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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 책을 읽고 그 성격을 ‘우익 현대사’라고 단적으로 표현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 자신이 역사의 심판자 노릇을 하면서, 자신의 관점에 맞지 않는 사람과 사상에 대해서는 혐오를 동반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는 우익 자유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에 어긋나는 모든 사상은 죄악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에 대항하는 모든 국가나 인물들은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료를 바라봐야 한다는 역사가로서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고,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면서 그에 의해 역사가 자의적으로 재단되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래서 두꺼운 분량의 2권의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관점에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20세기 전반을 다룬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되는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그에 이어지는 전쟁의 종말과 제3세계의 부상은 서구의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움직임으로 서술되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해방운동을 전개하는 국가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독립 이후 비참한 경제 사정은 오히려 서구의 식민지 시절이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지독한 편견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 드골과 처칠 등의 등장을 ‘유럽의 부활’이라고 칭하며, 미국의 케네디 정권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위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을 옹호하는 것에서 저자의 편견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상대방을 도청하려던 닉슨 정권의 행태를 단지 어느 정권에서나 있음직한 사건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언론과 대중들의 비판을 그릇된 행태로 묘사하는 관점은 저자의 편향된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경제만능주의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를 전적으로 옹호하면서, 경제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관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구의 기독교 중심 사고에서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관점을 여과 없이 노출하기도 한다. 20세기의 역사를 다양한 사료를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최소한의 미덕이라고 여겨지지만, 지나치게 자의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저자의 편협한 태도는 역사가로서 그릇된 태도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권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할 것을 부탁하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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