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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소녀 모모가 도시 외곽의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 정착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계획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모모의 일상은 그저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으로 보일 듯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이 모모를 찾아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실제 남의 이야기를 끈기있게 들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풀곤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모모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대도시의 바쁜 일상과 전혀 다른 생활이 모모가 살고 있는 원형극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원인을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의 존재로 설정하고 있다. 바쁘게 살면서 돈을 벌고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그 대신 조금의 여유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아낀 시간들 만큼 대신해서 생명을 연장하는 존재들이 바로 회색 신사들인 것이다. 여유 있게 일상을 즐기는 모모를 찾아온 회색 신사로부터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됐다는 이유로 모모는 쫓기는 신세가 되고, 신비한 거북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시간의 근원지에 있는 ’호라 박사‘를 만나게 된다.
책의 속표지 제목 밑에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 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각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꽉 짜여진 계획표를 작성하여 그에 맞게 생활할 수도 있고, 나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도 있다. 결국 각자의 생각과 철학에 따라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며, 그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나 직장 등에 소속되어, 남이 설정한 계획에 따라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작가는 이 소설을 ‘어떤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에 의자해서 썼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시간에 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결국 작가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바쁘게 살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고민보다 상황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 역시 각자의 선택일 따름이다. 물론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면서 그에 관한 변명을 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라고 하겠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느리고 불편하게 살자’는 다짐을 하면서, 그것을 실천하고 매사를 즐기면서 살려고 하는 이에게 공감이 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책은 시간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적은 아이들보다 매사 바쁘게 살고 있는 이유를 토로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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