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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는 의미를 지닌 ‘와온(臥溫)’은 순천의 바닷가 마을 이름이다. 마을 뒤편으로 나지막한 언덕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길게 누워있는 듯한 지형을 형성하고, 앞으로는 순천만을 끼고 넓게 바다가 펼쳐져 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변하여, 카페와 펜션 그리고 음식점이 많이 생겨나 주말이면 다소 혼잡함을 연출한다고 한다. 아마도 와온이라는 지명이 알려지게 된 것은 곽재구 시인의 몫이 적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시집을 비롯하여 그가 쓴 글 곳곳에서 순천의 ‘와온 마을’에 대한 소개와 찬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라색 눈물을 뒤집어 쓴 한 그루 꽃나무가 햇살에 드러난 투명한 몸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궁항이라는 이름을 지닌 바닷가 마을의 언덕에는 한 뙈기 홍화꽃밭이 있다
눈먼 늙은 쪽물쟁이가 우두커니 서 있던 갯길을 따라 걸어가면 비단으로 가리어진 호수가 나온다
(‘와온(臥溫)으로 가는 길’ 전문)
아직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던 때, 시인이 자주 찾던 ‘와온으로 가는 길’을 형상화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나 역시 순천에 처음 정착하던 무렵, 시간이 나면 한적했던 와온을 자주 찾곤 했다. 환히 트인 바다가 바라보이던 가게에서 라면을 주문하고 막걸리와 함께 마시면서, 때로는 노을이 지는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선 지금은 와온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마도 여느 관광지처럼 번잡스러워져 예전의 한적한 풍경을 상실한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집의 3부와 4부에는 인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창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젊은 시절 인도의 시인 타고르에 심취한 바 있어, 시인에게는 인도에 머물던 시간들이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도에서 시인이 마주쳤던 풍경은 타고르가 거쳤던 장소만이 아니라, 여전히 신분제라 할 수 있는 카스트 제도의 맨 아래에 있는 ‘불가촉천민’들이 살아가던 삶의 현장도 포함되어 있다. 시집의 4부에는 몹시 가난하다는 의미의 ‘적빈(赤貧)’이라는 제목을 지닌 7편의 연작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인이 인도에 머물던 기간 만났던 이들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2부에 수록된 작품에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과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지명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수록된 시편들을 읽으면서, 시인이 머물던 장소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삶이 작품에 오롯이 녹아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은퇴를 하여 순천을 떠났지만, 같은 직장에 재직하면서 시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연구실 건물이 서로 달라 학교 안에서보다 시내의 식당이나 술집에서 간혹 마주치곤 했었다. 아마도 그때 술을 마시지 않는 시인은 학생들과 더불어 문학과 삶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문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가까이 지냈기에, 간혹 합석을 하여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아마도 그 때 순천의 와온과 연구년으로 머물렀던 인도에 대한 시인의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인도를 다녀온 후 겪었던 그 때의 시간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시인의 마음을 담은 시들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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