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설렘과 잔인함
청야 김민식
4월,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습니다.
펜데믹의 세상풍파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이 순간에도 스멀스멀 밀려 오고있습니다. 뒷뜰의 포플러 나무, 양지바른 언덕에도 봄은 이미 잦아 들어 새 생명이 잉태하고 삐죽 거리고 있읍니다.
4월 2일, 노인회 소속 카지노 봉사 팀의 일원으로 교민 젊은이들과 한 팀이 되어 야간 자원 봉사를 했습니다. 젊은이들의 봉사에 대한 열정에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자정을 넘기고 이른 주일 새벽녘에야 귀가했습니다. 나의 첫 4월 맞이는 소중한 자원봉사로 시작되었으니 감사의 조건이 늘어만 갑니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카지노 자원봉사 제도가 있는 알버타 교민으로 생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알버타주 정부가 인정한 3,000여 자원봉사 단체에 주 정부의 엄격한 사용 관리지침에 따라 매 2년에 한 번씩 60,000불정도의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고 합니다.
가게에 일찍 도착해 비대면 주일 예배 성찬식에 참석했습니다.
성찬식을 하는 동안 오케스트라의 찬송음악이 흘러 나왔습니다.
‘교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가정예배 시간에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였습니다.
아버지가 별세하신 후 영정 앞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나도 미리 준비한 와인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추억을 더듬으며 울먹거리며 따라 불렀습니다. 지나간 회억은 생각만 해도 설램의 연속입니다.
아직 가게 영업시간이 이른 시간이라 가게 주위를 빙빙돌며 나긎하고 쌀쌀한 봄의 향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슈만 교향곡 제1번 봄’ 서두, 호른과 트럼펫의 힘찬 팡파르 소리도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가로등 위에서 바다 갈매기(ring billed gull) 한 마리가 헬쑥한 모습으로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나를보자 이내 반갑다고 울어댔습니다. 나를 알아 본 것이 확실합니다. 페루 칠레 등지에서 방금 날아든 갈매기일 것 입니다. 6월 중순 쯤이면 새끼들을 이끌고 매일 이곳으로 출근할 것 입니다.
로빈새 두 마리도 뒷뜰 포플러 나부위에서 지친 듯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날아갔습니다. 부활주일 어간에 발견하곤 했는데 팬데믹 기간동안 생각의 성숙함이 자연의 세밀함을 관찰하게 하는 능력을 키워 주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팬데믹에 잔득 움츠러든 청춘남녀들이 야외공원, 야구장 장으로 몰려들며 기쁨에 들떠있는 모습을 TV에서 연신방영하고 있습니다.
내 고향의 봄은 나비앞장 세우고 훨훨 춤을 추듯 화사한 여인, 천진 난만한 어린아이 처럼 아장스러운 봄이라면, 캘거리의 봄은 다소곳하지만 우람한 청년의 기상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 처럼 봄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4월의 노래’ 중에서
팬데믹 기간의 4월은 새로운 생명을 싹 띄우며 존재의 성스러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는 생활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4월은 빛나는 꿈의 계절, 무지개 계절, 설램의 달입니다.
4월의 지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달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미친 전쟁광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무자비하게 도시는 파괴되고 매일 헤아릴 수 없는 죄없는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우크라이나 유투버들의 실시간 중계를 보고있습니다.
예고 없이 미사일이 날아들고 거대한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주민이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있는지 아비규환의 생생한 중계 현장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종식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과감하게 전쟁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푸틴을 지지하는 러시아 최대 종교단체 정교회도 사탄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어 속수무책입니다. 러시아에는 종교의 정의가 무너지고 진리가 저물어가는 어둠의 세계가 확보하고 있습니다.
4월 중에 물가는 더욱 폭등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고생활 필수품은 고갈 상태에 이를 것 입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4월은 잔인한 달’ 엘리엇의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 부분입니다.
순환되는 계절의 쇠사슬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잉태하는 힘겨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달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추위의 망각으로 에워싸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봄 속에서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합니다.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채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그릇된 정신세계를 일깨우는 시입니다.
나의 넉두리를 넘어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를 보여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런 절망의 황폐함을 이기고 견디어 이겨내고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놀라운 생명의 강인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전쟁은 잔인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 또한 잔인합니다. 그러나 그런 죽음과 절망조차 이겨내는 라일락의 소생과 마른 구근의 부활은 ‘가장 잔인한 4월의 역설적 고백입니다.
4월은 두려움을 넘어 희망과 설렘의 계절로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