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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이론
매슬로는 책의 제1부에서 동기 이론에 관한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매슬로는 이전의 전통적 동기 이론의 한계점을 체계적으로 지적하면서1) 다요소적 동기관, 건강한 동기의 특징, 인간과 문화 그리고 환경 간의 상호작용, 비동기적 행동의 존재 등을 고려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1부의 첫 번째 핵심 주제로 좋은 동기 이론이 반영하여야 할 17개의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전체적(holistic) 접근’의 명제에서는 동기는 개인의 일부가 아닌 전체로 가져지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예로 배고픔이란 동기는 ‘위장의 욕구’가 아니라 배고픔을 느끼는 ‘개인의 욕구’이기에, 소화기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각이 변하고(음식물이 평소보다 빨리 눈에 띤다), 기억이 변하고(다른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더 잘 기억한다), 감정이 변하고(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사고의 내용이 변한다(수학 문제 푸는 것보다 음식 구하는 것을 더 생각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단과 목적’에 관한 명제에서는, (의식적) 욕구는 목적 자체라기보다 다른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궁극적 목적(욕구)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이고, 자동차는 열등감을 느끼기 싫어서, 또는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연관된 명제로, 의식적 욕구나 동기화된 행동은 여러 개의 근본적 목적(욕구)을 표현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보며 ‘다중 동기(multiple motivations)’의 명제를 주장한다. 일례로, 한 남성의 성욕은 개인의 남성성을 스스로에게 확인해주기 위한 욕구, 다른 사람에게 남성으로 인정받으려는 욕구, 친밀감, 사랑의 욕구 또는 이들 욕구의 조합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견고한 동기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 동기도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문화와 관련된 명제로는 ‘인간 욕구의 범문화적 공통성’을 주장한다. 인간의 근본적 욕구는 일상생활에 나타난 의식적 욕구와는 달리 문화 간 차이가 없다고 본다.2) 어떤 문화권에서는 훌륭한 사냥꾼이 됨으로써 자아 존중감 욕구를 충족하려 하나, 다른 문화권에서는 저명한 의사나 용감한 전사가 됨으로써 동일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인간이 처한 환경에 대한 명제에서도 환경의 영향력은 인정해야 하나 지리적 환경이 아닌 ‘심리적 환경’이 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심리적 환경’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는 개인의 욕구가 주안점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대상들 중 특정 대상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개인이고, 장애물이나 촉진제로 인식하는 것도 개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는 근본 욕구는 우세성의 위계 속에 배열되어 있으며 ‘한 욕구의 만족은 새로운 욕구를 생성한다’는 명제는 ‘범문화적 근본 욕구의 존재’ 명제와 ‘이들 근본 욕구에 근거한 분류 체계’ 명제와 함께 매슬로가 제창한 욕구위계론의 근간이 되는 명제이다. 그리고 매슬로가 이 책에서 제시한 17개의 명제는 기존의 행동주의 이론, 정신분석 이론, 그리고 인본주의 이론을 통합하는 명제이다.
제1부의 두 번째 핵심 주제로 매슬로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한 5단계 욕구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매슬로 스스로는 이 이론의 기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앞서 기술한 (17개의) 이론적 명제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실험, 임상, 관찰을 통해 알려진 사실과도 부합하는 인간의 동기에 대한 긍정적인 이론을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것은 임상적 경험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유래한다. 이 이론은 제임스(W. James)와 듀이(J. Dewey)의 기능주의적인 전통을 따르며, 베르트하이머와 골드슈타인 등의 형태주의 심리학의 전체론, 그리고 프로이트, 프롬, 호니, 라이히, 융, 아들러 등의 역동주의(dynamism)와도 융합되어 있다. 이렇게 통합 또는 합성을 통해 완성된 나의 동기 이론은 전체적-역동적(holistic-dynamic) 이론이라 부를 수 있다(p. 15).”
범문화적이면서 근본적인 욕구로 매슬로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친애 욕구, 자아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5가지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 욕구는 나열식이 아닌 상대적 우세성에 입각한 위계를 가지며 조직되고 배열되어 있다는 욕구 위계의 역동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들 근본 욕구는 만족의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으며, 낮은 수준의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는 그 욕구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욕구가 만족시켜야 할 욕구 대상이 된다고 본다. 하지만 욕구의 순차적 우세성은 절대적이 아닌 일반적 위계를 가짐을 전제한다.
매슬로는 일반적으로 생리적 욕구(배고픔, 피곤함, 졸림, 성욕 등)가 모든 욕구 중 가장 우세하다고 본다. 두 번째 수준의 욕구는 안전 욕구이다. 안정감, 공포나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질서나 구조화에 대한 욕구 등이 이에 속한다. 평생 고용 보장이 가능한 직장의 선호, 다양한 종류의 보험 가입, 절대적 권력이나 강력한 시스템의 선호, 부분적으로는 종교를 가지는 것이나 특정 과학과 철학을 추종하는 것 등을 안전 욕구가 표출된 예로 든다.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 모르는 것보다 알려진 것을 더 좋아하는 일반적 선호 경향도 안전욕구가 두 번째로 우세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예로 들고 있다. 이 욕구가 너무 강하면 개인적으론 새로운 것 또는 미지의 것에 대한 건강한 호기심이 결여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는 독재나 군사 통치를 쉽게 수용하게 됨도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 소속과 친애 욕구는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통해 충족된다. 따라서 이 욕구가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 고독, 소외, 거부, 친구의 부재,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나 조직이 없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된다. 잦은 이사, 컴퓨터 사용과 아파트 거주로 인한 주위 사람과의 낯섦 증가, 가족의 해체 등은 이 욕구의 결핍을 증대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청소년들이 만드는 반항적 또래집단도 이 욕구의 결핍으로 인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욕구에 속하는 친애 욕구(사랑)는 받는 것만이 아니라 주는 것으로도 충족될 수 있음도 언급한다.
네 번째 상위 수준의 욕구인 자아 존중의 욕구는 두 개의 하위 요소로 구분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세상을 향한 자신감, 적절성, 능력 등이 그 하나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명성, 존경, 인정, 감사에 대한 욕구가 다른 하나이다. 특히 아첨이나 인기와 같은 근거가 취약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바탕을 둔 자아 존중감이 가지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순수한 의지, 결단력, 책임감, 타인의 진솔한 존경심 등에 바탕을 둔 건강한 자아 존중을 통한 욕구 충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장 상위 수준의 욕구이며 가장 널리 알려져 인용되는 자아실현의 욕구에 대해 매슬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자아 성취의 욕구, 즉 자신이 잠재적으로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실현하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한 개인이 점점 더 자신의 특유함을 찾으려는 욕구, 자신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려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p. 22).” 다른 욕구와 특성상 많은 차이를 가지며 가장 중요한 욕구라는 점에서 매슬로는 ‘으뜸 욕구(metaneed)’라고 명명하였다. 이 욕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강도에 있어서도 개인차가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매슬로는 자신의 욕구위계론에 대해 몇 가지 부가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첫째, 욕구 충족의 우선순위는 고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예로 선천적으로 창의적인 사람은 보다 우세한 (하위) 욕구의 만족이 결여됨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중심 욕구가 될 수 있다. 헌신이나 보람 등의 높은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 또한 하위 욕구의 만족을 뛰어넘어 상위 욕구를 추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어린 시절에 하위 욕구의 만족을 충분히 경험했던 사람임을 보여주면서 ‘좌절 내성(frustration tolera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대부분의 정상인은 모든 근본 욕구에 있어 부분적으로 만족하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불만족 상태에 있다고 보며, 우세성의 위계에서 상위로 올라갈수록 만족의 비율이 감소한다고 가정한다. 아울러 우세한 욕구가 만족된 후, 새로운 욕구의 등장은 급격하지 않고 느리며 점진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본다. 셋째, 하위 수준의 욕구가 충족된 후 상위 수준의 욕구로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사실이나, 한번 이러한 상위 수준의 욕구를 추구하고 그것의 가치와 맛을 경험하면 상위 욕구는 하위 욕구의 충족 여부에 의존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매슬로는 이 같은 현상을 ‘상위 욕구의 자율성(autonomy of higher needs)’이라 명명한다.
제1부의 세 번째 핵심 주제로 매슬로는 자신의 욕구위계 이론을 바탕으로 근본 욕구의 충족 여부가 인간의 가치 형성, 학습, 성격 형성, 정신적 건강 및 질병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가치관이 지엽적 문화나 임의적 환경의 힘에 더해 근본 욕구의 충족 여부에 의해 영향을 받음을 주장한다. 즉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만족 요인(satisfier)을 과대평가하거나, 이미 충족된 욕구의 만족 요인을 과소평가하여 가치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본다.
근본 욕구의 충족과 좌절은 인간의 성격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취한다. 예로, 근본 욕구의 좌절은 공격적 성격을 가져오고, 충족은 호의적 성격을 가져온다고 본다. 특히 어린 시절의 욕구 충족 여부는 성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프로이트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일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독립적 행동을 허용하는 능력, 사랑의 부족을 견딜 수 있는 능력, 자율성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등, 건강한 성인이 보이는 여러 특성은 어린 시절 친애 욕구의 충족에 따른 긍정적 결과라 간주할 수 있다(p. 36).” 이 같은 매슬로의 관점은 자신의 ‘욕구 충족과 좌절’의 원리에 ‘기능적 자율(functional autonomy)’의 원리를 가미하며3) 행동주의의 연합학습이론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매슬로는 인간의 정신적 건강 또한 근본 욕구의 충족과 비례한다고 본다. 보다 더 성숙된 발달 단계로 이동해 가는 인간이 지닌 내재적이며 긍정적인 성장의 경향성을 가정하고 있는 자신의 욕구위계론을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자아실현에 이르는 개인적 성장의 단계론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릭슨의 인간 발달 단계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위계적 동기 이론의 5요소가 가지는 발생적 특징인 우위성과 점진성에 의해 상위 수준의 욕구 충족은 하위 수준의 욕구에 비해 덜 긴급히 요구되기 때문에 보다 늦게 인간 행동의 결정 요인으로 자리 잡지만, 이들 상위 수준의 욕구 충족이 인간에게 보다 큰 행복과 개인적 성장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매슬로는 근본 욕구의 과잉 충족은 부정적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낮은 욕구의 과한 충족에 따른 물질적 풍요는 공동체 의식의 파괴나 권태 등을, 친애 욕구나 자아존중 욕구의 과잉충족(예로, 과잉보호, 무조건적 허용, 비위 맞추기)에 따른 심리적 풍요는 가치의 부재, 의미의 부재, 성취의 부재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1부의 네 번째 핵심 주제로 인간의 모든 행동이 항상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수행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피력하면서, 이 책을 쓸 당시에 심리학에서 간과되었던 비동기화된 행동(unmotivated behavior)의 존재를 갈파하고 있다. 비동기화된, 즉 비도구적이며 그 자체가 목적인 표현(expression) 행동을 도구적·적응적·기능적이며 목적을 지닌 대처(coping) 행동과 대비하며, 그저 표현하고 싶거나 즐겁고 싶어서 행하는 유희, 노래 부르기 등의 비동기적 행동도 인간 과학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매슬로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면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르며 움직이게 된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비동기화된 행동은 ‘애쓰지 않으려 애쓰는(trying not to try)’ 역설적 특성을 지닌다고 본다. 즉, 대처와 표현의 구분을 뛰어넘게 되어 노력하는 것이 비노력에 이르는 경로가 된다. 특히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원할 때 표현 행동을 보일 수 있고, 즐길 줄도 알지만 즐기는 것을 기다릴 줄도 아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이 부류의 행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정신병리와 정상성
제2부의 정신병리와 정상성(pathology & normality), 그리고 정신병리의 치료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네 가지로 묶어볼 수 있다. 첫째, 좌절과 정신병리와의 관계에 대한 분별적 논지이다. 매슬로는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모든 좌절(또는 갈등)이 위협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며, 오직 근본 욕구와 관련된 좌절만이 위협이 됨을 강조한다.4) 아울러 위협적 좌절 상황이 건강한 방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되면 자기 성장을 촉진하는 순기능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자신의 임상 치료 경험을 토대로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위협적 좌절은 정신병리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전제하며 정신병리에 관한 이론은 동기 이론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주장한다.
둘째, 인간의 파괴적 성향(공격성)은 프로이트학파가 주장하듯 생득적 본능이 아님을 동물, 유아,5) 문화 비교, 내분비학과 유전학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입증하면서, 인간의 파괴적 성향은 개인의 성격 구조, 문화규범적 압력, 당면 상황의 특성 간의 함수 관계로 산출되는 이차적이거나 파생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파괴성(공격성)은 기본적 욕구의 좌절, 대처 시스템의 위협 등과 같은 기본적 위협에 수반되는 반응으로 보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본능은 악하고 나쁘기보다는 건강하고 좋다는 것을 전제하며, 이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건강한 사회에서는 파괴적 행동이 나타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셋째로 심리 치료의 7가지 주요 방식6) 중 기본적 욕구 충족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 모든 치료의 궁극적 목표인 자아실현에 이르게 하는 길을 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위계적 동기 이론의 5욕구 중 상위 욕구들(안전, 친애, 자아존중)은 타인과의 만족스런 관계 형성을 통해서만 충족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신병리적 증상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줌으로써 치료가 가능하다는 인간관계 중심적 치료론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서는 정상적인 일반인도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타인을 도울 수 있음을 주장하며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 소원, 좌절, 억제된 욕구 등을 무의식 수준에서 의식 수준으로 끌어 올리지 못해 정신병리적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전문 치료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매슬로는 심리 치료를 사회 속에 내제된 병리적 요소에 대항하는 행위이며, 작은 노력과 힘을 모아 조금씩 점진적으로 좋은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어가는 시도로 본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가 변화하면 한 사회의 정치적, 법적, 경제적 측면에서의 긍정적 변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건강할수록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건강한 일상 체험만으로도 치유될 수 있거나 치유가 보다 쉬워진다는, 사회의 건강도와 심리 치료 간의 연관성에 대한 명제도 설정하고 있다.
넷째, 정상성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즉, 통계적 평균, 관습적 정의, 자민족 중심, 수동적 적응, 병의 부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보다 가치 중심적이며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정상성 개념은 인간의 본성(즉, 본질적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고, 중시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정의되어야 하고, 따라서 이러한 본성을 통합적으로 실현하면서 본성이 규정하는 방향으로 성숙하는 심리적 건강을 가진 사람이 곧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본다. 아울러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주요 욕구가 적절히 충족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넓은 선택의 폭을 허용하는 사회적 환경의 조성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아실현가
제3부 자아실현에 대한 장에서는 가장 극치의 심리적 건강을 지닌 이상적 인간은 자아실현(self actualization)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이상적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자아실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사회라고 보며 다음 세 가지를 논하고 있다. 첫째, 자아실현가(self-actualizing people)의 주요 공통 특성이 자발성, 초연함, 독립성, 절정 경험(peak experience), 풍부한 유머 감각, 창의성 등이라는 것을 자신의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일반인에게는 상충적으로 인식되기 십상인 과제(예로 이성과 감성의 대립, 책임 완수와 즐거움 추구의 대립, 자애심과 애타심의 대립 등)에 대한 자아실현가들의 통합적 해결 방식에 대해 예리하게 기술하고 있다. 즉 타인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희생을 가져온다고 보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목격함으로써 자애심의 충족을 이루게 된다는 야누스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곧 자아실현가라고 본다. 이 같은 통합적 문제 해결 방식은 근간에 들어 조직 과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역설적 리더십(paradoxical leadership)관의 근본적 메커니즘과 그 유용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통찰력이다.
둘째, 자아실현가가 지닌 창의성의 비결은 자아 수용과 통합을 통하여 전체 자아를 창의적 목적을 위해 항상 가용하게 만들어 놓고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그리고 창의성에 대한 성격론적 관점을 취하며, 자아실현적 창의성은 인간 본성의 심층에 존재하는 상상력, 직관, 영감 등이 발휘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차적 창의력(primary creativity)’이라고 명명한다. 또 일부 타고난 재능을 지닌 자아실현가는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독특한 창의성을 보이나. 평범한 자아실현가 역시 나름대로 자신의 창의성을 청소, 요리, 운동, 양육 등의 일상적 생활에서 구현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셋째, 자아실현가들이 보이는 사랑의 특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들은 불안감의 부재로 인해 매사에 개방적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이들은 심리적으로 벌거벗었다고 느끼면서도 안전함을 느낀다. 이들은 마치 사랑하는 능력과 사랑받을 권한을 타고난 사람처럼 보인다. 이들에겐 섹스와 사랑이 서로 결합되어 있어 성행위는 중요하면서 동시에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아실현가가 추구하는 높은 수준에서의 사랑은 낮은 욕구를 덜 중심적으로 만들면서도, 낮은 수준의 욕구가 충족되면 보다 진심으로 높은 수준에서의 사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 간 사랑의 성행위에 있어서도 평등성을 보여줌을 자신의 자료를 바탕으로 상세히 기술하면서 자아실현가가 지니는 탈전통적 성역할관의 특성도 제시하고 있다.7)
이들이 보이는 사랑은 결핍 동기에 의한 일반인의 사랑과는 달리, 자연발생적 성장 동기에 의한 이타적 사랑인 ‘B-love’ 즉, ‘타인의 실존에 대한 사랑(love for the Being of the other)’임도 기술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사랑은 자아의 초연과 강화라는 역설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필요할 때에는 관계가 붕괴되지 않은 채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색다른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 과학의 방법론
제4부 인간 과학을 위한 방법론에 관한 장에서는 첫째, 학습, 지각, 정서, 동기, 지능, 인지, 임상심리학, 동물심리학, 사회심리학, 성격심리학 등 전통적인 심리학적 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개관하고 있다. 매슬로가 제안하는 새로운 접근은 인본주의 심리학이며 긍정적 특성, 덕목, 경험에 대한 연구 강화이다. 둘째, 과학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에서는 과학자도 인간이기에 그들의 행동 또한 심리학적 원리를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에서 가치, 두려움, 희망, 꿈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서, 전통적인 과학적 조망에 시인, 철학자, 몽상가 등의 접근 방법을 추가할 것을 제창하고 있다.
셋째, 제반 심리학 분야들이 심각히 반추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나친 방법 중심적(means centering) 접근 방법이 가져온 과학적 배타주의, 근본에 대한 소홀, 연구 주제의 한정 등 역기능적 측면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넷째, 기존의 분류 도식을 남용하여 생기게 되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철저한 파악 및 분석의 미비는 현상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현상에 대한 성급한 분류화 작업을 지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 심리에 대한 전체적 접근 방법(holistic approach)을 강조하며, 항상 전체가 아닌 부분을 가지고 한 인간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할 것을 충고한다. 지금도 여전히 팽배해있는 서양 문화권의 분석적 접근 방법에 대한 경종을 서양학자가 이미 반백 년 전에 울렸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간의 본질을 논하다 (사회과학 명저 재발견 2, 김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