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상상력, 류은숙 외 , 코난북스, 2024.
도움이 필요한 이를 보살피는 것을 돌봄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평생 살아가는 동안 돌봄을 필요로 하는 기간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태어나면서 부모와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교육의 관점에서 교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성인이 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항상은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알게 모르게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특히 노년에 접어들어 은퇴를 할 나이가 되면 본격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겠다. 물론 시기마다 적절한 보살핌은 필요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한 사람이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보았다. ‘관계와 사회의 새로운 힘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장애나 질병 그리고 노환으로 인해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을 기획하면서 돌봄에 종사하는 이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을 기초로 해서, 돌봄 시스템이 작동하는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여 저자들의 ‘상상력’이 가미된 내용으로 구성된 글들이 이 책에 수록되었다고 하겠다.
32명의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서 접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노화, 질병, 장애, 죽음 등에서 맺는 상호 의존과 돌봄의 관계가 개별적이고 고유한 이야기인 동시에 서로 다른 몸들이 만나 함께 느끼며 서로를 마주하는 사회적 사건이 됨’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들이 접한 각각의 사례들은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그러한 개별성이 이루는 보편적인 면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개개인의 특수한 사례들을 ‘상상력’을 통해 보편적인 관점으로 전달하기 위해, 저자들은 ‘궁리한 끝에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모두 13개 항목으로 구성된 내용들은 각기 ‘장애 비장애 자녀 볼봄’과 ‘배우자들의 서로 돌봄’, ‘남성의 부모 돌봄’과 ‘비혼 장애여성의 독박 돌봄’ 등의 주제에 맞추어 인터뷰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각각의 항목이 내세우는 주제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들은 가급적 다양한 사례들이 보편적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도록 노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장애여성운동의 장애 비장애 활동가’와 ‘성소수자 서로 돌봄’,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발달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사회적 양육, 마음 건강센터의 아동돌봄’과 ‘방문진료,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통합돌봄‘,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 돌봄 노동자‘들의 이야기들로 마무리 짓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돌봄 노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아울러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의 봉사와 희생을 강요하는 열악한 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실제 필요한 이들에게 보살핌을 제공하는 것은 ‘복지’의 차원에서 공적인 시스템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여 돌봄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고, 또한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헌신과 노력을 당연시하는 인식도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주제들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관계와 사회의 새로운 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