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이 벅찬 기억과 감동이 희미해질 것 같아, 기억이 생생할 때 급하게 적어보는 날것 그대로의 후기입니다.
1. 프롤로그: "장난이 현실이 되다"
참 오래도 밀린 숙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참 후련하고도 뜻깊은 대회입니다.
시작은 바야흐로 2023년. 철인하는 쥐띠 친구들과 장난삼아 신청한 로쓰 대회가 덜컥 당첨되어 버렸습니다. 카드 결제 문자까지 칼같이 띵동! 딱히 기대도 안 했고 의미 부여도 안 했던 터라, ‘설렁설렁 준비해서 완주나 하고 오지 뭐~’ 하는 아주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24년 초, 갑작스러운 인사발령 예상으로 2주나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1년 이월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 ‘로쓰 대회’가 철인들에게 어떤 성지인지 알게 되니 슬슬 욕심이 나더군요. 편한 완주 말고 ‘인생 기록’ 한번 남겨보자 싶어 동계 훈련을 정말 독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10년 전 재건했던 십자인대가 과도한 훈련을 버티지 못하고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며 관절경으로 연골 일부를 또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회 참가가 불가능해져 결국 또다시 1년 이월... 경제적 손해는 물론이고, 원정단을 꾸려주신 오영환 코치님께도 본의 아니게 민폐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2. 대회 참가 준비: "이제 배수의 진을 치다"
연이은 이월로 '이제 더 이상의 이월은 없다!'라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다친 무릎이 아직 온전치 않아서, 이번엔 정말 욕심 다 버리고 "천천히, 부상 없이, 완주만 하자"고 매일같이 마인드 컨트롤을 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체력은 있어야 하기에, 5월 장흥 하프(6시간), 6월 나주 풀코스(11시간)를 뛰며 나름대로 괜찮은 몸 상태를 확인하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드디어 6월 29일 월요일! 오클래스 오영환 코치 원정단과 현지 합류를 위해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특수 화물은 32kg까지 된다고 해서 짐을 대충 싸 왔는데, 막상 가보니 규정을 잘못 이해(전달)? 한거라고합니다.... 짐 부치는 데만 무려 2시간 반 넘게 공항 직원과 밀당을 하다 보니 비행기 타기도 전에 진이 다 빠졌습니다. 다행히 항공사 직원의 천사 같은 배려로 이코노미 네자리를 다 차지하고 눕는 ‘눕코노미’ 혜택을 누리며 영혼을 치유했습니다.
3. 현지 훈련: "여긴 실전이다, 철인 특전사 버전 훈련"
대회장 근처 알레스버그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화요일부터 오영환 코치님의 인솔 하에 본격적인 적응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전에는 사이클 코스 답사 및 근전환 훈련, 오후에는 수영 훈련.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오 코치님은 훈련과 대회에 ‘찐’으로 진심이십니다. 역시 프로는 다릅니다. "에이, 힘들면 좀 쉬다 가시죠~" 같은 안이한 생각은 1도 안 통합니다. 그저 빡세게, 앞만 보고 달릴 뿐!
게다가 함께 온 선배님들 또한 운동에 목숨 거신 진심 모드였습니다.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놀고 즐기자!" 하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엄숙함과 열정! 힘들어도 형님들 꽁무니 바짝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실전에서 제 실력 이상의 기량이 나온 것 같습니다. 역시 일류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4. 대회 레이스: "지옥과 천국을 오가다"
수영 (1:27:50) : "인간 세탁기 속 노슈트의 슬픔" 아침에 공식 수온이 25도를 찍으며 '노슈트' 선언이 떨어졌습니다! 오른쪽 어깨도 아직 힘을 못 쓰는 상태라 기록이 처질 건 뻔했지만, '더운 것보단 낫겠지'라며 정신 승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수영은 무조건 앞줄에 서야 합니다. 총 21개 그룹 중 17번째 그룹에서 출발했더니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갈지(之)자로 와리가리하는 선수들을 뚫고 가면, 저 앞에 거대한 ‘인간 덩어리’들이 또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내 대회랑 똑같더군요. 그 와중에 물맛은 뜨뜻 미지근한 호수 맛인데, 신기하게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사람이 없는 게 용했습니다.
사이클 (6:25:03) : "자동차가 지나가나? 아니, 프로 선수네" 사전 답사 덕분에 코스는 익숙했습니다. 바람은 초속 6~8m/s로 불고 빗방울이 간간이 흩날리는 날씨. 맞바람은 묵묵히 버텼는데, 이 코스가 참 희한한 게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무지하게 깁니다. 가민을 보니 획득 고도가 무려 1,700m! 무릎 부상 여파로 업힐에서 기어갔더니, 내 가민(Garmin) 녀석이 제가 걷고 있다고 착각했는지 멋대로 T2(바꿈터) 전환을 해버리더군요. 자존심 상해라... 1회전 때는 뒤에서 웅~ 하는 자동차 주행 소리가 나더니 프로 선수들이 칼같이 지나가고, 2회전 때는 릴레이 선수들이 또 엔진 소리를 내며 스쳐 갔습니다. 그래도 추월하자마자 칼같이 우측으로 붙는 매너는 명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쏠라힐(Solarer Berg)! 왜 친구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는지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인파의 미친 응원 덕분에 끌바(자전거에서 내리기)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습니다. 제 평생 이런 환상적인 주인공 대접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이 응원 맛 보러 로쓰 다시 온다는 말, 100% 공감합니다.
달리기 (4:15:21) : "소시지 냄새와의 사투" 코스 자체는 참 예뻤습니다. 출발 후 숲길을 지나 강변길로 가기 직전, 타이밍 좋게 소나기가 쏴아 쏟아졌습니다. 덕분에 흙길 먼지는 구경도 못 했고 유럽 무지막지한 폭염은 아녀도 찌는 더위는 씻겨 내려갔습니다. 비를 쫄딱 맞으며 뛰는데 ‘아, 오늘 달리기에 최적이다!’ 싶었죠. 사이클에서 까먹은 시간 계산해보니 5분 30초 페이스만 유지하면 ‘12언더(1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20km까지는 잘 버텼는데, 하프 보급소 근처에서 갑자기 속이 텅 비면서 허기가 요동쳤습니다. 나도 모르게 보급소 음식을 폭식하는 바람에 페이스가 완전히 깨졌고, 12언더는 그렇게 다음 기회로... 35km 지점쯤 마주한 긴 오르막에선 주변 철인들과 동기화되어 다 함께 다정하게 걸었습니다. 선배, 후배님들을 먼저 보내드리고 부헨바흐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와,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기와 소시지 굽는 냄새는 고문 그 자체였습니다. ‘저 테이블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에 소시지 한 입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 굴뚝까지 이어졌습니다.
피니시: "감동,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드디어 스타트 파크(Stadt Park) 피니시 라인! 머릿속으로 준비한 멋진 세레모니 포즈를 그리며 달려 나갔습니다. 언제 어디서 카메라가 터질지 몰라 이리저리 연예인 포즈를 취하며 골인!
옆을 보니 현지 철인들은 가족, 연인들과 포옹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난리법석인데,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곁에 없다는 게 순간 살짝 아쉽더군요. 꿩 대신 알이라고,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사진 찍어서 메일로 좀..." 부탁했더니 흔쾌히 인생샷을 찍어서 보내주었습니다. (당케 쉔!)
5. 에필로그: "이 짓을 또 왜 하려고 하지?"
철인3종이란 참 힘들면서도 매력적인 운동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풀코스 완주는 진짜 보통의 체력과 미친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인 챌린지 로쓰를 겨우 끝내놓고, 한국에 오자마자 또 다른 대회 참가 신청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는 저를 보니... 네, 이거 확실히 중독 맞습니다.
6. 함께한 분들에게
대회 참가 멤버들과 헤어진 지 고작 하루 지났네요. 매일 아침 선배님들이 부지런히 달그락거리며 차려주신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서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이 듬뿍 들어버려서 벌써 그립습니다. 처음의 서먹함은 간데없고 헤어질 때의 아쉬움만 가득하네요. 원정팀 이끄느라 최고로 고생하신 오영환 코치님, 그리고 김성주, 유현종, 최익수, 박인수 선배님, 멋진 황건, 이지은 후배님, 최고의 서포터 꽃보다 맘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우리 또 만나서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다시 뭉치시죠!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첫댓글 처음 동호회에서 만난 희강이형님의 모습을 보며 운동을 이렇게나 하시는 분이 계시구나 , 철인이 뭘까? 하는 궁굼증을 가지게 하셨는데 이런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랐어요~ 긴기간 준비해오는 과정동안 많은 일들로 속앓이도 하고, 또 일어나고, 혼자 시합에 나가시는 모습 너무 존경합니다~제겐 너무 우러러볼수밖에 없는 선배님이신데, 나를 앞질러가는 선수들과 마음도 모르는 가민 ㅎ ,사진찍어줄이 없는 타국의 경기장.. 그 모든걸 이겨내신 형님 !찐 멋쟁이 이십니다!!어서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 들려주세요~~!!!횐영합니다👏👏
우와 첫댓글이 베댓이네... 고마워~♡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양동이 하나 준비해야 할거야. ㅋㅋ
@임희강(총무)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부상에도 끊임없는 의지 "존경스럽습니다"^^
운동 뿐만 아니라 글도 잘 쓰시네요. 그동안의 노력과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멋지시고 계속 응원하겠습니다.ㅎㅎ
총무님 고생했어 리얼한 후기 감동이네 ^^
pb달성 축하해 ~~~~~!!!
멋지당
Gute Arbeit~~
좋은 추억이 생기셨네~~고생하셨고 앞으로도 부상없이 꾸준히 하십시요.
저는 철인하시는 모든 분들
존경합니다.
저도 마라톤을 하지만 훈련꾸준한노력 없이는
완주에 기쁨을 누릴수 없기에 대단하시고
멋지 십니다
인생 최고에 순간을 누린다는것 또한 축복입니다
감동에 글 마음으로 느낌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길고 긴 머나먼 여정이셨네요~
인대파열과 연골판 제거수술이라는 장애물이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독일 챌린지 로슈(철인3종)라는 꿈의 여정을 끝마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포츠대회의 감동은 완주 그 자체보다는 부상, 나태함 등으로 좌절하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달성하는 과정 그 자체에 큰 울림이 있는거 같습니다!
희강형님 그동안 부상, 부상 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을 이겨내고 독일 챌린지 로슈 대회 완주하심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고 한국오시면 맛있는 음식에 술한잔 하면서 독일 챌린지 로슈 대회 미래 도전자들의 기를 팍팍 꺾어주세요 ㅎㅎ
농담이고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정기런때 뵙겠습니다! 주동자 peace!!!!!!
멋집니다.
도전하는 모습 부럽습니다. ~^^
부상 이겨내고 멋지게 완주하신 선배님 멋지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될 선배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