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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식인들에게 있어 한시(漢詩)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반드시 익혀야만 하는 교양의 일종이었다. 현대시가 그렇듯 한시 역시 시인의 감성을 표출하는 것을 우선시하기에, 현재 전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서정시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문학을 연구해온 저자도 ‘서사시는 아무래도 시의 본령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렇지만 당대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서사한시의 존재 역시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문학 연구자로서 ‘우리의 문학유산 속에서 현실주의 문학의 풍부한 자산을 발굴해내야 할 터인데 지금 이 서사한시는 그 귀중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1권에 이은 2권에서는 개별 작품들을 3개의 주제 항목으로 분류하여 번역시와 함께 저자 소개와 간략한 해설을 제시하고 있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등 두 차례의 큰 외침을 겪은 조선시대는 그로 인해 한때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맞서 적극적인 투쟁으로 맞선 인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4부에서 ‘국난과 애국의 형상’이란 제목 아래 모아서 엮어놓았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당시의 상황이 시인의 감각에 의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항목의 마지막에 구한말의 애국시인인 황현이 임진왜란 당시 활약을 펼친 이순신의 ‘거북선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하겠다.
‘에정 갈등과 여성’이라는 제목의 5부에서는 남성중심의 가부장 문화에 희생된 여성들의 간고하고 힘겨운 삶의 형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성들의 정조를 옹호하고 열녀로 대접하는 남성 시인들 역시 당대 남성중심 문화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당대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이른바 ‘삼종지도(三從之道)’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 결혼한 후에는 남편 그리고 남편이 죽은 다음에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관념이었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문화를 전제로 한 것이겠지만, 여성을 철저히 남성들의 종속적 존재로 여기던 당대의 기존 관념에 다른 아닌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논의되기조차 힘든 관념이지만, 이러한 표현을 들먹이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일부 남성중심 문화에 동화되는 면모를 보인 여성들의 형상이 엿보이지만, 당대의 모순에 항거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고자 햇던 여성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5부에서는 ‘예인(藝人) 및 시정(市井)의 모습들’이라는 항목으로 조선 후기 민간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예술가와 민간 풍속들을 조망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학 분야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비록 신분적으로 낮은 대접을 받아야만 했지만 예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현실에서 펼쳐내는 다양한 사례들을 작품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분포는 엄격한 신분제의 모순과 체제의 수탈에 의해 희생된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한 1권의 분량이 절대적이겠지만, 서사한시 세계의 다채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2권에 수록된 작품들의 의미 또한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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