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흐림
간밤에는 비가 왔는지 길이 젖어있습니다. 8시15분, 스즈키 차량과 기사가 왔습니다.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열리는 촉람사르(Choglamsar)로 직행합니다. 여기서 10킬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행사장에 가니 벌써 인파가 구름처럼 모여 있습니다. 가방수색이 철저합니다. 원정대님의 등산용 칼이 문제되자 원정대님은 입장을 포기합니다.

비가 간간이 뿌리는데도 4-5만은 되어보이는 라다크인들이 가족단위로 앉아있습니다. 우리는 가장자리로 돌면서 인파구경에 바쁩니다. 연단은 너무 멀어 스피커 소리로 달라이라마의 강론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뿐입니다. 한 곳에 가니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이 선 채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통복장이 매우 화려합니다.


연단 가까이 오니 달라이라마의 모습이 카메라 줌에 어렴풋이 잡히네요. 놀랍게도 연단 좌측에 외국인을 위한 구역이 따로 배정되어 있고 많은 서양인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쪽 스피커에서는 영어 통역이 별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There is nothing independent...” 달라이라마께서 연기의 법을 설하고 계시군요. 영어 설법이지만 마음에 와 닿습니다. 법정스님은 연기설을 이렇게 풀어 설명하셨습니다. “인연이란 인과 연의 결합인데 인(因)은 과거에서 비롯된 원인이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연(緣)은 글자 그대로 실을 짜는 것과 같아 내가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비록 과거에 일어난 인(因)은 피할 수 없으나 내가 현재 어떻게 대처하냐(연(緣))에 따라 미래의 새로운 인(因)을 만드는 것이다.”


행사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불교법회나 교회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경건하거나 긴장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웃거나 산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편안하고 담담한 모습입니다.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인위적으로 경건하려 애쓰지 않고 그냥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하늘에는 경호 헬기 두 대가 선회하고 있고, 연단의 경호 또한 삼엄하지만 경찰의 얼굴에 살기같은 것은 없고 편해 보입니다. 80노인의 목소리로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힘있고 윤기있는 달라이라마의 목소리가 법회장을 평화로 채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축복받은 주말의 오전입니다.
점심은 Korean food를 판다는 식당에 갔다가 너무 맛이 없어 제대로 먹지도 않고 나와서 어제 봐둔 Wonderland restaurant으로 가서 치킨과 샐러드를 시켰는데 역시 맛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은 다 이유가 있는 법.
오후에는 차를 타고 레 주변의 곰빠(티벳사원) 순례에 나섭니다. 먼저 간 곳은 Shey gompa. 여기는 한때 라다크왕국의 수도였던 곳이고 커다란 불상이 인상적이지만 유지관리가 부실하여 세월의 무상함만 느끼고 돌아섭니다.

다음은 Thikse gompa. 레에서 가깝고 그 모습이 라싸의 고성과 흡사하여 관광객이 많은 곳입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전형적인 티벳사원 모습입니다. 내부도 화려하여 법당이 여러 층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있어 볼거리도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 같이 있는 승려학교의 어린 승려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보여주니 좋아라 합니다. 승복을 입고 있지만 천진한 어린이들입니다.

(틱셰 곰빠의 모습)

다음은 Hemis gompa. 이곳은 라다크지역의 드룩파 사원의 본산입니다. 우리로 따지자면 조계사쯤 되는 곳입니다. 해발 3700미터 산중에 여러 겹으로 자리잡은 오래된 건물들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이 곰빠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20세기 초엽 이곳을 방문한 러시아 학자가 이곳에서 그 옛날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서양의 구도자가 라다크 지역에서 몇 년동안 머무르며 수도했다는 기록을 승려들의 도움으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예수님께서 10대 후반의 나이에 중동을 넘어 구도의 길을 걸을 때 인도 전역을 돌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인데 걸어서 구도의 길을 다녔을 그 모습을 상상하니 우리가 왜 길 道를 쓰는지 알 것같기도 합니다. 어쨌건 Hemis gompa는 명성에 걸맞게 볼 것도 많고 느낌도 좋습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어린 동자승들의 모습이 제일 좋습니다.

(헤미스곰빠 내부마당)


(그대 어이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보기만 하시나요..)
8월 5일 구름.
어제 헤미스 곰빠에서 돌로 된 법당바닥이 차다고 느껴졌는데 감기가 온 모양입니다. 감기약을 먹고 잤는데 머리가 띵하고 기운이 없습니다. 아침을 대충 먹고 9시 30분 소남과 내일부터 있을 마키벨리 트레킹 점검회의를 가집니다. 말은 6필을 준비한다고 하고, 가이드는 스톡캉그리를 안내할 마운틴 가이드가 트레킹 가이드까지 겸한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쌀이 문제입니다. 여기 레에서는 한국식 쌀을 구할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델리에서 한국식 쌀을 구해 공수해오기로 합니다. 10키로짜리가 2천루피인데 쌀값은 소남이 부담하고 여기까지 내일 아침 공수해올 항공 수송료 2천루피는 우리가 부담하기로 합니다. 식단은 아침은 쿡이 주는대로 먹기로 하고 저녁은 우리가 가져온 음식재료를 써서 밥을 짓기로 합니다. 작년 K2트레킹의 예를 봐서 원정대님이 워낙 한식체질이라 된장이며 고추장, 김치 등 한국음식을 무려 10킬로 가까이 가져왔습니다. 음식 때문에 힘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셋이서 지불해야 할 총 비용 2650유로 중 1900유로를 주었습니다. 나머지는 최종 도착지인 스리나가르에서 주기로 합니다.
미팅이 끝난 후 소남과 같이 시내의 그의 사무실로 가서 텐트, 매트리스, 압력솥 등 장비를 체크하고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갑니다. 알고보니 시장은 대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니 넓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니 큰길만 왔다갔다 하는 관광객들은 알 턱이 없지..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사과 1키로에 100루피, 토마토 1키로에 40루피.. 참 쌉니다. 들어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라다크 지도 겸 가이드북을 삽니다. 그러나 스톡캉그리 상세지도는 나온게 없어 못삽니다.


( 이 통조림은 어때요? 하고 물어보는 에이전트 소남의 모습)

(길바닥에 앉아 페인팅을 받는 여행객)

(원정대님은 피시방에서 열심히 한국가족과 카톡하고 있군요..ㅎㅎ)
감기 기운으로 오후에는 계속 잤습니다. 충분히 잤는데도 계속 눕고 싶습니다. 일행들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방에 찾아옵니다. 내일은 좋아져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첫댓글 귀한 법회에 참석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다크, 느낌이 사뭇 다른 듯 합니다.
레 시장 사진에 나오는 야채 가게 아저씨 얼굴이 낯이 익네요.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그 가게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