔는가? 이제나마 돌아왔으니 이제는 딴 곳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 [11]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12]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道를 알려고 하는 것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 또 만세에 스승이 될 만한 성인도 다 하지는 못하는 법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어 가는 줄 모르겠구나. ● 해설 <도산십이곡>이란 조선조 13대 명조 20년(1565년)에 퇴계 이황이 지은 12수로 된 연시조를 말 한다. 이것은 퇴계 자신이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와서 도산서원에서 후진을 양성할 때에 이 학(理學)을 닦는 심지(心志)를 노래한 것으로 주자(朱子)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받아 천석 고황(長石膏 )과 강학(講學), 사색으로 나날을 보내던 그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도산십이 곡>은 전6곡과 후6곡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6곡은 '언지(言志)'라 하여 때를 만나서 사물을 접할 때에 일어나는 감흥을 노래하고, 후6곡은 '언학(言學)'이라 하여 자신의 학문 수덕(學問修德)의 실 제를 노래하고 있다. 흔히 유학자(儒學者)들의 시조가 그러하듯이 이 노래에서도 역시 중국 문학을 차용한 곳이 많고 생경한 한자어가 많아 문학적으로는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듯하다.
● 감상 [1] 본래 우리 시조 문학은 은일 문학(隱逸文學)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은일 문학이란 일종의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의미한다.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는 데에는 우리 문학에 크게 2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당초부터 현실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기피하려 는 것과 또 하나는 현실에서 패배한 나머지, 용납하지 못할 현실을 저주하면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을 때이다. 이 시조는 도산십이곡 가운데 전6곡의 서곡(序曲)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작 품은 위에서 얘기한 은일 문학으로서의 현실도피 적 경향이 짙은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에 정이 들어 이것을 버리고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작자 자신의 지극한 자연애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자연 귀의(自然歸依)에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작픔에는 자연에 묻혀 사는 지사(志 士)의 참뜻이 잘 묘사되어 있다. '천석 고황(泉石膏 )'은 핵심어가 되며 '초야 우생(草野遇生)' 은 자신을 겸손하게 일컬은 말이다. [2] 연하(煙霞)와 풍월(風月), 집과 벗이 대구를 이루어 자연에 완전히 몰입 동화된 작자의 심경이 잘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 의 모습, 이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연상된다. 사실 이 병(病)은 이 작품이 작자의 만년(晩年)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노병(老病)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초장에 서의 천석 고황(泉石膏 )의 상태나 앞 시조로 미루어 보아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하는 병으로 해석을 하고 보면, 이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더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아무 튼, 공자의 신독(愼獨 ; 혼자 있을 때에 더더욱 몸을 삼가함)이란 말도 있듯이 태평 성대일지라 도 자신의 수련에 게을리 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은 한 고고(孤高)하고도 청빈(淸貧)한 도학자 (道學者)요, 선비를 연상케 한다. [3] 초장에서는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중장에서는 맹자의 성선설을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여,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고 있는 작자 자신의 성리학적 입장을 뚜렷이 밟히고 있다. 아울러 세 상의 많은 영재(英才)들에게 성선설이 옳음을 주장하면서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하고 있 는 작품이다. [4] 초장에서는 그윽한 난초의 향기를 드러내어 후각적인 효과를, 그리고 중장에서는 흰눈을 등장 시켜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 성쇠 (榮辱盛衰)로 점철이 된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脫俗)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어 들이다. 이것들은 우리 고시가에 흔히 쓰이는 범상(凡常)한 용어들로 시어 자체는 다른 작품에 비해 별로 특이할 것이 없으나 작자 자신이 속세를 잊고 완전히 자연에 몰입해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에서는 벼슬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 에는 늘 연군의 정이 떠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자연에 귀의하려는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그랬듯이 자연에 몰입은 하면서도 완전 귀의(歸依)를 하지 못하고 있다. 종장의 '피미일인(彼美一人)'은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요, 초장의 '듣디 됴해'의 '듣디'는 한시 에서 향기를 맡는다는 뜻으로 '문향(聞香)'이란 어휘를 사용한 표현의 미라고 할 수 있겠다. [5]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대 아래에는 맑은 물이 있으며 여기에 또한 갈매기들까지 내 벗이 되어 오락가락하는 이 좋은 곳을 놓아 두고 왜 먼지 낀 속세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가 하고 세속인들을 나무라고 있다. '교교 백구(皎皎白駒)'는 본래 '현자(賢者)가 타는 말'이지만 여기서 는 현자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결국 종장에서는 글이나 좀 읽고 수양을 쌓았다는 자들이 입신 양명에만 눈이 어두워 아름다운 자연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6] 초장에서 꽃피는 봄, 달뜨는 저녁의 경치를, 그리고 종장에서는 물 속의 고기떼와 하늘의 소리 개, 구름이 흐르고 해가 비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그려서 한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흥겨운 대자 연의 조화를 무척 로맨틱하게 얘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 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7] 작자는 조선 시대의 거유(巨儒)로서 일생을 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한 석학(碩學)이다. 그러기에 이런 작자가 책 속에 파묻혀 살았으며 또한 거기서 지극한 낙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 치다. 이런 무아경(無我境)의 학문 수련 속에서 때때로 모처럼 한가한 때에 틈을 내어 산책을 하며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껴보는 그 순간의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이것은 한중 진미(閑中珍 味)라고나 할까. 이 작품은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그린 시조다. [8] 여기서 '우뢰'나 '해'는 '진리', 곧 도(道)를 지칭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자, 곧 '속세의 일에만 연연하여 인간의 참된 도리를 망각한 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경계하며 반드시 '진리의 길'을 걸어야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밝히고 있다. 일찍이 공자는 '朝聞道 夕死可矣 ;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 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던 바, 이 역시 '진리 터득의 중요함'을 단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어구(語句)라 할 수 있다. [9] 여기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우마(牛馬)가 다닐 수 있는 거리'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옛 성 현들이 걸었던 학문 수양의 길' 이라고 해석하고 보면 뜻이 더더욱 확실해진다. 이 시조의 수 사법 (修辭法)상의 또 하나의 묘미는 앞 구의 끝말을 뒷 구의 첫말로 가져와 그 뜻을 이어 나 가는 연쇄법(連鎖法)을 쓴 데에 있다. 옛 성현들의 길을 본받고자 하는 작자 자신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고, 또한 옛 성현과 군자들이 행하던 인륜 대도(人倫大道)를 오늘날의 우리들도 실친 궁행(實踐窮行)하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10] 퇴계가 23세 때 등과하여 치사 귀향(致仕歸鄕)한 것은 69세 때였다. 동방(東方) 성리학의 대가 였던 그도 벼슬길은 역시 외도(外道)임에는 한가지였다. '녀던 길'은 학문 수행의 길이요, '어듸 가 니다가'는 그 길을 소홀히 하고 벼슬길에 올랐던 것을 이름이며, '년 듸 마로리'는 학문 수행에 전념할 향심(向心)과 결의를 보인 것이다. [11]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는 구절은 언뜻 '산석유수(山石流水)'의 대자연 속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만, 실은 끊임없는 학문 수양으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살고 싶은 마음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靑山'과 '流水'의 영원성은 순간자인 인간에게는 영원 한 동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12] 학문이란, 인생의 의미가 끝없이 깊듯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아직도 이 길의 끝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종착점이 없다는 데에 그 심오한 매력이 있는 것 이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학문의 기본 성격인 보편성과 일반성을 실제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있으면서도, 노래가 생명으로 하고 있는 정감과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수사학적(修辭學的) 배려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이 시조는 그가 주자의 높고 깊은 학행(學行)을 어떠한 몸가짐으 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면학의 태도를 그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그가 쓰는 구절마다에서 그의 몸에 배어 있는 어떤 학덕(學德)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벌판 다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밖에 있네(平蕪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라는 구양수(歐陽修)의 싯구를 연상시키는 노래이다. 여기에서 작자의 쉼 없는 학문 정진의 정신 자 세를 엿볼 수 있다. ● 각 연별 소주제 [1] 泉石膏 [2} 자연과의 동화 [3]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 [4] 戀君 [5] 자연을 등지고 있는 현실 개탄 [6] 대자연의 웅대함 찬미 [7] 독서의 즐거움 [8] 진리 터득의 중요성 [9] 인륜 대도를 실천 궁행해야 함 [10] 학문 수행에 전념할 결의 [11]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의지 [12] 영원한 학문 수행의 길 ● 핵심 정리 ◁ 작자 : 이황(李滉 ; 1501∼1570) ◁ 출전 : <진본 청구영언> ◁ 종류 : 연시조(전12수) ◁ 성격 : 교훈가 ◁ 제재 : 전 6곡 : 언지(言志), 후 6곡 : 언학(言學) ◁ 주제 : 전 6곡 : 자연에 동화된 생활 , 후 6곡 : 학문 수양 및 학문애
<해제> 작자가 향리(鄕里) 안동(安東)에 물러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후진으 양성하며 자신의 심경을 읊은 12수의 연시조. 전 6곡은 '언지(言志)' 후 6곡은 '언학(言學)'으로 되어 있다.
<풀이> <도산육곡지일> ① 이렇게 산들 어떠하며, 저렇게 산들 어떠한가 초야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서생이 이렇게 산들 어떠할 것인가. 하물며 자연을 몹시 사랑하는 병을 고쳐서 무엇하리
② 안개와 놀을 집므로 삼고 풍월을 친구로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지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사람의 허물이나 없었으면...
③ 예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풍습이 줄어 없어지고 사람의 성품이 악하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거짓이다. 인간의 성품은 본디부터 어질다고 하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착한 성품으로 순수한 풍습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많은 슬기로운 사람(영재)을 속여서 말할 수 있을까?
④ 그윽한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듣기 좋아 흰눈이 산에 가득하니 자연이 보기 좋아 이 중에 저 아름다운 한 사람을 더욱 잊지 못하네
⑤ 산 앞에 높은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떼를 지어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거든 어찌하여 희고 깨끗한 갈매기는 나로부터 멀리 마음을 두는고
<도산 육곡 지이> ② 우뢰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심하게 울어도 귀머거리는 못 듯네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올라도 눈 먼 사람은 보지 못하네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야 하리
③ 옛 어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분들을 못 보네 그러나 그분들이 행하던 길은 아직도 앞에 놓여 있네 그렇듯 올바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그를 따르지 않고 어찌할고?
④ 그 때 뜻을 세우고 학문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버려 두고 어디에 가서 무엇하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고?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른 곳에 마음 두지 말고 옛날에 하던 학문 수양하리라
⑥ 어리석은 자도 알아서 행하니 학문의 길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성인도 다하지 못하는 법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는 줄을 모르겠다.
<감상> 제1곡은 세상의 명리(名利)를 떠나 자연에 묻혀 한가로이 사는 생활을 그린 것이다. 이미 세속의 일을 떠나 자연에 묻혔으니, 아무렇게 산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초야우생'(자연에 묻혀 사는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과 '천석고황'(자연을 깊이 사랑하는 병)이 서로 어울려 지극한 자연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제11곡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의지와 끊임없는 학문 수행으로 '만고상청'하겠다는 의지와 결의를 나타내었다. 청산은 만고에 푸르러 영원하며, 유수도 주야로 그치지 않아 영원한데, 인간은 어찌하여 순간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가? 우리도 청산이나 유수같이 언제나 푸르러 그치지 않겠다고 노해한다. 만고 상청이란 끊임없는 학문 수양으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사는 것이며, 옛 성현과 같이 이름을 수세에 영원히 남기는 거이기도 하다.
<작자> 이황(李滉 : 1501∼1570) - 호는 퇴계(退溪). 명종 때의 유학자로 조선 儒學의 大宗.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뒤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도산 서원(陶山書院)을 짓고 후진의 양성에 전념함. 율곡과 함께 성리학의 쌍벽을 이룸. 시조 13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